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6개월만에 '빨갱이코드', 남은 임기는 뭘로?

[주장] 공안정국 2라운드, 독배 마시는 이명박 정권

등록 2008.08.30 12:14수정 2008.08.3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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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사하는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오전 경복궁에서 열린 제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경축행사에 참석, 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경축사하는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오전 경복궁에서 열린 제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경축행사에 참석, 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은 28일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이하 사노련)' 운영위원장인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와 단체 활동가 7명에 대해서 신청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영장을 기각한 주된 이유로 판사는 "사노련이 국가의 변란을 선전·선동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조성된 단체라는 점, 또는 그 활동이 국가의 존립 및 안전이나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점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었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사노련이라는 단체와 그 활동을 이유로 이 사람들을 잡아 넣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경찰은 긴급체포와 압수수색 등 요란하게 '사회주의' 조직을 체포한다고 떠들어댔지만 사실상 사노련을 구속시킬 만한 '범죄'의 증거를 제출하진 못한 것이다.

 

광우병국민대책위 사무실을 압수수색해서 '명바기의 일기공모전'을 촛불집회 '컨트롤 타워'의 증거라고 밝힌 경찰이 '레드 컴플렉스'에 기대서 다시 한 번 코미디를 한 것일까? 하지만 상황은 훨씬 심각해 보인다.

 

임기의 10분의 1이 지난 정권, 나머지 10분의 9를 위한 전략은?

 

취임 6개월. 이제 5년 임기의 10분의 1이 지났다. 이전 대통령들은 이 시기에 정권 초의 많은 지지를 바탕으로 소신 있게 굵직한 정책들을 결단해 왔다. 김영삼 정권은 군 내부의 사조직을 정리했고, 김대중 정권은 외환위기에 대처했다. 노무현 정권은 TV에서 평검사들과의 공개토론으로 대표되는 탈권위주의 정책을 집행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6개월은 달랐다. 정통적인 보수지지 세력마저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를 채울 수 있을까 걱정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벼랑 끝에 몰렸던 정권에게 두 가지 선택항이 있었다. 솔직하게 자신의 실정을 인정하고 성난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 다른 하나는 공권력이라는 칼자루를 휘두르며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 이명박 정권의 선택은 후자였다. '공안정국'이라는 달콤한 독배.

 

임기 10분의 1을 채우기도 전에 독배에 취한 정권은 그야말로 '막나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라며 전 세계가 주목했던 한국의 촛불 시민들에게 정권은 최루액과 무차별 연행으로 숨을 틀어막았다. 청와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며 그 정당성을 강변했던 물대포는 색소까지 섞어가며 도처에서 그야말로 물 쓰듯 쏘아대는 중이다. 어디 경찰뿐인가. 검찰은 보수언론을 비판하는 누리꾼들에게 출국금지부터 시키면서 협박했고, 권력감시기관인 감사원마저 정권의 방송장악에 시중을 들었다.

 

힘으로 누르는 이들에겐 상상력이 많지 않다. 결국 공안정국의 꽃이라 불리는 간첩사건, 조직사건, 국가보안법을 통한 '친북 빨갱이' 코드가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최근 지면을 채우고 있는 '여간첩 사건'과 사노련 사건은 모두 오랜 내사과정을 거쳐 왔다. 그렇기에 이 사건들을 지금 공개하고 긴급체포를 단행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촛불정국을 확실하게 끝내고 공안정국을 본격화하고자 하는 정권의 의지로 읽힐 수밖에 없다.

 

의견이 다르면 그냥 처넣으면 되는 건가?

 

사회주의노동자연합(http://swl.jinbo.net) 홈페이지 ⓒ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회주의노동자연합(http://swl.jinbo.net) 홈페이지 ⓒ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노련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의견이 다르면 그냥 처넣으면 되는건가?'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고, 와서 보니 별로 지지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단체이지만, 자신과 좀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해서 그냥 처넣는 정부는 더더욱 지지하고 싶지 않군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우리나라가 이렇게 빨리 쉽게 뒤로 갈 줄이야."

