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무솔리니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헌책방 나들이 169] 인천 배다리 〈삼성서림〉

등록 2008.07.22 12:22수정 2008.07.2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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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 헌책방 <삼성서림>을 가득 채우는 책들 ⓒ 최종규


 (1) 책이란

하루일을 마무리한 일요일 저녁, 집에서 책을 읽으며 쉬다가 책방 나들이를 잠깐 해 볼까 생각합니다. 집에도 책은 넉넉하게 있지만, 아직 모르는 책을 알고 싶으니 책방 나들이를 꾸준히 합니다. 내가 알아보아 주기를 기다리는 책으로 무엇이 있을까 만나 보고 싶어서 아직 못 다 읽은 책이 있어도 또다른 책을 만나려고 길을 나섭니다.


새책방은 한두 곳만 찾아갑니다. 인천에 있는 대한서림과 서울에 있는 인문사회과학책방. 인천에 있는 대한서림은 새로 나오는 책이나 요새 잘 팔리는 책을 알아보는 곳이 됩니다. 서울에 있는 인문사회과학책방은 그곳 일꾼이 당신 깜냥대로 가려내어 좀더 읽히고픈 책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여느 큰 새책방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하거나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책이, 오히려 이곳 인문사회과학책방에서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며 차곡차곡 꽂혀 있습니다. 모든 출판사 모든 책을 갖출 수 있을 만큼 널찍하지 못한 크기이지만, 이런 작은 크기대로, 또 책방 일꾼이 세상을 보는 눈길대로 가려진 책시렁을 둘러보면서, 저는 또 저대로 세상을 꿰뚫는 책이 무엇인가를 살피게 됩니다.

잘 팔리는 책이라고 해서 좋은 책이지는 않으며, 안 팔리는 책이라고 해서 나쁜 책이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팔림새는 좋으나 우리 가슴에 남겨지는 이야기가 없이 스러지는 책이 제법 많다고 느낍니다. 읽어서 새겨지기보다는 흐름을 타고 좍 퍼졌다가 금세 잊히는 책이라고 할까요.

어쩌면, 장삿속으로 따질 때에는, 빨리빨리 퍼져서 좍 팔린 다음 새로운 책을 또 내놓아 좍 퍼뜨려서 팔아치우기를 되풀이해야 더욱더 많은 돈을 거두어들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는 책이라 해도, 읽는이들이 두 번 세 번 되풀이 읽고 곰곰이 곱씹기만 한다면 책방 장사는 죽을 쑤고 출판사도 어려울지 모릅니다.

책장사도 많이 팔려서 돈을 거두어들일 수 있어야 먹고살 수 있는 만큼, 안 팔릴 법한 책을 내는 일은 스스로 밥그릇을 내팽개치는 짓입니다. 그런데, ‘많이 팔려서’라는 대목을 ‘얼마나 많이’로 여기고 있는가요. 몇 권쯤 팔리면 마음에 넉넉할 만한 ‘많이’가 되려는가요.


하루에 한 권씩 세 해에 걸쳐 1000권이 팔리면 ‘안 팔리는’ 책일까 생각해 봅니다. 하루에 세 권씩 한 해에 걸쳐 1000권이 팔리면, 이대로는 출판사나 책방이 먹고살 수 없으려나 헤아려 봅니다.

헌책방 〈삼성서림〉 앞에 섭니다. 문간부터 가득 쌓인 책더미를 훑습니다. 책 쌓임새를 보면 천장까지 가득 올릴 수 있으련만, 〈삼성서림〉은 벽을 빙 두른 자리만 천장까지 쌓고 다른 자리는 어른 키보다 살짝 높도록 쌓습니다. 책꽂이를 더 마련해 천장까지 붙인 다음 걸상이나 사다리를 써도 될 텐데, 〈삼성〉 할아버지로서는 여기까지는 바라지 않을지 모르겠구나 싶습니다. 할아버지도 벌써 여든 줄에 접어들었으니.

“요즘 재미 좋아요? 그저 그래요?” “늘 똑같이 그럭저럭 살고 있습니다.” “그래, 요즘 다들 어렵다고들 하니까.”

