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노조, '공정방송 사수' 스스로 포기할 건가

[취재후기] '촛불 시민들' 뿌리치고 '낙하산 사장'에 손 내민 노조를 보며

등록 2008.07.29 21:16수정 2008.07.2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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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못질된 YTN 사장실 18일 오후 서울 중구 YTN 본사의 사장 집무실이 YTN 노조원들에 의해 대못질 된 채로 출입이 통제돼 있다. YTN 노조는 지난 17일 주주총회에서 구본홍 사장이 선임된 것에 반발, 첫 출근일인 이날부터 출근 저지투쟁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김주성

▲ 대못질된 YTN 사장실 18일 오후 서울 중구 YTN 본사의 사장 집무실이 YTN 노조원들에 의해 대못질 된 채로 출입이 통제돼 있다. YTN 노조는 지난 17일 주주총회에서 구본홍 사장이 선임된 것에 반발, 첫 출근일인 이날부터 출근 저지투쟁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김주성

"주지하다시피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지금의 YTN보다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하루빨리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뉴스채널의 소유제한 완화 등 YTN의 미래를 좌우할 여러 가지 상황도 전개되고 있다. 당사자인 YTN이 손을 놓은 채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 구본홍 YTN사장이 지난 24일 노조에 대화를 제의하며 한 말

 

"특히 내가 주목한 것은 구본홍씨를 몰아낼 수 있을지 여부를 떠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외부 환경 속에서 자칫 우리가 아무런 대비책도 세우지 못하게 될 경우 공정방송은 물론 공정방송을 실현해내야 할 일터마저 존립이 위태롭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 박경석 YTN노조 지부장이 지난 28일 조합원들에게 총투표를 제의하며 한 말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YTN노조 집행부가 구본홍 사장이 줄곧 외쳤던 '외부 위기론'을 조합원들에게 설파하고 나섰다. 그리고는 구 사장이 말한 '공정방송을 위한' 복안을 받아들일지에 대한 여부를 묻는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하겠다고 했다(30~31일로 예정됐던 총투표는 보류됐다).

 

정권이 내려보낸 '낙하산'은 어떤 경우에서든 '보도전문채널' YTN에 한 발도 들여놓게 할 수 없다던 그 노조가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방송특보 출신의 구본홍씨는 '절대 안 된다'는 항의의 표시로 사장실 문짝에 대못을 박았던 그 노조가 말이다.

 

혼란스럽다. YTN노조가 지난 2달여 동안 어떤 활동을 벌여왔던가? 지난 17일 주총에서 사측이 벌인 '날치기 통과'의 횡포 앞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보는 이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던 조합원들, "분노는 하지만 좌절은 하지 말자"며 조합원들을 다독인 박경석 지부장의 모습은 단 열흘 만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촛불' 앞에 지원 요청했던 노조, 이젠 '낙하산'으로?      

 

YTN노조(당시 현덕수 지부장)는 한창 '촛불'이 일렁이던 지난 6월 초 "정부의 방송과 언론 장악 및 통제 정책을 막기 위해 국민들이 나서달라"고 호소하며 '촛불' 앞에 섰다. 시청광장과 태평로 등에서 '낙하산 사장 결사반대, 쟁취 방송독립'을 주제로 제작한 홍보물을 나눠주며 시민들을 만나고 촛불을 들었다.

 

그들의 절절함은 결국 '광우병 쇠고기'와 '공영방송 KBS 지키기' 등에 관심이 쏠려있던 시민들의 가슴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하나 둘 YTN본사 앞으로 이동해 촛불을 들었고, 그렇게 'YTN 투쟁'은 점점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시민들과 조합원들은 거의 매일 같이 YTN본사 앞에 모여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YTN 힘내라" "낙하산은 물러나라"고 외치며 지지를 보냈다.

 

YTN본사 앞은 '대선승리 논공행상 낙하산은 물러가라' '구본홍 OUT'이란 내용의 현수막과 피켓이 항상 가득히 걸려 있었다. 현덕수 전 지부장은 주총을 앞둔 본사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며 시민들과 함께 '낙하산 저지'의 결의를 다졌다.      

 

이렇게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던 YTN노조가, '공정방송'을 지키고자 거리로 나와 '촛불 시민'들에게 간절한 호소를 보냈던, 그리고 결국 시민들의 마음을 얻었던 YTN노조가 이제 시민이 아닌 '낙하산'에 손을 내밀고 있다. 이 광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총장에서 눈물 흘리며 외쳤던 '기자정신', 무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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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YTN 주주총회에서 구본홍 사장 선임안이 노조원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강행처리되자 여성조합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17일 오전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YTN 주주총회에서 구본홍 사장 선임안이 노조원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강행처리되자 여성조합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또한 우리는 지난 17일 YTN 주주총회 현장에서 노조 조합원들이 흘렸던 뜨거운 눈물을 잊지 않고 있다. "술자리에서 기자정신을 말하던 선배들은 어디로 갔냐"며 주총 진행을 강행한 회사 간부들을 눈물로 질타한 조합원들의 목소리도 아직 귓가에 맴돈다.

