‘나’로는 철학을 못하고 ‘자아’로만 철학하는 한국사람

[우리 말에 마음쓰기 360] 얄궂은 한자말 털기 (38) 이유

등록 2008.07.03 15:19수정 2008.07.0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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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이유

 

..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엄마랑 싸운 날 ..  《풋》(문학동네) 2006년 봄호 4쪽

 

 저는 혀짤배기라 그런지 ‘이유’라는 낱말은 소리내기 힘듭니다. 뭐, 소리내기가 힘들다고 이런 말은 쓰기에 나쁘고, 소리내기 수월한 낱말이 쓰기에 좋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예부터 써 온 토박이말 가운데 ‘소리내기 까다로운 말’이 얼마나 있었는가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토박이말 가운데 소리내기 수월하지 않은 낱말이란 거의 없어요. 모두들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는 낱말이곤 합니다. 말하기도 수월하고 뜻도 알아듣기 쉽습니다.

 

 ┌ 이유(李濡) : 조선 숙종 때의 문신(1645~1721)

 ├ 이유(怡愉) = 이열(怡悅)

 ├ 이유(咿呦)

 │  (1) 사슴이 우는 소리

 │  (2) 이야기하는 소리

 ├ 이유(理由)

 │  (1) 어떠한 결론이나 결과에 이른 까닭이나 근거

 │   - 정당한 이유 / 이유를 대다 / 이유를 묻다 / 이유가 없다 /

 │     단순히 지능 지수 하나가 높다는 이유 때문에

 │  (2) 구실이나 변명

 │   - 사사건건 이유를 달다 / 무슨 이유가 그리도 많으냐

 ├ 이유(離乳)

 │  (1) 젖먹이가 자라서 젖을 먹지 않게 됨

 │  (2) 젖먹이에게 젖을 그만 먹게 함

 │

 ├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 아무것도 아닌 까닭으로

 │→ 아무것도 아닌 일로

 │→ 아무것도 아니면서

 │→ 아무것도 아닌데

 └ …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모두 다섯 가지 ‘이유’가 실립니다. 이 가운데 사람이름은 역사사전으로 돌려야 올바르고, ‘怡悅’과 똑같다는 ‘怡愉’는 한문을 잘 아는 분들조차 못 알아들을 만한 말입니다. ‘怡悅’을 국어사전에서 다시 뒤져 보니 “즐겁고 기쁨”을 뜻한다고 합니다. 세상에, 즐겁고 기쁘면 “즐겁고 기쁘다”고 말하면 되지, ‘이열하다’라 말하면 누가 알아들을는지요. 한자를 밝혀 ‘怡悅’을 붙여놓은들, 또는 ‘怡愉’라 적는들 누가 읽어낼는지요.

 

 ┌ 사사건건 이유를 달다 → 하는 일마다 토를 달다

 ├ 무슨 이유가 그리도 많으냐 → 무슨 핑계가 그리도 많으냐

 ├ 정당한 이유 → 올바른 까닭 / 알맞는 까닭 / 말이 되는 까닭

 └ 이유가 없다 → 까닭이 없다

 

 “사사건건 이유를 달다”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글쎄, “토를 달다”라 하지 않고 “이유를 달다”라고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즈음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는지.

 

 국어사전에는 ‘사슴이 우는 소리’나 ‘이야기하는 소리’라고 하면서, 한자말 ‘咿呦’를 달기도 하는데, 이 또한 쓸 일이 없다고 봅니다. 이런 말을 쓴 분이 우리 역사에 있었는가요. 썼어도 머나먼 옛날 한문을 즐겨쓰던 분들이 붓질하면서 쓰던 말이 아닐는지요.

 

 ┌ 이유식

 └ 젖떼기밥

 

 ‘이유식’은 곧잘 쓰지만, ‘이유하다’라 하면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기한테 젖을 떼었어요”라고 하지 “아기한테 이유했어요”라 말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젖을 떼며 먹이는 밥을 가리킬 때에는 ‘이유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ㄴ. 자아

 

.. 류씨의 여행은 이처럼 자아에서 시작해 자아로 끝난다. 자아찾기의 전형적인 모습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지구별 여행자》의 주어가 일인칭 ‘나’라는 사실은 당연하다 ..  《텍스트》 11호(2003.2.) 35쪽

 

 “전형적(典型的)인 모습”은 “뻔한 모습”이나 “틀에 박힌 모습”이라 하면 되지 싶어요. “그런 점(點)에서”는 “그렇기 때문에”나 ‘그래서’로 다듬습니다.

 

 ┌ 자아(自我)

 │  (1)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

 │   - 자아가 강하다

 │  (2) 대상의 세계와 구별된 인식ㆍ행위의 주체이며, 체험 내용이 변화해도

 │      동일성을 지속하여, 작용ㆍ반응ㆍ체험ㆍ사고ㆍ의욕의 작용을 하는 의

 │      식의 통일체

 │   - 자아를 찾다

 ├ 자아(慈鴉)

 │  (1) ‘갈까마귀’의 북한어

 │  (2) ‘까마귀’의 북한어

 │

 ├ 자아에서 시작해 자아로 끝난다

 └ 주어가 일인칭 ‘나’라는 사실

 

 ‘갈까마귀’와 ‘까마귀’라는 낱말이 있는데 굳이 ‘慈鴉’ 따위 말을 쓸 까닭이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꼭 이렇게 한자로 새 낱말을 짓고 싶다면 지어야 하겠지만, 이처럼 짓는 한자말은 군더더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억지스럽게 새 한자말을 빚어내면서 우리 말 살림을 외려 깎아먹지 않느냐 싶습니다. 북녘에서 이런 낱말을 쓴다고 국어사전에 실어 놓았는데, 글쎄요, 북녘에서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이 참말로 있을까요. 있다면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 자아

 └ 나

 

 한편, ‘나’라고 할 때와 ‘자아’라 할 때가 철학이나 심리학이나 학문에서는 무척 크게 다른가 봅니다. “자아에서 시작해 자아로 끝난다”라 했는데, “나에서 비롯하여 나로 끝난다”라 할 때하고 얼마나, 무엇이, 어떻게, 왜 다르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학문이든 철학이든 무슨 공부가 되든, 깊이있게 널리 살피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박이말을 한자로 뒤집어씌울 뿐인 낱말에 새로운 뜻을 담는다고 내세우거나, 속깊은 마음을 심는다고 추켜세우지는 말아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 쓰는 말로 철학을 하고, 여느 사람 누구나 함께 나눌 수 있는 말로 학문을 해야지 싶습니다.

 

 ‘자아찾기’란 ‘나 찾기’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찾기’입니다. 나 아닌 사람을 찾는다면 ‘남 찾기’나 ‘너 찾기’가 되겠지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03 15:19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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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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