 

국가는 일정한 공간에서 합법적으로 폭력을 독점한 조직이다. 이것이 다른 조직과 국가가 가지는 결정적인 차이다. 그렇기에 경찰의 폭력은 공무집행이라 비춰지고, 긴급체포와 구속은 강금이 아닌 법집행이라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폭력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엄격한 법적 근거와 절차를 지켜야만 그 폭력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것이 없다면 국가와 깡패는 다를 바 없고, 시민들은 국가에 등을 돌리게 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잡아넣을 수는 없다. 그것이 사회주의든 공산주의든 말이다. 자신이 어떤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다른 종교를, 혹은 매우 소수여서 이단 취급을 받는 종교를 물리적으로 탄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구체적인 사회적 위해를 만들지 않는 한 양심과 사상,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며 이것은 기본권의 근간이 되는 부분이다.

 

그 기본권을 지키느라고 수많은 이들이 죽고 피 흘렸던 민주화다. 박정희 욕하면 잡아가던 막걸리 보안법 시대를 지나서, 노동조합 만들면 빨갱이 소리 들었던 시대를 지나서, 이제 비로소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신념을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잡아가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만든 지 채 6개월도 안 되는, 진보운동 내부에서도 소수 중의 소수파인 사노련은 분명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조직이 맞다. 그들은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홈페이지에 자신들의 주장을 게시하고, 공개적인 정치신문을 발행하며, 심지어 실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세철 교수는 유치장에서의 면회를 통해서 사실상 홈페이지에 모든 자료가 공개되어 있기에 인적사항을 제외하고는 경찰과 내가 더 나눌 이야기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그들이 무슨 사회적 위해를 만들었는가? 누구 말처럼 '박물관'에 보냈어야 할 법인 국가보안법 말고 합리적인 법상식에 기반을 두어서 판단해 보자.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다운 받을 수 있는 유인물을 배포했기에? 몇 명의 사회주의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담은 인쇄물을 나눠주는 것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에서 공권력을 동원해 긴급체포를 할 사안인가? 빨갱이 논리도 더는 약발이 없다. TV 토론에 열광하는 요즘 사람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과 토론하길 좋아하지 잡아넣는 것은 무식하고 비겁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당당하면 논리로 이기면 된다. 그게 자유민주주의이다.

 

왜 사노련일까? 여전히 남은 '배후'의 미련

 

사회주의를 공개적으로 표방한 조직은 상당수가 있다. 대부분이 진보운동 내부에서 소수파의 위치이지만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합법정당인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사회당 역시 당 강령에서 자본주의의 극복과 대안적인 사회를 지향함을 분명하게 내걸고 있다. 북한에 대한 입장에는 차이가 있지만 합리적인 좌파들은 대부분 현실 사회주의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북한 역시 실패한 체제라는 것에 합의를 이루고 있다.

 

국가보안법 내의 '이적', 적을 이롭게 한다는 규정에 맞으려면, 더욱 구체적으로 주적이라 지칭되는 북한 정권과의 연개를 증명하려면 사노련은 매우 적절하지 않은 조직이다. 오세철 교수를 비롯한 사노련 활동가들은 북한 역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극복해야 할 사회라고 규정한다. 더욱이 이제 막 만들어진 신생조직을 왜 공안정국을 시작하는 희생물로 삼은 것일까?

 

경찰은 여전히 배후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거 같다. 경찰은 이들이 촛불집회에 깃발을 들고 참여했으며 그곳에서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것을 하나의 이적행위로 들고 있다. 사노련은 '촛불노동자행동강령'이라는 유인물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를 선전하기도 했다. '강령', 경찰이 딱 이거다 싶어 할 표현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촛불집회에 진지하게 참가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고민했을 내용이다. 다음은 사노련이 촛불노동자행동강령에서 제시한 13대 행동강령이다.

 

- 미친 소 저지! 쇠고기 수입·유통·판매를 감독할 노동자·시민 통제위원회 구성!

- 재벌만 배 불리는 한미FTA 저지!

- 반동언론 조중동 폐간! 언론사 노동자 통제위원회 구성!

