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2) 녹음(綠陰)

[우리 말에 마음쓰기 365] ‘다카 시(市)’와 ‘해조(害鳥)’ 다듬기

등록 2008.07.08 13:58수정 2008.07.0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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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해조(害鳥)

.. 참새는 귀여운 작은 새이지만, 농민들에게는 손꼽히는 해조(害鳥)이기도 하다 ..  <마에노 나오아키/윤철규 옮김-천지가 다정하니 풍월은 끝이 없네>(학고재,2005) 216쪽


‘농민(農民)’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농사꾼’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 해조(害鳥) : 사람의 생활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피해를 주는 새
 ├ 해론새 = 해조
 │
 ├ 손꼽히는 해조(害鳥)이기도 하다
 │→ 손꼽히는 해론새이기도 하다
 │→ 손꼽히는 나쁜새이기도 하다
 │→ 손꼽히는 짓궂은 새이기도 하다
 └ …

‘해론새’로만 적어도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는 ‘(害鳥)’를 안 붙일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해조’라고만 하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알쏭달쏭하고요. ‘바닷새’를 가리키는 ‘海鳥’도 ‘해조’로 적습니다. ‘바닷말’을 가리키는 ‘海藻’도 ‘해조’로 적습니다. ‘밀물썰물(미세기)’을 가리키는 ‘海潮’도 ‘해조’로 적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海鳥’도 ‘海藻’도 ‘海潮’도 ‘해조’로 적을 까닭이 없으며, 이와 같은 한자말을 쓸 까닭 또한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바닷새’와 ‘바닷말’과 ‘밀물썰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 나쁜새 / 못된새 / 짓궂은새 / 몹쓸새 ……


사람한테 나쁜 새라고 한다면 ‘나쁜새’입니다. 사람한테 못된 새라고 한다면 ‘못된새’입니다. 사람한테 몹쓸 짓을 한다면 ‘몹쓸새’라고 해야겠지요. 그런데 오늘날, 사람한테 나쁘다고 할 만한 새가 남아 있기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나쁘다면 우리들 사람이 나쁘지 싶은데.

ㄴ. 다카 시(市) 변두리

.. 아슴푸레하게 다카 시(市) 변두리에 있는 집과 할머니가 떠올랐다 ..  (김중미) /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국가인권위원회,2004) 19쪽

‘변두리’라는 말을 보니 기쁩니다. ‘외곽(外郭)’이라고 쓰는 분이 나날이 늘어나거든요. ‘바깥’이라는 말을 써도 좋을 텐데 말입니다.

 ┌ 다카 시(市) 변두리에 있는 집
 │
 │→ 다카시 변두리에 있는 집
 │→ 다카 변두리에 있는 집
 └ …

우리는 “서울시 변두리에 있는 집”이라고도 말하지만 “서울 변두리에 있는 집”이라고도 말합니다. 나라밖 시를 말할 때에는 “뉴욕시 변두리에 있는 집”이라고 하기보다는 ‘시’를 덜고 “뉴욕 변두리에 있는 집”이라고 해요.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다카시’라 해도 되지만, 다른 말과 헷갈릴 걱정이 있을 때에는 ‘다카’라고만 한 다음 “다카 변두리에 있는 집”으로 적으면 그만입니다. 묶음표를 치고 ‘市’라는 한자를 적는다고 해서 한결 알아보기 좋지는 않아요. 외려 글을 읽다가 걸리적거립니다. 또한, ‘시’를 ‘시(市)’라고 적는다 해서 더 잘 알아들을까요. ‘도’와 ‘군’과 ‘읍’과 ‘리’를 한자로 안 적는다 해서 못 알아듣는 일이 있을까요.

ㄷ. 녹음(綠陰)

.. 금년엔 이 짙고 무거운 녹음(綠陰) 밑에서 서늘한 여름을 지내게 될 것이다 ..  <강우방-미술과 역사 사이에서>(열화당,1999) 5쪽

‘금년(今年)’이라는 말은 하루하루 쓰임새가 줄지만, 나이든 분들 입에서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말 ‘올해’가 있습니다. 지난날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가 쓸 말은 ‘올해’ 한 마디입니다. “지내게 될 것이다”는 “지내게 된다”나 “지내게 되리라”로 손봅니다.

 ┌ 녹음(綠陰) :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나 수풀. 또는 그 나무의 그늘
 │   - 녹음의 계절 / 녹음이 우거지다 / 녹음이 짙다
 │
 ├ 이 짙고 무거운 녹음(綠陰) 밑에서
 │→ 이 짙고 무거운 나무 그늘에서
 │→ 이 짙고 무거운 푸른 그늘에서
 └ …

한글로 ‘녹음’을 쓴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쓴다고 해서 못 알아들을까요. 글쎄, 음, 아마 못 알아들을 수 있겠네요. ‘녹음’이라고 하면 으레 “소리를 담는 일”을 떠올리니까요. ‘녹음기’를 떠오르게 하는 ‘녹음’이지, “나무 그늘”을 떠오르게 하는 ‘녹음’이 아니잖아요.

 ┌ 녹음의 계절 → 나뭇잎이 푸른 철
 ├ 녹음이 우거지다 → 나뭇잎이 우거지다
 └ 녹음이 짙다 → 나무그늘이 짙다

쓸 만한 말, 써서 알맞는 말, 살가운 느낌과 깊은 뜻이 담기는 말이라면, 한자말이든 서양말이든 중국말이든 일본말이든,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은 잘 곰삭이고 껴안으면 됩니다. 그렇지만 그다지 쓸 만하지 않은 말, 써 보니 알맞지 않은 말, 살가움이나 깊이를 딱히 느낄 수 없는 말이라면 안 받아들여야겠지요. 더욱이 오랜 옛날부터 즐겨쓰던 토박이말이 있다고 할 때에는, 우리 토박이말을 가꾸고 살리고 북돋울 때가 한결 낫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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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우리말 #우리 말 #한자어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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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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