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쇳조각' 때문에 눈물, 콧물 다 쏟다

운동화 속 쇳조각을 빼기 위한 한 젊은이의 좌충우돌 해결 프로젝트!

등록 2008.07.19 12:11수정 2008.07.19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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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1시, 친구와의 약속을 2시간 남겨두고 내게 끔찍스런(?) 일이 발생했다. 길을 걷고 있는데 발바닥에서 갑작스런 통증이 밀려 온 것이다.

 

"아얏,"

 

아파서 짧게 소리를 지르고 운동화를 살펴봤다. 그런데 세상에 이게 웬일인가, 가느다란 쇳조각이 운동화 밑바닥을 뚫고 올라온 것이다. 그것도 두개씩이나,

 

'아니 이렇게 위험한 것을 왜 길거리에 버려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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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갔던 날, 운동화에 꽂혀버린 철심 두개를 빼느라 그날 하루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빨간 동그라미 안이 그 문제의 철심이다. ⓒ 곽진성

서울갔던 날, 운동화에 꽂혀버린 철심 두개를 빼느라 그날 하루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빨간 동그라미 안이 그 문제의 철심이다. ⓒ 곽진성

 

사람들이 통행하는 인도에 누군가가 위험스런 쇳조각을 버리고 간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운 없게도 그것을 밟게 되었고 말이다.

 

나는 이런 위험스런 물건을 버린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잘못하면 사람이 크게 다칠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하지만 지금 공자왈, 맹자왈 그런 걱정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운동화에 박힌 쇳조각을 빼내야 가던 길을 계속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바쁜데 이런 상황에 직면하니 무척 황당했다. 그래도 속으로는 그깟 쇳조각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얼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순전히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알고보니 쇳조각이 얼마나 깊게 박혔던지 힘을 줘도 빠지지가 않았다. 몇번이나 힘을 모아 쇳조각을 뽑아내려고 해봤지만 도통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난감했다. 이대로 걸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길바닥에 앉아서 쇳조각을 뽑고 있을 수도 없었다.

 

절망감과 황당함이 뒤섞인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데,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갑자기 소나기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엎친데 덮친격이란 바로 그런 상황에서 쓰는 말인것 같았다.

 

"에휴, 자존심이고 뭐고 없다. 일단 비부터 피하고 보자"

 

큰 도로 옆이라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한 빌딩의 계단에서 비를 피하며 쇳조각을 뽑는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쇠조각은 뚫고간 고무 밑바닥이 꽉 뭉쳐져서인지 도통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쇳조각과의 사투(?)는 계속 진행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쇳조각은 그대로였기에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운동화을 그냥 버리고 가고 싶기까지 했다. 하지만 신발을 버리고 맨발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맨발의 청춘이 되기에는 내가 약속장소까지 갈길이 너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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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아이디어를 다 써 간신히 꺼낸 철심은 족히 몇 Cm될만큼 길다란 것이었다. ⓒ 곽진성

온갖 아이디어를 다 써 간신히 꺼낸 철심은 족히 몇 Cm될만큼 길다란 것이었다. ⓒ 곽진성

 

"앗, 우와. 빠졌다."

 

그나마 다행히 것은 쇳조각 하나가 1시간의 사투끝에 쏙 빠진 것이다. 빠진 쇳조각의 길이를 보니 족히 몇cm는 될만큼 엄청나게 긴 것이었다. 이런 것이 내 구두속에 있었으니 섬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 뿐, 하나를 뺐다고 끝이 아니었다. 간신히 하나는 빼내었지만 또 다른 하나는 쇳조각이 휘어져서 도통 움직이지 않았다.

 

'아, 어떡하지? 뭔가 머리를 써야할 것 같은데......'

 

나머지 하나는 도저히 힘으로는 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한가지 아이디어가 생각냈다. 바로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길바닥에서 펜치같이 유용한 도구를 찾을 수는 없었다. 가방에서 쓸만한 도구를 찾던 중 눈에 들어오는 한가지 물체가 있었다. 바로 볼펜이었다. 볼펜을 잘만 이용하면 뭔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심끝에 내린 계획, 그 볼펜으로 운동화에 박힌 쇳조각 주위 틈을 늘려 빼낸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사람은 도구를 쓰는 동물이라고 괜한 자부심을 느끼면서 말이다. 뭔가 금방 일이 해결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쉽지가 않았다. 볼펜으로 운동화 고무를 파는게 결코 쉬운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장장 한시간이나 이어갔다. 그리고 너무 힘들어 포기하려는 순간, 그 쇳조각이 쏙 하고 빠져나왔다. 그 쏙 소리에 눈물도 쏙 나올것 같았다.  

 

"우와와. 드디어 나왔다"

 

그 문제의 쇳조각을 살펴보니 엄청나게 긴 쇳조각 이었다. 너무나 좋아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이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뭔가 이상하게 생각된 모양이다. 사실 그럴만 하다. 젊은애가 비를 '홀딱' 맞은 채로 구두 하나를 든 채 자리에 앉아 막 웃으면서 소리지르고 있으니 말이다. 갑자기 한 젊은 사람이 발걸음을 뚝 멈추고 달려와서 묻는다.

 

"앗, 저기요? 혹시 어디 아프신 거예요? 걱정되서 와봤어요"

"아.아.. 아니에요. 그런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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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도구 쓰는 존재'라는 사실을 괜히 생각나게 해 준 하루, 철심을 빼는데 사용된 도구들은 정말 상상이다. 펜과 펜심, 그리고 지우개라니, ⓒ 곽진성

'인간은 도구 쓰는 존재'라는 사실을 괜히 생각나게 해 준 하루, 철심을 빼는데 사용된 도구들은 정말 상상이다. 펜과 펜심, 그리고 지우개라니, ⓒ 곽진성

 

아, 친절한 사람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사실 너무 부끄러웠다. 얼마나 초췌했으면 그런 말까지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얼른 운동화를 신고 그 장소를 쏜살같이 빠져나왔다.

 

잠시후, 친구를 만나면서 그 황당한 이야기를 해주니 좋아라 한다. 너 정말, 오늘 운수 좋은 날이었다고 하는 장난스런 말도 곁들어 준다. 뭐 물론, 나도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억세게 운수 좋은 하루(?)였던 모양이라고, 2시간 동안 쇳조각과 실랑이를 벌였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과 헛웃음이 나오니까 말이다.

2008.07.19 12:11 ⓒ 2008 OhmyNews
#구두 #철심 #운수좋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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