〈삼성〉 할아버지는 한삶을 헌책방 동료이자 이웃으로 지낸 분들하고 책방 안쪽 책상 앞에 둘러앉아서 소주잔을 부딪힙니다. 고물상에서 책 거두어 오고, 손님들한테 책 팔고, 저녁나절 소주 한잔 걸치며 마무리를 짓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나름대로 달삯 치르고 소주값 벌면서 이 자리를 지키고.

“앞으로 삼사 년쯤 더 할 수 있겠어요?”

할아버지 스스로한테 묻는 말씀. 이제는 그야말로 하루 앞도 내다보기 어려울 수 있는 삶. 이제는 자식들 품에 안기어 집에서 느긋하게 지낼 수 있을 테지만, 헌책방이라는 곳은 ‘정년퇴임’이 없는 곳이라, 늘그막에도 동무들을 불러서 조촐한 술잔치도 즐기고 책도 팔며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눈을 감는 마지막날까지 ‘사장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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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시렁 한켠 촘촘히, 그리고 빼곡히 쌓인 책들 ⓒ 최종규


 (2) 혼자 웃고 울며 읽는 책

헌책방 할아버지한테 인사를 한 뒤, 조용히 골마루를 둘러보며 책을 살핍니다.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고, 얼핏설핏 스쳐 지나가는 책이 있습니다.

여태껏 어느 헌책방에 들어왔든, 꼭 책을 몇 권씩 집어들고 나왔습니다. 헌책방은 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갓 나온 책은 갓 나온 책대로 들여다보게 하고, 퍽 묵은 책은 묵은 책대로 돌아보게 합니다.

세월 때란 어떠한가를 보여줍니다. 오래도록 읽히는 손때란 무엇인가 일러 줍니다. 메뚜기 한철과 같은 책이 어떻게 숨을 거두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섣부른 장난질 같은 책은 어떤 모습으로 헌책방에 들어와 쌓이는지, 돈바람 난 책은 헌책방에서 어떠한 대접을 받는지, 두고두고 사랑받는 책은 헌책방에서 어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가만히 되새겨 줍니다.

어쩌면 빈손으로 돌아올지 모를 헌책방 나들이입니다. 그렇지만 빈손으로 돌아오게 되더라도, 헌책방에서 둘러본 책들은 제 마음에 남습니다. 값을 치르고 사들이는 책은 물건으로도 남고 책에 담긴 줄거리를 읽어내면서도 남습니다.

그냥저냥 마음에 들지 않는 책만 많이 보인다고 하여 빈손으로 돌아오면, ‘왜 오늘 만난 책은 이렇게 내 마음을 채우지 못하는가’ 하고 곱씹습니다. 가슴에 새겨지는 책, 가슴에 새겨야겠구나 싶어서 사들이는 책, 살갗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책, 눈을 버렸다는 느낌이 드는 책, …… 갖가지 책을 만지작거리며 손이 시커멓게 되어 가는 동안, 마음에 깃들어 있던 때는 조금씩 벗겨집니다.

나 아닌 사람들은 내가 반기지 않은 책을 반기려나. 나는 알아보지 못했어도 다른 이들이 알아보려나. 혼자서 싱긋벙긋 웃다가, 홀로 슬프고 시무룩한 얼굴이 되다가, 책 두 가지가 마음에 박혀서 집어듭니다.

먼저 ‘도서열람허가증(私本)’이 붙어 있는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군부독재 종식과 선거투쟁》(민중사,1987). 누군가 옥살이를 하면서 읽던 책입니다. 스무 해쯤 묵은 책인데 용케 죽지 않고 잘 살아남았습니다.

 ┌ 칭호번호 : 73, 성명 : 이호웅, 도서명 : 군부독재 종식과 선거투쟁
 └ 교부일 : 88.1.14.

책 안쪽에 붙은 교부증에 적힌 ‘이호웅’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습니다. 퍽 들은 이름인데, 누굴까? 1988년 1월 14일에 옥살이를 하고 있었을 만한 이호웅, 그리고 《군부독재 종식과 선거투쟁》 같은 책을 읽을 만한 사람, 그러면서 인천 쪽에서 살거나 일했을 만한 사람이란 누구이려나. 설마 출판사 형성사를 꾸리고 정치꾼으로 국회의원까지 지냈던 그 이호웅? 글쎄. 그 이호웅일 수 있고 아닐 수 있고. 다만, 감옥에서 이 책을 읽었을 사람은 그때 틀림없이 사상범으로 붙잡혔을 테지.

