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의 어라연 계곡을 찾아서

[막내와 함께 떠나는 산골여행②] 영월에서 정선까지

등록 2008.08.06 21:41수정 2008.08.0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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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꽃 새벽강에 노란꽃이 피어있다. ⓒ 임재만


아침에 눈을 뜨니 동창이 밝아 온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막내는 아직 잠에 푹 빠져 있다. 날씨를 살피러 밖으로 나갔다. 비는 오지 않지만 짙은 안개로 마을지붕만이 어렴풋이 보인다. 강둑에는 나리꽃이 벌써 깨어나 미루나무를 등지고 곱게 피어있고, 염소 한 마리는 고삐에 묶인 채 이슬 맺힌 풀밭을 생각 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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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고삐에 묶인 염소 한마리가 강가에서 놀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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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꽃 담배밭에 꽃이 활짝 피어 있다 ⓒ 임재만


마을길을 따라 동네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나팔꽃처럼 피어 있는 담배밭이 안개를 서서히 걷어내고 있다. 담배꽃은 자주 볼 수 없었지만 오늘 새벽에 다시 보니 그 모습이 새롭다. 예전에 친구들과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밤늦도록 담배잎을 엮던 기억, 그리고 담배잎을 말리던 건조실 아궁이에다 옥수수를 몰래 구워먹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마을길 모퉁이를 돌아서니 국제현대미술관이라는 입구가 보인다. 입구에는 무궁화꽃이 피어 있고 시골초등학교 운동장만한 곳에 여러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새벽인지라 아직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고 참새들만 바쁘게 날아다닌다. 엷은 안개 속에 묻혀있는 갖가지 조각상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특히 시골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미술관은 여러 시골집들에 둘러싸여 고향 같이 평화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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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 어른키보다 높게 자란 옥수수밭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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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옥마을 전경 삼옥마을의 새벽풍경 ⓒ 임재만


아침에 마을 한 바퀴를 돌고 다시 민박집을 찾아드니 막내가 머리를 감고 막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방 한 켠에 있던 짐을 챙겨 동강의 어라연계곡으로 출발했다. 안개가 자욱한 동강을 끼고 가는 길은 제법 운치가 있다. 막내가 다시 묻는다.

"아빠! 어라연이 무슨 뜻이야?"
"응, 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이 비단같이 곱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야."
"그러면 고기들이 많이 있겠네."
"글쎄! 고기는 예전처럼 많을지 모르지만 참 멋있는 곳이지."
"또 많이 걸어야 하나?"
"응! 2km정도."

동강의 계곡을 따라 어라연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라연으로 가는 길은 아직 잘 개발되지 않아 계곡에 널린 바위와 돌을 밟고 넘으며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다. 한참을 따라오던 막내는 땀도 나고 젖은 풀섶으로 영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이다.

이곳 어라연은 동강에서 래프팅할 때 지나는 곳으로 걸어서 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편이다. 막내의 눈치를 살피며 동강을 따라 계속 걸었다. 강 한가운데로 소나무가 있는 돌 섬이 보인다. 그 섬 양옆으로 동강이 갈라져 흐르고 있는데 경치가 아주 빼어나다. 어라연 가까이에 도착하자 땀이 볼을 타고 쭉 흘러내린다.


어라연은 깎아지를 듯한 절벽 위에 소나무가 무더기로 서 있다. 절벽 아래로는 래프팅하는 사람들이 벌써 하나 둘씩 내려오고 있다. 어라연 절벽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풍경은 참으로 시원하기만 하다. 손을 흔들어 주자 그들도 같이 손을 흔들며 반가운 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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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연 모습 어라연 계곡의 모습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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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연 계곡 어라연 계곡에서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 ⓒ 임재만


래프팅하는 사람들을 따라 돌밭을 걸으면서 어라연 계곡을  나왔다. 멀리 하늘을 보니 구름이 점점 얇아지는 느낌이다. 다시 차를 몰고 어제 올랐던 봉래산으로 향했다. 산 아래에서 쳐다보니 아직도 구름이 산 꼭대기를 휘감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 정상을 향해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점점 산위로 올라가자 구름이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곧 하늘이 생각처럼 파랗게 열릴 것 같다. 차를 별마로 천문대 주차장에 주차시켜 놓고 숨가쁘게 정상으로 걸어 올라 갔다.

