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독도 문제, 청와대 해명을 믿을 수 없는 이유

앞뒤 안 맞고 전혀 일관성 없어

등록 2008.07.16 12:17수정 2008.07.1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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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서 한일 두 나라 정상이 독도 문제를 놓고 주고받았다는 대화의 내용을 놓고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 사안은 향후 어떤 추가 정보가 드러나느냐에 따라 이명박 정권에 치명타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문제를 둘러싼 사실 논란은 두 나라 정부가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대화록 등을 공개하지 않는 한 이대로 묻혀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양국 수뇌부 특히 청와대측의 발언을 놓고 봤을 때 우리나라 정부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미심쩍은 점이 많다. 청와대의 발언에는 그 자체로 모순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당시 대화 수준은 환담 수준이었다면서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한일 신시대를 열어가자는 이 시점에 그런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 <조선일보> 보도 내용

이동관 대변인은 당시 한일 양국의 만남이 환담 수준이었다고 설명하면서도 또 이 대통령이 '그런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거나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환담이란 말 그대로 화기애애하게, 심각한 내용의 화제 없이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수준의 대화를 말한다. 가령 여야가 대화를 할 때 일단 기자들이 사진 찍는 자리에서 서로 가볍게, 부담없는 화제로 분위기를 잡는 정도의 대화가 '환담'이다. 기자들을 내보내고 난 뒤에 서로 노골적인 줄다리기를 하는 것을 두고 '환담'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이동관 대변인의 '환담'이라는 표현과 그 뒤의 '그런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거나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얘기이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극단적이고 강조점을 몇 개나 찍는 식의 발언이 '환담' 자리에서 나올 수 있을까?

이 대변인의 발언에서 더욱 모순되는 것은 '그런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거나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도대체 후쿠다 일본 수상의 어떤 발언에 대한 답변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후쿠다 수상이 독도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이 대통령이 독심술을 발휘해서 '니가 무슨 말 하려는지는 알겠는데 말이야'라면서 저런 발언을 했다는 얘기인가?

결국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의 발언만 놓고 보더라도 후쿠다 일본 수상이 독도 문제의 역사 교과서 기술 문제를 놓고 뭔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발언'한 것만은 분명하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이 한국 국민의 정서에 매우 어긋나는 것이었을 거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순전히 이동관 대변인의 발언을 100% 믿어준다는 전제 아래 하는 추론이다. 이 추론에 혹시 문제가 있을까?


이러한 정황은 이 문제를 둘러싼 파문이 커지자 청와대측이 보인 반응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초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던 청와대는 "통보는 아니지만 후쿠다 총리로부터 '사정 설명'은 있었다"고 말을 바꿨다가, 또 다시 논란이 일자 "본질이 아니다"라고 비껴가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프레시안>의 보도 내용

여기서도 청와대는 '통보는 아니지만, 사정 설명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 독도 문제에 관한 후쿠다 일본 수상의 발언은 분명 있었다는 것을 청와대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청와대가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그 발언이 '통보'인지 '사정 설명'인지 하는 '표현'의 문제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사실(Fact) 문제는 드러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즉, 청와대가 인정한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한일 양국 정상의 만남에서 후쿠다 일본 수상이 독도 문제의 교과서 기록에 대해 언급했고(그것이 통보건 또는 사정 설명이건 표현의 문제를 떠나), 거기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뭔가 반응을 했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청와대 측의 주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이러한 설명을 한 청와대 측이 이 문제에 관해 전혀 신뢰성 있고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설명의 신뢰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스스로 설명에서도 결과적으로 후쿠다 수상의 '독도 교과서 기술' 발언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으면서도 청와대 측은 그 사실을 끝내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저 말꼬리 잡기 아닌, 말꼬리 자르고 도망가기에 바쁜 모습만을 보여준다. 논리가 궁색해지고 질문에 답변할 말이 막히자 하는 말이 "그건 본질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결국 사실(Fact)은 맞는데, 그걸 다르게 해석해달라는 항복선언과 다름없다.

이런 식으로 말을 돌리고 도망치기에 바쁜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다른 발언도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후쿠다 수상의 독도 교과서 기술 발언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언했다는 청와대의 주장도 믿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실제 발언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현재 우리가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자료는 바로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의 보도 내용이다. 바로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고 대답했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이들의 보도를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면 적어도 청와대 측의 주장보다는 더 신뢰성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하나의 사안을 놓고 서로 대립되는 주장을 하는 두 가지 의견이 있다고 하자. 이들의 논점이 5개라고 했을 때, A는 드러난 4개의 사실에서 모두 정확한(것으로 보이는) 주장을 했고, B는 4개의 사실에서 모두 허위 주장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면 나머지 하나의 사실 역시 A의 주장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또 하나 이명박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정황이 있다. 즉, 이 문제를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하기까지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여기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일 이명박 대통령이 후쿠다 일본 수상과 만난 자리에서 실제로 청와대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발언했다면 그 사실을 밝히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감출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침묵했다. 대화 내용은 둘째 치고, 그런 대화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감추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 대화 내용에 뭔가 국민들에게 드러내기 곤란한 부분이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좀더 객관적인 것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민들에게 신뢰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 그 비율이 정확하게 몇 퍼센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숫자가 줄어들지 않고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며, 늘어나는 속도도 점차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점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신뢰가 없으면 정치는 유지될 수 없다. 여기서 정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청와대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수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의 극히 사소한 부분일 뿐이다. 사실 정치는 우리나라 국민 전체가 이해 당사자(stakeholder)로 참여하는 프로세스이다. 그런데 이런 정치에서 신뢰가 무너지면 그 나라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요미우리 보도가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어떻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독도를 양보하느니 그런 얘기들이 인터넷에 돌아다닐 수 있느냐"면서 "네티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나라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의문을 갖고 문제를 제기하면 국민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 청와대 측의 사고방식인 모양이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그냥 "짐이 곧 국가"라고 하면 될 것을.

신뢰의 상실과 개념의 부재. 이명박 정권의 문제를 이제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상황에 왔다는 판단이다.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 그것도 매우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불안감이 커져간다.

덧붙이는 글 | 미디어몹에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미디어몹에 실었습니다
#독도 교과서 기술 #요미우리신문 #후쿠다 수상 #청와대 #G8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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