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도 먼지나지 않는 당신, 당당하게 곧은 길 가십시오

전 국회의원 정청래가 KBS 정연주 전 사장께 드리는 공개편지

등록 2008.08.12 18:01수정 2008.08.1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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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앞에서 '정권 하수인 감사원' '청부감사 원천무효' 등의 피켓을 들고, '부실 경영 및 인사권 남용'을 이유로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해 해임을 요구한 감사원을 규탄했다. ⓒ 권우성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앞에서 '정권 하수인 감사원' '청부감사 원천무효' 등의 피켓을 들고, '부실 경영 및 인사권 남용'을 이유로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해 해임을 요구한 감사원을 규탄했다. ⓒ 권우성

정연주 사장님! 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지난 4년 동안 저는 문광위 국회의원으로 정사장님은 국회 문광위의 피감기관 수장으로 만났습니다. 저는 '공영방송 KBS 정연주 사장님'으로 정 사장님은 저를 '문광위 국회의원'으로 서로 존중하고 예우하며 만났습니다.

 

지금에서야 말씀드리지만 저는 정연주 사장님의 팬이었습니다.

 

한겨레 신문사 워싱턴 특파원으로 필봉을 휘날리실 때 참으로 존경했었습니다. 한겨레신문 창간 주주로서 정연주 특파원은 저의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런 분을 국회에서 갑을 관계로 만난다는 것이 어찌 좀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었습니다.

 

어제 최문순 의원께서 올리신 동아투위에 대한 글을 읽으며 눈물이 흘렀습니다.(원문보기 http://blog.daum.net/moonsoonc

 

사실 저는 정 사장님께서 동아투위 관계자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어려운 고비를 넘겨 오신 줄은 몰랐습니다. 언제나 당당하게 소신을 말하는 강직한 분으로만 알았습니다.

 

아직도 청렴결백하게 전셋집에 살며 김영삼 집권 시절은 물론 87년 후보 단일화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관직을 거부하신 그 강직함까지는 몰랐습니다. 감사원에서 털어도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은 '천연기념물 정연주'를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공영방송 KBS를 지키자며 저는 한 달이 넘게 밤에는 KBS로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정사장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저는 지난 4년 동안 공영방송 KBS의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재정구조의 모순을 해결하려면 KBS 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이 온당함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이 국민부담의 측면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정사장께서 저에게 많은 감사의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KBS 내에서 정사장님을 반대하는 세력이 노조를 중심으로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KBS 수신료 인상과 공영방송에 걸맞은 경영혁신 과정에서 불거진 성장통이라는 것도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정연주 사장은 무죄입니다.

 

저는 정 사장께서 말하지 않아도 그 업적을 잘 알고 있습니다.

 

"KBS 사장의 제왕적 권력을 해체하고, 회사 지도부에 집중되어 있는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와 경직화된 관료주의 조직의 폐쇄성을 없앴고 일선 직원들의 독창력과 창의력을 억압하는 과거의 틀을 깨고, 자율과 자유의 공간을 최대한 넓히기 위해 지난 5년여 동안 노력해"온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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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여의도 KBS본관 사장실에서 정연주 사장이 민주당 언론장악저지대책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권우성

25일 오후 여의도 KBS본관 사장실에서 정연주 사장이 민주당 언론장악저지대책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권우성

언론기관으로서 가장 명예로운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의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1986년 벌어졌던 'KBS 시청료거부운동'에 비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사원이 발표한 1170억 적자가 계산 방법상 오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정사장께서 말씀하셨듯이 KBS는 영리사업 단체가 아닙니다.

 

만약 KBS를 적자와 흑자의 개념으로 정리한다면 이미 그것은 공영방송이 아니라 상업방송인 것입니다. 백보양보해서 적자를 낸 공공기관의 수장이 물러나야 한다면 제일 먼저 물러나야 할 사람은 바로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힌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고 강만수 장관입니다. 방송의 독립성을 앞장서 해친 최시중 위원장이 물러나야 합니다.

 

각설하고 이미 이명박정권은 헌법을 준수할 의지도 법을 법대로 집행할 의지도 정신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기댈 것은 물리력에 의존하는 것 말고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런 폭압적인 상황에서 잘 버텨주신 정사장님께 국민의 한사람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정사장께서는 이렇게 소회를 쓰셨더군요.

 

"지난 8일 공영방송 KBS가 공권력에 의해 무참하게 침탈되고 유린되는 현장을 보면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없다는 사실이 가슴 저미게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날 여러분들이 3층 복도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을 사장실에서 인터넷을 통해 보았습니다. 혼자 많이도 울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분노와 절규는 제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수모와 치욕스런 장면을 참아내느라 고통스러웠습니까? 어제 쓰신 편지를 읽으며 다시 한번 제 눈시울이 붉어져 옴을 느꼈습니다. 저는 8월 8일 위 현장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루 전 날 경찰에 불법 연행이 되었습니다.

 

저는 KBS를 위해 지난 4년 동안 국회에서 나름대로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KBS 앞에서 촛불을 들면서 KBS 화장실도 이용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불법적으로 KBS 사장직을 해임당하셨고 어제 짐을 정리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저의 신세처럼 정사장님도 KBS 건물에 당분간 들어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정사장님께서 짐을 싸셨다니까 촛불을 든 국민들이 약간 의아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지금 정사장님의 비서실 직원조차 지시를 듣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짐 잘 싸셨습니다. 장소를 바꿔서 계속 끝까지 오만한 권력과 싸우신다는 결연한 의지를 저는 읽고 있습니다.

 

저도 있는 힘을 다해 공영방송 KBS 지키기에 열중하겠습니다. 정사장님은 합법적 수단을 총 동원해서 치열하게 끝까지 싸워주시리라 믿습니다. KBS 앞에는 연일 촛불을 드는 국민들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KBS 직원들도 들고 일어났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였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언론의 소중함과 가치를 손바닥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문광위를 선택해 갔던 것도 바로 언론개혁의 화두가 저의 가슴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운명이 저의 존경의 대상이었던 정사장님과의 만남을 주선한 것 같습니다.

 

저는 무거운 금배지를 내려놓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자연인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국민의 한사람으로 촛불시민의 한사람으로 '공영방송 KBS 지키기'에 나섰습니다. 저나 정사장님이 생각하는 공영방송의 길은 일치하리라 믿습니다. 먼저 고초를 다하며 걸어오신 그 길을 이제 저도 가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사장님은 저의 인생의 선배이자 언론운동의 귀감이 되는 선배님이십니다. 어색하지만 한번 불러 보겠습니다. 정선배님! 기운내시고 기죽지 마십시오. 선배님 뒤에는 촛불을 든 국민들이 있습니다. 힘차게 당당하게 굳세게 곧은 길을 가십시오.

 

2008년 8월 12일

후배 정청래 드림

덧붙이는 글 | 방송을 지켜야 민주주의 삽니다.(방지민!!!) 

2008.08.12 18:01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방송을 지켜야 민주주의 삽니다.(방지민!!!) 
#언론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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