 

당시 조합원들의 표정에는 '구본홍은 안 된다'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고, 그만큼 단호한 모습으로 주총진행을 막고자 했다. 주총의 사회를 봤던 '선배' 진상옥 경영기획실장을 향한 조합원들의 부르짖음은 '낙하산 주총 강행'에 대한 원망을 넘어 '기자정신'을 함께 외쳤던 언론인으로서의 배신감이 가득 서려 있었다.

 

그들의 '뜨거운 눈물'은 결국 회사 측이 동원한 200여 용역 직원들의 검은 옷깃 앞에서 처참하게 무력화됐다. '낙하산 사장 선임 건'은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40여초 만에 '날치기 통과'됐고, 조합원들은 고개를 숙이며 단상 앞에 눈물을 뿌렸다. 박경석 지부장도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며 주총장을 뛰쳐나갔다.

 

이처럼 '기자정신'을 외치며 사측의 횡포 앞에 뜨거운 눈물을 보였던 YTN노조가, 용역 직원들의 무력 제지에 의해 뇌진탕 진단을 받고, 코뼈가 내려앉으면서까지 '낙하산 사장 선임'을 막고자 했던 YTN노조가 이제는 '투쟁의 머리띠'를 풀어놓는다고 한다. 비록 주총 안건은 통과됐지만 '가슴 아프게 아름다웠던' 그날의 풍경이 아직 생생한데, 갑자기 '가치' 대신 '실익'을 얻겠다고 나선 노조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장실 대못질하며 '타협 거부' 외쳤던 노조... 결국 '언론계 금기' 허무나?          

 

사장실 문에 대못질을 하며 '출근저지투쟁'을 시작했던 지난 19일의 풍경은 또 어땠나?

 

박경석 지부장은 당시 나무합판을 이용해 사장실 문에 망치질을 한 의미를 "구씨가 몰래 사장실까지 들어가서 나무판자를 뜯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생각과 목소리는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사장실 문에 X자로 박힌 나무합판은 구 사장은 절대 YTN 사장 자리에 앉게 할 수 없다는 노조의 강한 의지표현으로 보였다.

 

그렇게 조합원들은 낙하산을 막고자 '출근저지투쟁'을 시작했고, 지난 한 주 동안 새벽 같이 회사에 나와 '붉은 머리띠'를 동여맺다. '날치기 통과'로 사장에 임명된 구 사장도 아침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마다 노조는 "대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사안"이라며 "물러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며 구 사장을 문전박대했다.

 

불과 열흘 전, 아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구본홍씨를 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출근저지투쟁을 이어갈 것"이라던 YTN노조가, 구 사장을 향해 "드릴 말씀도, 들을 말씀도 없다"며 "전체 언론계를 욕보이게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던 YTN노조가, 이제는 자신들이 말했던 '언론계의 금기'를 스스로 허물고 '낙하산 사장'을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몸으로 조합원 보호한 '촛불 시민'들 앞에 무슨 말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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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YTN 신임사장 선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가 열린 14일 오전 서울 중구 YTN 본사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원들과 시민들이 "공정방송 사수", "구본홍 사퇴"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구본홍 YTN 신임사장 선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가 열린 14일 오전 서울 중구 YTN 본사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원들과 시민들이 "공정방송 사수", "구본홍 사퇴"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도대체 이 모습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두달이 넘게 속으로 박수를 치며 지켜본 YTN노조의 모습을 지금 이 순간 뇌리 속에서 깨끗이 지워야 한단 말인가?

 

3번째 출근저지투쟁이 진행됐던 지난 22일 아침, 박경석 지부장이 조합원들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외쳤던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우리가 그동안 긴 싸움을 계속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정당하다는 명분 하나였습니다. 그것 하나로 싸웁시다. 그리고 구호는 이렇게 통일합시다. '구본홍은 돌아가라!'"

 

YTN노조는 그들이 스스로 외쳤던 '정당하다는 명분'을 이제와 버릴 생각인가? '공정방송'을 사수하고자 YTN 앞에서 촛불을 들었던, 상암동 주총 장소에서 몸으로 바리케이드를 치며 조합원들을 보호했던 '촛불 시민'들 앞에서 어떤 말을 할 작정인가?

2008.07.29 21:16 ⓒ 2008 OhmyNews
#YTN #촛불 시민 #구본홍 #박경성 #YTN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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