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죽음이 왜 의로운지 전하겠습니다

화재현장에서 이슬처럼 사라진 동료 소방관을 보내며

등록 2008.08.22 19:12수정 2008.08.2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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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현장에 놓인 꽃다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어느 시민이 놓고간 꽃다발과 추도의 글 ⓒ 김주환

▲ 화재현장에 놓인 꽃다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어느 시민이 놓고간 꽃다발과 추도의 글 ⓒ 김주환

 

당신은 오늘 가장 소중한 죽음으로 떠납니다. 우리는 지금 당신의 죽음을 애달파 하지만 훗날 우리가 떠날 때엔 당신과 같은 죽음을 택하지 못한 우리 자신을 애달파 할 것입니다. 당신의 숭고한 죽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위 글은 21일 오후 4시, 3명의 소방대원의 목숨을 앗아 간 서울 은평구 대조동 소재 나이트클럽(여인도시) 화재 현장에 도착했을 때 건물 입구에 꽃다발과 함께 놓인, 자신을 은평구 구민이라고 밝힌 한 시민의 추도시입니다.

 
8월의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달아오른 베이징발 메달 소식에 국민들 모두가 환호하고 열광하는 가운데, 지난 20일 제 사랑하는 동료 소방관 3명이 화재현장에서 진화 도중 화세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밤샘근무를 마친 다음날, 저는 조문을 하기에 앞서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동료의 목숨을 앗아간 화마의 현장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격식에 찬 조문도 의미 없어질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다 화재현장 출입구 앞에 누군가 가져다 놓은 한움큼의 꽃다발과 그 곁에 놓인 추모 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소리없는 죽음은 비록 국민을 열광케하는 올림픽 메달 소식에 묻혀 낯설고 그리고 작게 들리긴 했지만, 이 이름없는 시민의 글처럼 당신의 죽음은 숭고하기만 합니다. 인간은 위기의 순간에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본능임에도 당신은 그 무엇인가에 이끌려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말할 런지 모릅니다. 영업도 끝나고 아무도 없는 건물에 들어가 안전수칙을 지키며 화재진압을 했다면 목숨을 건졌을 게 아니냐고 말입니다. 또 혹자는 물을지 모릅니다. 자신의 안전을 지켜내지 못하는 소방대원이 어찌 국민의 안전지킴이가 되겠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군인이 적을 보지않고 총을 쏠 수 없듯 화세을 보지 않고 방수할 수 없다는 원칙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으리오. 불길 속으로 뛰어들 때마다 죽음의 위기의식을 느껴보지 않고서 어찌 절제절명 위기의 순간을 이해할 수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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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클럽 내부 붕괴 현장 화세를 견디지 못해 무너져 내린 조명시설 잔해 ⓒ 김주환

▲ 나이트 클럽 내부 붕괴 현장 화세를 견디지 못해 무너져 내린 조명시설 잔해 ⓒ 김주환

 

화세가 커지면 건물이 붕괴된다는 사실은 소방대원들에겐 고전과도 같은 진리이지만, 시민들에겐 대피명령을 내리고도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이 소방관으로서의 천추의 명령임을 저들이 어찌 아리오. 이른 아침 동이 트이면서 어렴풋이 눈이 떠질 무렵 출동 지령이 떨어지고, 나이트클럽 화재라는 다급한 목소리의 무전통신 상황이 들려올 때 공기호흡기를 장착하면서 느꼈을 사명감의 그 뜨거운 열기를 저는 먼저 간 당신과 함께 현장에서 호흡을 했기에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글자 그대로 나이트클럽이기에 내부에 혹 있을지도 모르는 인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당신의 심정이, 화재현장의 무너져 내린 저 수백겹의 조명틀만큼이나 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만 합니다. 활활 타오른 건물 내부로 진입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수백 수천번의 화재 현장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아는 당신이지만,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마치 귀신에 홀린 듯 뛰어들어가게 되더라는 무용담을 선배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당신이기에 그대들을 먼저 보낸 산자의 고통 또한 이토록 잔인한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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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동료 소방관이 무너진 잔해 더미에 깔렸을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 ⓒ 김주환

3명의 동료 소방관이 무너진 잔해 더미에 깔렸을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 ⓒ 김주환

당신의 죽음이 남은 자에게 남긴 아픔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당신의 목숨보다 사랑하고 아낀 당신의 아내와 자식, 부모 형제를 그대는 죽음의 그 순간에조차 생각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치열한 화마를 제압하기 위해서, 거친 호흡 속에 공기마스크를 파고드는 유독가스를 어쩔 수없이 들이마시는 가운데서도, 오직 고압의 관창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쳤을 당신이기에 말입니다. 9·11 테러 때 뉴욕 소방대원들이 마치 자석에 이끌리 듯 붕괴 위험의 건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오로지 인명구조에 열중했 듯 말입니다.

 

당신이 쓰러져 간 현장을 망연자실하면서 지켜보며 저는 다짐합니다. 해방 이후 300여명의 소방관들이 당신처럼 현장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갔고, 그리고 그 정신이 살아있는 한 앞으로 또 어떤 현장에서 화마와 싸우다 후배 대원들이 설사 또다른 희생의 대가를 치른다 해도 그 죽음이 왜 의로우며, 왜 숭고한지를, 그리고 당신이 왜 영웅처럼 살다 간지를 반드시 전하겠노라고. 당신이 뒤로한 당신의 부모 형제와 아내, 그리고 그 넋을 이어야 할 자식에게도 전하겠노라고.

 

당신이 가신 죽음의 현장을 가슴에 담고 저는 다시 영안실로 달려 왔습니다. 그곳 입구 방명록엔 제 가슴을 떨리게 하는 또다른 이름을 남기지 않는 시민 조문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당신의 죽음이 너무 두렵기에 저는 소방관이 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죽음은 너무나 위대합니다. 

2008.08.22 19:12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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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공무원으로 33년을 근무하고 서울소방학교 부설 소방과학연구소 소장직을 마지막으로 2014년 정년퇴직한 사람입니다. 주로 화재를 비롯한 각종 재난현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과거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방전술론' '화재예방론' '화재조사론' 등을 집필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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