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인간] 양세봉을 찾아간 소년 김일성

김갑수 식민지 역사팩션(112회) 제2부 '중경에서 온 편지'

등록 2008.09.07 10:34수정 2008.09.0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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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에 간 김영세와 정화

경기도 영릉은 단풍으로 붉었다. 미풍이 정화와 김영세의 얼굴을 스치고 있었다. 하늘 높이 곧게 치솟은 소나무가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을 햇볕은 의외로 다사로웠다. 며칠간 온도가 떨어져 바로 겨울로 갈 줄 알았는데, 날씨는 두 사람을 위해 가을을 떠나보내지 않은 듯했다.

영릉은 세종 임금과 소헌왕후의 합장릉, 김영세는 내일이면 떠나게 될 정화에게 아름다운 조선의 능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간소한 도시락까지 싸들고 교외로 나선 것이었다. 김영세는 먼저 산세를 둘러보았다. 지세가 정연하기 이를 데 없는 명당이었다. 풍수쟁이들이 조금 과장해서 말할 때, '층층이 해와 달의 모습을 띠면서 봉황이 나래를 펴고 내려오는 형국'이라고 할 만했다.

영릉은 풍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언젠가 지관은 이 명당의 기운으로 조선의 국운이 100년은 연장되었다고 너스레를 떤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자리에서 김영세는 지관이 제자들에게 하는 말을 엿들은 적이 있었다. 지관에 의하면, ‘가히 만세에 이어갈 만한 기가 탄생할 자리’였고 이런 형세를 ‘모란반개형(주산을 감싼 주변 산세가 꽃봉오리 같은 형)’이라 한다고 했다. 아무튼 나무랄 데 없는 자리이고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원래 이곳에는 백성의 묘가 있었답니다. 왕에게 자리를 양보했지요."

정화는 빨간 단풍을 배경으로 서 있는 김영세의 모습이 곱고 늠름하다고 생각했다.

"이장을 하려고 묘를 파니, '이 묘를 파내면 이 자리에서 연을 띄워 떨어지는 곳으로 옮기라'고 써진 글이 나왔답니다."


김영세는 아까운 곳에 연하리(鳶下里)라는 이름의 마을이 정말 있다고 했다.

그들은 꾸밈없고 수수한 어느 건물 앞에서 발을 멈췄다. 재실이었다.

"재실은 소탈한 것을 최고로 칩니다."

두 사람은 능역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훈민문을 지나자 좌측에 묘내수가 흘러드는 연못이 있었다. 그들은 조금 더 걸어 홍살문을 지나갔다. 홍살문에는 화살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표시였다.

멀리 또 다른 능이 보였다.

"효종의 능입니다."

정화는 치마를 여미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넓은 방석 모양으로 된 검은 돌 자리에 올라섰다.

"그곳은 '배위'입니다. 능을 향해 왕이나 제관이 절을 하는 지점이지요."

정화는 얼른 내려섰다. 그녀는 귀 밑이 붉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디디고 서면 안 되는 곳에 무람이 올라선 것 같아서였다. 능의 주위에는 작고 아름다운 건물이 세 채 있었다. 정자각과 수라간과 수복간이었다. 건물마다 수수한 기와지붕이 소나무와 격조 있는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능 위에 오르니 문인석과 무인석이 마석을 인솔하는 형상으로 서 있었다. 그들은 수라간 쪽으로 내려왔다. 정방형 석함이 눈에 들어왔다.

"축문을 태워 묻는 곳입니다."

두 사람은 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고운 단풍이 불을 놓은 듯이 퍼져 있었다. 단풍은 붉은 것보다 노란 것이 더 강렬했다. 은행나무와 단풍나무에 싸인 소나무들에까지도 단풍물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정화는 이마에 손을 얹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예로부터 이마에 손을 얹는 것을 가액(加額)이라고 했다. 그리고 가액은 그리움을 지닌 사람만이 만들어 짓는 동작이기도 했다.

"선생님, 뭐라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김영세는 엄하게 말했다.
"그런 말씀 하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계속 편지는 드려도 되는지요?"
"임정 소식을 알려 주시고 부인의 글씨를 보게 해 주십시오."

하늘에서 거인의 얼굴 형상을 한 뭉게구름 하나가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양세봉의 의형제 김형직

만주국이 세워지고 관동군이 물밀 듯이 밀어닥쳤다. 조선독립군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독립군 세력은 만주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민족진영 독립군들은 상해등의 중국 관내로 들어갔고 사회주의 계열의 단체들은 중국 공산당에 합류했다.

