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도 살려내는 박스의 신나는 춤

'김봉태전' 갤러리현대에서 8월 10일까지

등록 2008.08.04 09:54수정 2008.08.0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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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입구에 붙은 '김봉태전' 안내포스터 ⓒ 김형순


작가소개
 김봉태((金鳳台) 부산생(1937~). 서울대학교 미대 회화과 졸업. 미국 캘리포니아 오티스대학원 졸업.

개인전은 한국, 미국, 일본, 프랑스 등에서 40회 이상 가짐. 또한 단체전은 미국 브루클린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마이애미아트페어, 런던 카운실 오브 이라이 하우서전, 오클랜드미술관 초대전, 성곡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파리 살롱2000, 후쿠오카미술관, 워커힐미술관, 싱가포르아트미술관 등 국내외 미술관에서 초대됨.

소장된 미술관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프랑스정부, IBM사 등이 있음.
1960년대 한국추상화단을 이끌었던 대표적 작가 중 한 명인 김봉태(1937~) 화백의 '춤추는 박스(Dancing Box)전'이 8월 10일까지 갤러리현대(두가헌갤러리 포함)에서 열린다. 

'춤추는 박스'는 역설적인 제목이다. 이 주제는 전화위복 내지 삶의 대전환을 상징한다. 아무 쓸데없는 것처럼 보이는 박스를 춤추게 함으로써 생명의 기운과 활력을 되찾는 것을 뜻한다. 하긴 원래 예술이란 죽어가는 것을 살려내고 복구 시키는 주술적 치유성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대에서 회화과를 마친 후 1963년 미국 캘리포니아 오티스대학원에서 회화(조각)를 공부했다. 이후 회화, 조각, 판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을 해왔고, 서양미술사의 권위서인 <현대미술(ART TODAY)>(E. 루시 스미스 저)에서 백남준, 하종현, 김종학과 함께 한국의 대표작가로 소개되기도 했다.

70대 작가가 아니라 20대 청년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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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박스(Dancing Box) 2006-132' 앞에 서 있는 작가 김봉태 ⓒ 김형순


김봉태 작가의 첫인상은 70대 작가가 아니라 20대 청년처럼 보였다. 그런 젊음은 역시 창작의 열정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삶이란 조금만 소홀히 해도 금방 기가 죽어 버리기 쉬운데 그런 것들에 맥을 살려주는 힘이 넘친다.


그는 나이 들수록 원색을 많이 쓰게 된다고 말한다. 컬러풀한 인생이 얼마나 멋지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의 색감은 바로 작가의 온몸에 담겨져 있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에서 새어 나온 것 같다. 인품이 주는 향기가 전시장을 꽉 메운다. 

작가는 "우리는 유교문화의 전통으로 원색 사용이 상당히 오래 억압되어 온 면도 없지 않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이 마음속에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 그리고 이런 우리 속에 잠재한 강력한 원색에 대한 동경은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한다.

나이 들수록 가볍고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것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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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박스(Dancing Box) 2008-78', 반투명 플렉시글라스에 아크릴물감과 테이프(Acrylic & Tape on Frosted Plexiglas) 90×90cm 2008 ⓒ 김봉태


그는 1960년에 '악튀엘(Actuel, 현시점)' 창립멤버였고 앵포르멜운동 등에 참여하며 한국현대미술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서정추상과 색면구상에도 관심이 높았으나 이제는 그런 것들을 뛰어넘어 평면과 입체를 유기적으로 활용하면서 산뜻한 색채로 생명의 약동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나이 들수록 무겁고 진지한 것이 시시해 보이는 모양이다. 가볍고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것에 정신이 쏠려 있다. 인생의 유한성을 더 절감하는 나이라 그런지 박스처럼 틀에 갇혀 있는 것에서 어떻게든 벗어 나오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저기 삐죽빼죽 옆으로 튀어나온 모습이 참으로 선명한 색채와 어울려 아름답게 보인다. 속이 확 뚫리고 마음도 통쾌해지는 것 같다. 그의 색채에 대한 감각은 나이와 상관없이 놀랍도록 신선하고 맑고 순수하다.

색채는 노래가 되고 형태는 춤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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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박스(Dancing Box) 2006-158', 반투명 플렉시글라스에 아크릴물감과 테이프(Acrylic & Tape on Frosted Plexiglas) 120×90cm 2006 ⓒ 김봉태


이 작품은 정말 상큼하고 유쾌하다.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바탕에 흰색과 검은색이 더해졌다. 그 모습이 마치 남녀가 연애하는 모습 같기도 하고 다정한 친구끼리 어깨동무를 한 것 같기도 하고 유연한 몸짓으로 춤을 추는 남녀 같기도 하여 눈이 즐겁다. 

