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예학의 대가를 만나다

논산 벌곡의 신독재 김집 선생 묘소를 찾아서

등록 2008.07.25 17:13수정 2008.07.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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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재 김집 선생 묘소 논산시 벌곡면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 신독재 김집 선생 묘소(위). 아래에 있는 묘소는 신독재 선생의 후처인 덕수이씨의 묘소이다. ⓒ 김동이

▲ 신독재 김집 선생 묘소 논산시 벌곡면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 신독재 김집 선생 묘소(위). 아래에 있는 묘소는 신독재 선생의 후처인 덕수이씨의 묘소이다. ⓒ 김동이

조선 시대 예학의 두 거두하면 사계 김장생 선생과 그의 아들 신독재 김집 선생을 떠올릴 것이다. 충남 계룡시에 가면 지방유형문화재 134호로 지정되어 있는 '은농재'라는 사계 선생의 고택이 있고, 논산시 연산면에는 사계 선생의 묘소가 있다. 이곳은 현재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고택과 묘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신독재 김집 선생의 사당과 묘소는 논산시 벌곡면의 한 종교단체 소유의 땅 안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종교단체의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또 출입을 하더라도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처음 이곳을 찾는 이들은 묘소를 찾아가기도 수월하지 않다.

 

조선 예학의 체계를 집대성한 신독재 선생을 만나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던 지난 23일 벌곡면에서 바르게살기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한 어르신과 함께 벌곡 마을이 처한 현안 문제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신독재 김집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물론, 취재를 목적으로 묘소를 방문했지만 일행들도 마찬가지로 소속과 목적을 밝힌 뒤 종교단체측의 허락을 받아 신독재 선생 묘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김집 선생 묘소 취재왔습니다."

"어디서 왔습니까?"

"지역신문사에서 나왔습니다."

 

"몇 명인가요? 지금 전화주신 분이 기자이신가요?"

"3명이고, 전 기자가 아니고 마을 주민인데 안내하러 왔어요."

"묘소에 가본 적 있나요? 한참 들어가셔야 하는데?"

"예전에 한 번 가 본 적 있어요. 문이나 열어주세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입구에 적혀 있는 안내전화로 전화를 걸어 통화한 뒤 잠시 기다리라는 종교단체의 지시에 따라 정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얼마 후 다시 종교단체의 관계자로부터 들어가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고, 이내 정문에 설치되어 있던 안내바가 올라갔다.

 

정문을 통과해 차량으로 한참을 들어가는데 사람의 손길이 묻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밭을 일구는 농부들의 모습도 보였다. 한 5분여를 이동해 마침내 신독재 선생의 사당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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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재 선생 사당 사당의 내외부 모습. ⓒ 김동이

▲ 신독재 선생 사당 사당의 내외부 모습. ⓒ 김동이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신독재 선생의 사당은 자물쇠로 굳게 닫혀져 있어 그 안은 들어가볼 수 없었지만 옆으로 돌아가니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사당은 눈으로 볼 수가 있었다. 사당 안도 마찬가지로 굳게 닫혀져 있어 그 안에 어떠한 것이 있는지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옛날 예학을 집대성했던 신독재 선생의 자취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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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재 선생 사당 지킴이 신독재 선생 사당 처마 밑에 자리잡고 대형 땡벌집. 굳게 문이 닫혀있는 사당을 땡벌이 지키고 있다. ⓒ 김동이

▲ 신독재 선생 사당 지킴이 신독재 선생 사당 처마 밑에 자리잡고 대형 땡벌집. 굳게 문이 닫혀있는 사당을 땡벌이 지키고 있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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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생명력 신독재 선생 사당 기와에서 불굴의 생명력으로 자라고 있는 들풀. ⓒ 김동이

▲ 불굴의 생명력 신독재 선생 사당 기와에서 불굴의 생명력으로 자라고 있는 들풀. ⓒ 김동이

굳게 닫혀 있는 신독재 선생의 사당은 사당 처마 밑에 자리잡고 있는 땡벌들이 지키고 있었다. 또한, 고택 지붕위 기와 사이에서 피어난 이름모를 들풀은 누군가의 접근을 망보는 듯 불굴의 생명력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여기가 문화재로 지정된 게 아닐 텐데요?"

"그렇지. 김집 선생 묘소를 찾아가야지."

"저기 비석에 화살표가 있네요."

"아까 한참을 올라가라는 걸 보니께 여기서부터도 더 들어가야 되나보네?"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까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 들어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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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 모양의 이정표 사당에서 묘소로 이동하는 방향을 가리켜주는 묘비로 된 이정표. ⓒ 김동이

▲ 묘비 모양의 이정표 사당에서 묘소로 이동하는 방향을 가리켜주는 묘비로 된 이정표. ⓒ 김동이

사당 근처에 있는 이정표를 따라 다시 이동을 하는데 급경사면이 나왔다. 다행히 도로포장이 되어 있어 차량으로 이동하기에도 큰 무리가 없었다. 포장이 끝나는 곳까지 차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부터 다시 도보로 산을 향해 이동했다.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눈앞에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펼쳐졌고 그 뒤쪽으로 마침내 일행들이 찾는 신독재 선생의 묘소가 위치하고 있었다. 신독재 선생의 묘소 아래에는 '덕수이씨지묘'라는 신독재 선생의 부인묘소가 함께 위치하고 있었다.