그나저나 어이하여 오늘 이 자리에서 이 책이 보였을까. 이 책을 보던 이가 자기 책을 모두 털어냈나. 예전에 털어낸 책이 구석이나 뒷자리에 쌓여 있다가 잠깐 고개를 내밀었나. 다른 일이 있어서 책을 모두 내놓게 되어 헌책방으로 들어오게 되었나.

 (3) 독재자는 어떻게 나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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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무솔리니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린이 위인전기 ⓒ 학원사

《구위드 다메오/이우석 옮김-무솔리니》(학원출판공사,1989)라는 책도 한 권. ‘에이브 현대위인 전집’ 가운데 31번으로 나온 녀석입니다. 이탈리아 파시즘 독재자인 무솔리니인데, 이렇게 ‘현대위인’으로 꼽혀서 어린이책으로 읽히기도 했군요.

문득 두려운 마음이 일어, 무솔리니 같은 사람 책이 오늘날에도 아이들한테 읽히는가 싶어서 인터넷 새책방에서 뒤적여 봅니다. 이원복 씨가 만화로 그린 《무솔리니와 히틀러》(계몽사,2005) 하나가 뜹니다.

후유, 한숨을 쉬면서도 다른 이가 아닌 이원복 씨가 이런 만화를 그린 대목이 얄궂다고 느낍니다. 어쩔 수 없는 성향 탓일까요. 무솔리니한테도 배울 대목이 있으니 이렇게 만화 ‘위인전’도 낼 수 있는가요.

.. “베니토, 닭이 죽었구나. 죽은 닭을 서리해 온 거야?” 그렇게 말한 아이를 베니토는 우습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아냐. 닭이 버둥거리면 도망치기가 더 힘들지, 그래서 목을 비틀어 버렸어.” 아이들은 그런 베니토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것은 어렸을 때부터 잔인했던 베니토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는 일이다 ..  (20쪽)

《무솔리니》를 쓴 분은, 223쪽에 걸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자리에서 “무솔리니 시대를 그리워하며 ‘무솔리니’ 소리가 다시 일기 시작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곧이어 “그들도 무솔리니가 권력의 자리에 오른 뒤 대부분의 강력한 독재자가 걷는 길을 걷다가 스스로 자기 인생의 무덤을 팠고,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무덤까지 팠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을 것인데도”하고 덧붙입니다.

멀리 이탈리아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나라에도 독재자가 여럿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외쳤고, 어마어마한 돈을 앞뒤로 빼돌렸습니다. 지금 우리들 가운데에는 이 독재자들 덕분에 ‘먹고살 만해졌다’고 말씀하는 분이 있는데, 참말로 먹고살 만해졌는지, 아니면 밥상에 오르는 반찬 가짓수는 늘었지만 그만큼 우리 허리띠는 바짝 졸라야 하고 이 나라 물과 바람과 땅이 죄 더러워졌는지를 짚어내지 못합니다.

물과 바람과 땅을 더럽히고 먹고살게 된 보람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자유와 민주와 평화와 평등을 짓밟고 먹고살게 된 보람이란 무엇인가요.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무시무시하게 휘두른 권력에다가 고유한 서민문화는 깡그리 짓밟거나 몰아내는 한편, 농사꾼과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을 무식쟁이로 몰아붙이며 피눈물을 짜낸 보람이란 무엇일까요.

나날이 더 끔찍해지는 입시지옥 틀거리를 단단히 다지면서 자기 스스로 땀흘리지 않으면서 ‘땀흘리는 이를 밟고 올라서서 떡고물 나누어 먹으며 현실을 잊도록’ 이끈 교육으로 거둔 보람은 우리 삶터를 어떻게 주물러 놓았는지요.

..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베니토는 그 속에서 한 달 동안 견뎌냈다. 그러나 교도실에서 나온 베니토는 예전 같지 않았다. 부리부리한 눈은 아이답지 않게 무서웠으며 행동은 전보다 더 거칠어졌다. 베니토는 그 전처럼 장난하지는 않았다. 말없이 앉아 있다가도 누군가 못마땅하게 굴면 사납게 날뛰었다.