고대하던 봉래산 정상에 다시 서니 영월 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산봉우리에는 흰 구름이 길게 걸쳐 있고 동강과 서강은 영월읍에서 합류하여 남한강으로 그림같이 흐르고 있다. 이곳에 올라온 많은 사람들의 탄성이 이어지며 봉래산은 금세 떠들썩해진다. 막내 녀석도 덩달아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아빠! 정말 멋지다."
"다시 올라 오기를 잘했지."
"응! 아까는 구름이 많이 있는 것 같았는데 금세 없어 졌어요."
"이왕 올라온 김에 저 아래 풍경 좀 잘 살피고 천천히 내려가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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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읍의 전경 봉래산에서 바라본 영월읍의 풍경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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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풍경 봉래산 아래 농촌의 풍경 ⓒ 임재만


봉래산을 내려와 정선으로 출발했다. 정선의 신동읍 주변에는 멋진 함백산도 있지만 고랭지 채소밭을 돌아 볼 수 있어 여행지로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다. 산길을 돌고 돌아 고랭지 농장(백운농장)에 올라섰다. 마치 푸른 초원이 넓게 펼쳐진 듯 배추와 무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산등성이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하늘에 그림처럼 닿아 있고 그 위로 엷은 구름이 떠있다. 어느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동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곳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 촬영지로 알려져 있어 젊은 친구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이곳을 찾으려면 서울 청량리역에서 강원도 예미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면 된다. 서울에서 이곳까지는 3시간 반 정도가 소요가되는데 예미역에서 백운농장까지는 다시 택시를 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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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냉지 농원 함백의 고산지대에 있는 농장 ⓒ 임재만


빗방울이 다시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정선읍으로 가는 길에 강원랜드와 화암동굴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유혹한다. 그 유혹을 뿌리치고 정선 읍내로 향하였다. 정선읍은 읍 한가운데로 조양강이 흐르고 있는데 풍경이 시골스럽지만 답답하지는 않다.

읍내의 정선오일장 근처에서 찐빵 가게를 만났다. 김이 모락모락 난다. 점심 때가 지난 뒤여서 몹시 시장하다 보니 그곳에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정선오일장은 오래된 재래시장으로 갖가지 약초와 산나물이 넘쳐나고 옥수수로 만든 여러 음식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여느 재래시장보다 크거나 특별한 것은 없지만 갖가지 약초시장으로 역사와 이름이 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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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냉지 무밭 무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 임재만


찐빵 몇 개로 시장기를 달래니 가게 주인 아저씨의 얼굴이 제대로 보인다. 주인장에게 정선에 대한 여러 정보를 얻어 동강의 상류인 정선의 북면으로 출발하였다. 정선 읍내를 넘어 서자 어둠이 짙게 깔린다. 정선의 북평면을 지나 북면의 아우라지에 이르니 어디선가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그 음악소리를 따라 들어가자 내일부터 열리는 동강뗏목축제의 전야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골지천과 송천이 몸을 섞는 이곳 아우라지는 남한강 천리 물길 따라 뗏목을 운반하던 뗏꾼들의 아리랑 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으로 아리랑의 역사가 있는 유적지다. 또 정선아리랑 가사 중에서 애정편의 유래지인 아우라지는 강을 사이에 두고 장마철 강물이 불어나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된 사랑하는 남녀의 애틋함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강 건너 산기슭에선 '아우라지 처녀' 동상이 오늘도 강물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 싸리골 올 동백이 다 떨어진다 /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정선아우라지는 정선아리랑의 발원지로 유명한 강변이다.
 
또 웬수 같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축제장을 대충 돌아보고 민박집을 찾아나섰다. 그런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그때 막내가 의외의 제안을 해온다.

"아빠 ! 차에서 자는 것은 어때요?"
"좀 불편하지만 그 것도 괜챦지."
"그럼 차에서 자지요 뭐."
"그럼 방값은 굳는 거네."
"훨!"

아우라지 강변의 한 적한 곳에 차를 주차시키고 아리랑 소리가 들려오는 강변에서 추억의 하루밤을 보냈다.

여행코스 : 삼옥마을 - 어라연계곡 - 봉래산 - 예미역 - 백운농장(고냉지 농원)-  정선읍  - 아우라지

덧붙이는 글 | SBS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SBS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함백 #어라연 #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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