 

'드디어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를 다 만나게 되는군.'

 

이미 사계 김장생 선생 고택과 묘소는 다녀온 터라 힘든 과정을 거쳐 만나게 된 신독재 선생을 만남으로써 조선 예학의 두 거목을 모두 만나게 된 것이다.

 

문화재 보호는 후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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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재 선생 묘소와 묘비 ‘문경공신독재김집선생지묘(文敬公愼獨齋金集先生之墓)’라 쓰여 있는 묘비의 모습. 일반 비석과는 그 돌의 종류가 달랐다. ⓒ 김동이

▲ 신독재 선생 묘소와 묘비 ‘문경공신독재김집선생지묘(文敬公愼獨齋金集先生之墓)’라 쓰여 있는 묘비의 모습. 일반 비석과는 그 돌의 종류가 달랐다. ⓒ 김동이

신독재 묘소에 도착한 일행들은 가장 먼저 안내간판을 살펴보았다.

 

김집 선생 묘(金集 先生 墓, 문화재자료 제296호,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 36-3, 1656년)

김집(1574~1656)의 호는 신독재(愼獨齋),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조선 후기 예학자인 김장생(金長生)의 아들이다. 부친의 학문을 계승하고 이를 더욱 깊이 연구하여 예학(禮學)의 체계를 세웠다. 묘역(墓域)에는 상석(床石 : 무덤앞에 재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 문인석(文人石), 석주(石柱 : 돌로 만든 기둥), 묘비(墓碑 : 무덤앞에 세우는 비석)가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비몸 머리의 양쪽 귀를 잘라낸 형식으로 앞면에 ‘문경공신독재김집선생지묘(文敬公愼獨齋金集先生之墓)’라 쓰여 있고, 비문은 이유태(李維泰)가 짓고, 윤선거(尹宣擧)가 써서 1663년(현종 4년)에 건립하였다. 김집 선생 묘소 앞에는 후처 덕수 이씨의 묘소와 묘비가 있다. 이 묘비의 비문은 이상영(李商永)이 짓고, 후손 김영숙(金永淑)이 썼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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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재 선생 묘소 석주 세월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묘소 주변 석주의 모습. ⓒ 김동이

▲ 신독재 선생 묘소 석주 세월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묘소 주변 석주의 모습.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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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재 선생 묘소 부근의 노송 기품있어 보이는 노송의 모습. ⓒ 김동이

▲ 신독재 선생 묘소 부근의 노송 기품있어 보이는 노송의 모습. ⓒ 김동이

안내 간판을 살펴본 뒤 묘소 주변을 둘러보았다. 묘소 주변에는 이름모를 아름다운 꽃들과 오랜 세월을 함께 묘소 주변에서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기품있는 노송 한 그루의 모습도 보였다.

 

묘소 주변에 있는 상석과 문인석도 세월의 흔적을 알 수 있었지만 특히 '문경공신독재김집선생지묘(文敬公愼獨齋金集先生之墓)'라 쓰여 있는 묘비는 그 돌의 종류를 알 수는 없지만 아무리 강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끄떡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을 한 채 신독재 선생의 묘소옆에 꿋꿋하게 서 있었다.

 

신독재 선생의 묘소에서 바라본 눈앞의 자연경관은 막힌 가슴을 뻥 뚫어 줄만큼 절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곳은 최근 한 종교단체가 납골묘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는 곳으로 만약에 허가가 떨어진다면 그 아름다운 자연이 훼손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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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절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사리탑과 탑신 신독재 선생 묘소 아래에 방치되어 있다. ⓒ 김동이

▲ 옛 절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사리탑과 탑신 신독재 선생 묘소 아래에 방치되어 있다. ⓒ 김동이

묘소 주변을 둘러본 뒤 눈을 묘지 아래로 돌려 살펴보고 있는데, 문득 옛 절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사리탑과 탑신이 눈에 띠었다. 같이 동행했던 마을 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아마도 그 사리탑은 예전에 이곳에 위치하고 있던 절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너무 높은데 있어 옮기는데 어려움이 있었나보네. 여기에 그냥 방치된 걸 보니께. 이런 것도 중요한 문화재인데 안타깝구먼. 후손들이 문화재를 보호해야 하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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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호는 후손들이 해야하는데 신독재 선생 묘소 아래에 방치되어 있는 사리탑을 바라보고 있는 마을 어르신의 모습. ⓒ 김동이

▲ 문화재 보호는 후손들이 해야하는데 신독재 선생 묘소 아래에 방치되어 있는 사리탑을 바라보고 있는 마을 어르신의 모습. ⓒ 김동이

어르신은 한숨을 내쉬면서 연신 사리탑을 손으로 보듬었다. 신독재 선생 묘소와 사리탑을 뒤로 하고 일행들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신독재 선생 묘소를 방문한 데 만족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조선 예학의 두 대가 중 한분인 신독재 김집 선생의 묘소를 직접 눈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이날의 힘들었던 여정이 결실을 맺게 됐다. 하지만 도지정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면서도 한 종교단체의 구역안에 위치해 있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운 점으로 남아 있다.

2008.07.25 17:13 ⓒ 2008 OhmyNews
#신독재 김집 #김장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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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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