웃학년 학생들도 베니토를 슬슬 피해 다녔다. 한 번은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던 3학년 학생이 무슨 일 끝에 베니토에게 욕을 퍼부은 일이 있었다. 그러자 베니토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더니 그 아이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 베니토는 전부터 1급 식탁에 앉은 아이들을 미워하고 있었다. 자기보다 부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이 자기를 무시하는 게 기분나빴다. 그런데다 이런 모욕을 받자 베니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물러선다면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베니토는 늘 갖고 다니는 주머니칼을 꺼냈다. 주머니칼을 보자 아이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 녀석 다시 한 번 말해 봐.” 베니토가 이렇게 말했으나 상대방은 허리에 팔을 턱 짚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설마 찌르랴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라면 못할 줄 아니? 네가 침 흘리는 소리가 저기까지…….” 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베니토가 갑자기 달려들어 그의 가슴을 찔렀기 때문이다.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  (56, 60쪽)

어린이 위인전기 《무솔리니》 뒤쪽에는 ‘배움 노트’라고 해서, 독재자 무솔리니 삶에서 배울 대목과 비판할 대목을 나누어 놓습니다. 배울 대목 가운데, “따분하고 헛된 시간들(시골 국민학교 교사)을 박차고 마침내 무솔리니는 스위스 로잔을 향해 다시 힘찬 새 걸음을 내딛는다”는 글월이 눈에 뜨입니다. 뒤이어 “보다 나은 자신의 앞날을 위해 하찮은 것은 서슴없이 버리는 결단력은 배울 만하다”고 적습니다.

퍼뜩 놀랍니다. 시골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일은 ‘따분’한가? ‘헛된 시간’을 보내는 셈인가? ‘도시로 나와야만 뜻을 펼치거나 훌륭해지는’가? ‘시골에서 교사로 일하는 삶은 하찮은’ 모습인가?

무솔리니가 ‘실패한 일’이라면서 “작은 일에서 옳지 못한 행동을 한 무솔리니에게 뒷날 큰 권력을 잡았을 때 옳은 행동을 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가 보입니다. 어쩐지 앞뒤가 어긋났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선뜻 와닿지 않습니다.

더구나, 위인전기 《무솔리니》 한쪽에서는 “무솔리니는 미래를 내다볼 줄 몰랐으며 폭력의 힘을 너무 믿었다”고 적으면서, “어린 시절의 배우려고 했던 열망과 독서력은 뛰어나다 …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주장하고 이루기 위해 여러 사람의 뜻을 모아 행동하는 것, 이것은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지도력이다”라는 말은 서로 안 어울린다고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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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이로 쌓였기에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쌓여 있으니 파헤쳐 밑바닥에 눌린 책까지 들여다보게 되기도 합니다. ⓒ 최종규

.. 베니토는 덩치가 큰 몇 아이들을 앞에 내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우기 이쪽은 수가 많다. 그렇게 되면 폭동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베니토는 목적을 위해서는 힘을 써야 된다고 믿었다 …

“무슨 짓들을 하려는 거야? 모두 퇴학맞고 싶은가?” “우리는 짐승이 아닙니다. 이런 일은 참을 수 없어요.” “너희들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는 할 수 없어.

어서 돌아가 아침식사나 해.” 얼굴이 시뻘개진 교장이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자, 모두 말 들었지? 교장 선생님 말씀대로 식당으로 돌아가자. 그 형편없는 식당부터 때려부수자.” ..  (70, 73쪽)

‘배움 노트’를 누가 적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 나라 출판 편집자가 적었는지 다른 이가 적었는지, 나라밖에서 나온 책을 옮기면서 그대로 베꼈는지, 나라밖 책에 적힌 이야기에서 몇 가지만 우리 형편에 맞게 손질했는지 들은 알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책이 나온 1989년 그때까지는 이만큼밖에 못 헤아렸는지 모릅니다. 이만큼 헤아린 대목도 훌륭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이때였으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적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때 뒤로 스무 해가 지난 오늘날은 무솔리니 같은 사람 위인전기가 나오지 않거나 조용히 사라지지 않았으랴 싶어요.