작가의 내면에서 샘솟는 삶의 환희를 이렇게 발랄한 색채와 유려한 형태로 유감없이 멋진 축제의 향연으로 바꿔 표현할 수 있다니 놀랍다. 한편 이렇게 마음속에 담아둔 이런 색채를 유감없이 작업에 쏟아놓을 때 작가가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도 연상된다.

미술평론가 서성록은 그의 그림이 품고 있는 동심 어린 축제의식을 이렇게 적고 있다.

"색깔은 노래가 되고 형태는 사람이 되어 평면이란 스테이지에서 껑충껑충 숭어 춤을 추어댄다. 평면 위에 등장하는 박스들은 마치 어릴 적 색종이를 하며 놀 때처럼 보는 사람을 과거의 시간 속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면 보는 사람은 꼼짝없이 유희적인 동심의 공간 속으로 빠져든다."

단조로운 일상을 뚫고 나가는 자유인의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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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박스(Dancing Box) 연작', 스테인리스스틸에 산업용페인트(Industrial Paint on Stainless Steel) 2008 ⓒ 김형순


이런 조각 혹은 설치작품은 단조로운 일상을 뚫고나가는 자유인의 몸부림을 형상화한 것 같다. 그러기에 팔랑개비나 풍차가 돌아갈 때의 무브망(운동감), 천체를 여행하는 우주비행사를 상기 시킨다. 틀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 이런 모습이 보기에 너무 좋다.

어떤 경계도 없이 어디든지 떠날 수 있는, 박진감 넘치는 유연한 몸짓을 자유자재로 구가할 수 있는 이 행복한 자유인은 바로 작가의 이상형인지 모른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 자유인처럼 춤을 출 수 있다면 아무리 꽉 막힌 세상에서라도 숨을 쉬면서 살 수 있지 않겠는가.

다 버려진 것에 생명 불어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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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박스(Dancing Box) 2006-129', 반투명 플렉시글라스에 아크릴물감과 테이프(Acrylic & Tape on Frosted Plexiglas) 90×90cm 2006 ⓒ 김형순


이 작품은 여러 형태의 박스가 벌이는 다양한 변주가 재미있다. 정사각형, 긴 사각형, 직사각형, 변형 사각형 그리고 파랑과 노랑,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오렌지색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춘다. 조각인지 설치미술인지 추상인지 구상인지 2차원인지 3차원인지를 떠나 작업은 관객의 상상력도 자극하고 마음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하다.

작가는 말한다. "박스는 기능을 다하면 버려지는 무용지물이 되지만 발상을 전환하여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이번 내 작업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같은 작가의 이런 절박한 몸부림은 결국 버릴 수밖에 없는 쓰레기 박스를 춤추게 만든 것이다. 

버려진 것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이런 전환의 미학이야말로 현대미술의 큰 흐름이 아닌가싶다. 뒤샹은 변기에서 현대미술을 시작했고 세자르는 폐품, 쓰레기, 잡동사니로 현대미술을 더 가속화 시켰다. 이 작가의 발상전환도 어느 현대작가에 못지않다. 

틀에 박힌 사고를 깨야 창조적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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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박스(Dancing Box) 2006-132', 반투명 플렉시글라스에 아크릴물감과 색테이프(Acrylic & Tape on Frosted Plexiglas) 180×450cm 2006 ⓒ 김형순


끝으로 대작에 속하는 작품 하나를 더 보자. 여기에선 오대양육대주가 다 보이고, 작가가 50년 닦은 그림 이력도 다 담긴 것 같다. 우윳빛 바탕에 삼원색이 서로 다르게 얽히고 설켜있어 무질서해 보이나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잘 이룬다. 게다가 가운데를 위로 올려붙이는 틀 깨기는 이 작품을 더 돋보이게 한다.

이렇게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측면에서 자유롭게 상상할 때 비로소 창조성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 이 작가의 예술철학인가 보다. 이를 확대해석하면 우리 사회도 글로벌 시대에 맞춰 종교, 정치, 언어, 사회, 예술 분야 등이 더 다양해져야 문화의 꽃이 활짝 필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한 가지 추가하면 작가는 한국문화의 미래와 저력에 대한 그 누구보다 밝은 전망과 기대를 하지만 한편으로 어려서부터 상 타기 위한 틀에 박힌 미술교육 등 한국교육의 전반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이번 전이 그런 교육도 되비춰보는 거울이 되면 더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소개 www.galleryhyundai.com 110-190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122 02)2287-3591


덧붙이는 글 갤러리소개 www.galleryhyundai.com 110-190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122 02)2287-3591
#김봉태 #서성록 #갤러리현대 #뒤샹 #세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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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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