이런 가운데 남만주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독립군이 조선혁명군이었고 그 지도자는 양세봉이었다. 그는 주로 봉천성과 홍경현 일대에서 활동했다. 그는 1929부터 1934에 이르는 5년 동안 일본군 및 만주국 군경과 벌인 전투가 80여 회에 달했고 사살한 일본군만 1,000명에 이르렀다. 그는 타고난 전략가이기도 했다. 그의 순발력과 결단성은 전투가 벌어지면 더욱 광채를 띠었다. 이미 그 일대의 주민들은 양세봉에게 군신(軍神)이라는 칭호를 기꺼이 붙이고 있었다.

그의 성공 비결은 스스로 몸을 낮추고 부하들에게 봉사하는 자세를 취했던 데에 있었다. 그러기에 수십만의 관동군이 지배하는 산협에서 500명의 군사가 이탈 없이 그를 따랐던 것이었다. 그는 부하에게 성을 내는 법이 없었고 부하들에게는 권련을 사 주면서도 자신은 엽초를 말아 피웠다. 양세봉만큼 한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장기간 투쟁한 독립군 장군은 없었다.

김문수는 다른 간부들과 움막으로 된 독립군 본부에 앉아 있었다. 양세봉이 김문수에게 말을 붙였다.

"김 동지는 가족이 있소?"
"네. 아버지가 만주 어딘가에 계시고 삼촌이 서울에 있습니다."
"부친 함자가?"
"영 자, 호 자입니다."

양세봉은 조금 놀라는 것 같았다.

"압니다. 몇 번 뵌 적이 있어요. 사실은 상해에서 온 연락병이 김영호의 소재지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본명을 안 쓰시고 있으니 알아내기가 어려웠겠지요. 그러나 소재지를 알려 주는 것은 금기 사항입니다. 그래서 모른다고 했지요. 또 실제로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지금은 어디에 계십니까?"
"중국 공산군에 들어가 있습니다. 주로 길림성 부근에서 활동하셨었는데."

김문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자 양세봉이 자기 가족 애기를 꺼냈다.

"나는 처는 하나 자식도 하나, 동생도 하나, 그리고 죽은 의형이 하나 있소."
"의형도 독립 운동을 하셨습니까?"
"사실은 내가 김 동지를 보면 죽은 의형이 으레 떠올라서 물은 것이오. 김 동지처럼 그도 학구파였소 외모도 비슷하고요."

양세봉은 죽은 의형의 이름이 김형직이라고 밝혔다.

며칠 후 막 김문수는 양세봉과 식사를 하려고 나가는데 병사 하나가 와서 양 장군을 찾았다.

"장군님, 웬 소년들이 찾아와 장군을 뵙겠답니다."
양세봉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들여보내시오."
김문수는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김 동지도 함께 있다가 같이 식사합시다."
김문수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10대 중반의 소년 5,6명이 들어왔다. 그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 김문수를 힐끗 보더니 양세봉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희들은 소년의용대입니다. 적과 싸우고 싶습니다. 저희에게 무기를 주실 수 있는지요?"
소년치고는 조금 괄괄한 목소리였다.
양세봉은 웃으며 말했다.
"훌륭한 소년들을 만나 기쁩니다. 하지만 아직 무기는 드릴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조금 더 성장하셔야 합니다."

소년은 자기 이름을 김성주라고 밝혔다.
"저희들이 미덥지 않아 그러시는지 잘 압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아버님은 김형직 어른입니다."
"아니 뭐라고? 네가 형직의 아들이라고?"
양세봉은 김문수에게 김성주를 소개했다.
"지난 번 말한 내 의형의 아들이오."

양세봉은 소년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성주야, 너도 이런 선배처럼 되어야 한다."
김문수는 김성주와 악수를 나눴다.
소년은 훗날 소련 혁명군에 들어가 유격대의 대장이 된다. 그리고 그는 이름을 김일성으로 바꾼다.

덧붙이는 글 | 이 소설은 연말까지 약 200회 분량으로 연재됩니다. 작자 김갑수는 최근 조선 성종 때 중국에 표류해 간 유학자 최부의 <표해록>을 바탕으로 한 장편소설 <오백 년 동안의 표류>를 출간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소설은 연말까지 약 200회 분량으로 연재됩니다. 작자 김갑수는 최근 조선 성종 때 중국에 표류해 간 유학자 최부의 <표해록>을 바탕으로 한 장편소설 <오백 년 동안의 표류>를 출간했습니다.
#영릉 #양세봉 #김형직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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