.. 그러나 선생의 지도 없이 닥치는 대로 읽는 책 가운데에는 좋은 책도 있었으나 나쁜 책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무솔리니는 나쁜 책에 강하게 사로잡히곤 했다. 그것은 왠지 그의 급하고 거친 성격에 꼭 들어맞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 무솔리니가 그동안에 많은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안타까운 일은 그 스스로 무슨 짓을 하려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가 나쁜 생각에 물들어 있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  (80, 150쪽)

그렇지만 세상은 모르는 법. 세상 흐름은 알 수 없는 터. 역사를 잊거나 버리며 돈에 빠지거나 흥청망청대는 세상에서는 ‘무솔리니 만세!’ 하는 소리가 물결을 타면서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독재자가 저지른 잘못은 한쪽 발로 밟아 놓고 ‘경제선구자’나 ‘경제대통령’ 소리를 외치면서 무덤을 파헤쳐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 그해 11월 총선거에서 파시스트들은 많은 표를 얻지 못했다. 무솔리니는 이 일을 수류탄으로 앙갚음했다. 사회당 선거 축하식이 벌어지는 날, 그곳으로 여러 개의 폭탄이 날아들었다. 그러자 파시스트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파시스트와 맞서던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기 시작했다 ..  (201쪽)

우리 스스로 독재자를 불러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독재자가 아닙니다. 허울좋은 민주주의가 아닌 참 민주주의를 이 땅에 뿌리내려 놓지 않으면, 독재자는 언제고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무늬뿐인 자유가 아닌 참 자유를 이 나라에 새겨 놓지 않으면, 독재자는 언제고 다시 꿈틀대며 고개를 내밉니다. 내 밥그릇에만 눈알을 박고 이웃 삶터에는 나 몰라라 하는 삶을 고스란히 이어가면, 피에 굶주린 독재자와 똘마니는 국가보안법 쇠사슬과 몽둥이를 거리낌없이 휘두르고야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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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치 저녁나절이 되면, 하루일을 마치기 앞서, 책방에서 이웃 책방 할아버지하고 술 한잔을 나누는 <삼성서림> 할아버지. ⓒ 최종규


 (4) 책과 소주

책값을 셈하려 하니, 〈삼성〉 할아버지가 소주잔을 건넵니다. “술 안 하시나? 술 하시면 한잔 받으시지?” 책값 셈보다 소주잔이 먼저입니다. 술잔을 받고 꼴까닥 넘기니 “술 잘 드시네. 진작 줬어야지” 하며 옆에서 안주를 챙겨 줍니다. 책값 셈은 뒤로 미뤄집니다.

고시책을 팔겠다는 손님이 들어옵니다. 〈삼성〉 할아버지가 죽 살펴보더니, 사기 어렵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몇 마디 흥정이 이어지다가 도로 가져가기로 합니다. 슬그머니 내다보니, 고시책 여섯 권을 팔려고 했던 분은 자가용 몰고 왔습니다.

하긴. 요즈음은 아이들 교과서 하나 사려고 헌책방에 오는 아주머니들도 자가용을 끌고 오던데.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걸어서 헌책방 나들이를 하는 분을 보기 어려워졌지. 한 푼이나마 아끼려고 헌책방을 찾아오던 발길은 많이 사라졌지. 조금 헐거나 다친 책을 값싸게 사서 집에서 손수 매만지고 추슬러서 쓰려는 알뜰한 사람도 많이 줄었지.

고시책 팔겠다는 손님은 ‘헌책방에서 그런 책 안 사 준다’고 투덜투덜대려나. 거꾸로, 그 손님이 헌책방 임자가 된다고 하면 그 고시책을 사 주려나. 그리고 그 손님이 바라는 값대로 사 주려나.

책 겉이 좀 헐었어도 책싸개를 대면 헌 모습은 하나도 안 보이는데. 책은 종이껍데기를 보자는 책이 아니라, 속에 담긴 알맹이를 마음에 새기자는 책인데. 책은 집에 보기좋게 모셔 놓거나 손님들한테 자랑하려고 내보이는 장식품이 아니라, 아직 어리숙하거나 모자란 자기 깜냥을 깨닫고 다스리고 추스르면서 날마다 새롭게 거듭나려는 자기닦음이요 자기뉘우침이요 자기배움인데.

소주 석 잔째까지 마신 다음 일어섭니다. “책도 잘 보고 술도 잘 마시고 돌아갑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예, 잘 가요.” “할아버지들도 잘 드시고요.”

덧붙이는 글 | - 인천 배다리 〈삼성서림〉 / 032) 773-8448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덧붙이는 글 - 인천 배다리 〈삼성서림〉 / 032) 773-8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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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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