- 물가-임금 연동제 실시! 노동자·시민 물가통제위원회 구성!

-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 철폐! 노동기본권 보장!

- 주30시간 노동!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실업 해소!

- 정유사를 비롯한 대기업들의 회계장부 공개! 정유사 몰수, 국유화!

- 재벌 대기업들의 투기자금 몰수! 실업자 극빈생활자들에게 생활보조금 지급!▷ 교육 시장화 반대! 무상교육! 교육노동자, 학부모와 함께 학생 대표가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 구성!

- 의료 시장화 반대! 무상의료!

- 공기업 민영화 저지! 공기업 노동자 통제위원회 구성!

- 경제파탄 주범 이명박 정부 퇴진! 노동자·민중 정부 수립!

- 폭력경찰 해체! 노동자 시민 사수대 구성! 노동자·시민 평의회 구성!

 

학계와 노동운동에서 오랜 활동의 경험이 있는 '사회주의자'인지라 비판을 넘어서 '수립', '구성'과 같은 구체적인 표현들로 서술했지만 이것으로 국가 전복을 꾀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비약이 심하다. 더 나아가 이들이 유인물에다 '국가전복 합시다!'라고 주장했다고 해서 그게 정말 국가 전복의 시도일까? 문제는 실체적 행위인데 경찰이 오히려 '사회변혁을 위해 폭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를 활동가들에게 심문하고 있다.

 

없는 배후를 만든다고 만들어지겠냐만은 사회주의로 촛불집회를 붉게 칠하고자 했던 정권의 판단은 이번에도 안쓰럽게 보인다. 이미 법원에서 기각당한 것도 당한 것이지만 그 누구도 소수의 학자와 활동가 중심의 신생 조직이 수십만 명의 촛불집회를 조정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적행위를 통한 조직사건 구성 역시 북한에 대해서 비판적이며, 아직 특별한 활동조차 시작하지 못한 신생단체이기에 어려워 보인다. 그야말로 공안정국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억지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공포정치는 결국 자기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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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저녁 서울 한국은행앞에서 제100차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경찰이 강제해산시키는 가운데, 파란 색소를 섞은 물대포를 뒤집어 쓴 '815평화행동단' 회원들이 연좌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15일 저녁 서울 한국은행앞에서 제100차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경찰이 강제해산시키는 가운데, 파란 색소를 섞은 물대포를 뒤집어 쓴 '815평화행동단' 회원들이 연좌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공포정치는 악순환이다. 사람들은 공포에 무감각해지기에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잔인하고 강력한 것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결국 선을 넘게 되고 독재자로 전락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예언이 아니라 역사가 말해주는 것이다.

 

공포정치가 진행되면서 그 아래의 시민들 역시 공멸해 간다. 5월 31일 물대포 앞에서 그렇게 놀라고 분노했던 시민들은 이제 쏘려면 빨리 쏘라고 외친다. 분노를 넘어선 절망과 체념이다. 공무원인 경찰이 조롱하듯 총모양의 기구에서 색소를 시민들의 얼굴에 뿜어내는 순간, 사람들은 국가를 무엇이라 느낄까?

 

국가의 폭력은 그것이 정당한 절차와 법적 근거,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집행될 때에 한해서만 공권력으로 인정될 수 있다. 자본주의하에서 국가라는 것이 기득권을 대변하기에 그 폭력의 정당성 역시 논쟁의 대상이지만 어쨌든 지금의 상황은 그런 최소한의 정당성도 부재한 상황이다.

 

이명박 정권은 공포를 택했다. 잡아들이고, 통제하고, 모든 것을 힘과 폭력으로 끼워 맞추려고 한다. 이제 6개월 지난 정권의 선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참하다. 그리고 6개월만에 이제 '빨갱이 코드'까지 등장시켜 본격적인 공안정국을 시작해 보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4년 6개월 동안 과연 그런 공포가 유지될 수 있을까. 독배의 달콤함이 독이라는 것을 조금만 똑똑하다면 알 수 있을 텐데.

2008.08.30 12:14 ⓒ 2008 OhmyNews
#오세철 #사노련 #공안정국 #공포정치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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