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를 심문할 수 없소

[역사소설 소현세자 98] 뿔난 임금님, 분노가 폭발하다

등록 2008.09.12 17:47수정 2008.09.1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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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 심양과 의주 사이에 있다. ⓒ 이정근


소현세자가 있는 곳으로 향하던 용골대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다. 한족들이 즐겨 이용한다는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는 말이다.

"투항한 적장도 이 말을 썼고 바람 앞에 등불처럼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명나라를 바라보면서 만리장성을 넘지 않은 도르곤의 전략도 결국 이이제이가 아닌가?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세자를 데리고 봉황성에 나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는데. 머리가 나쁘면 두뇌라도 좋아야 할 텐데 난 바보인가 봐."


용골대가 배시시 웃었다. 세자를 앞세워 심문했으면 체면도 구겨지지 않았을 텐데 후회스러웠다.

"우리가 심양을 떠나올 때 황제께서 하교사시기를 '금번 조사를 행함에 있어 죄가 무거운 자는 압송해오고 죄가 가벼운 자는 조선 국왕이 경중에 따라 처리하게 하라' 하시었소. 최상의 공술을 들어보니 죄가 무거운지 가벼운지 모르겠소. 세자가 직접 심문하시오."

자신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소현을 앞세우겠다는 계략이다.

어찌 인간으로서 사부를 심문할 수 있겠소?

"이것이 무슨 말이오? 영의정은 일인지하만인지상이요. 또한 사부(師傅)의 높으심을 겸하였기에 내가 배움을 받은 분이오. 어찌 인간으로서 사부를 심문할 수 있겠소? 세자의 직분은 학문을 연마하는 것이지 국법에 간여하여 죄인을 다스리지 않소. 영상이 비록 잡혀왔으나 부왕의 신하를 자식이 심문한다는 것은 임금을 능멸하는 것이라 나는 이에 참여할 수 없소. 무릇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렸으니 이것이 황제의 명이라 할지라도 어찌 죽고 사는 것을 근심하겠소. 단연코 심문할 수 없소."


소현세자가 단호하게 거부했다. 목숨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구원을 요청했던 용골대가 난관에 봉착했다. 최명길을 상대하자니 오히려 설득당하는 입장이다. 세자는 배수의 진을 쳤다. 용골대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때였다. 임경업을 호송하기 위하여 의주에 나가있던 금군 오효남이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저하! 임경업이 도망했다 하옵니다."
"뭣이라고?"

소현과 용골대의 입에서 동시에 튀어나왔다. 그러나 음색은 달랐다. 소현은 괴로운 신음에 가까웠고 용골대는 쾌했다. 역전의 빌미를 잡았으니 기세가 올랐다.

"임경업이 달아났다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여기서는 그 까닭을 모르겠소."

"죄인을 잡아 보낼 때 어떻게 장계를 하고 어떻게 잡아 보냈기에 도망가는 지경에 이르렀소?"
"다른 대신들은 아무 문제없이 들어오고 장사치들도 도망한 자가 없는데 종 2품 신하를 어찌 의심하여 별다른 모양으로 압송하겠소. 이자가 나라를 저버릴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소? 조정에서 이런 사람을 발탁하여 병사로 썼으니 할 말이 없소."

"이는 조선이 빼돌린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소."

자리를 박차고 나간 용골대가 가린, 박시와 구수회의를 가졌다. 돌발 상황이 벌어졌으니 그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튿날 용골대가 세자를 다시 찾아 왔다.

조선에 나가 국왕을 추문할 것이오

"임경업을 빼돌린 것에 대하여 가린과 박시가 한성에 나가 황제를 대신하여 국왕을 추문할 것이오. 세자와 나는 최명길, 민성휘, 이지룡, 심천민과 함께 심양으로 돌아가야 하오. 이현영, 이경희, 이식, 서경우, 이후원은 의주 옥에 가두었다가 다음 명을 기다리고 이계, 민응건, 김려기, 심연, 김응해는 의주에 머물게 하고, 이경석, 정치화는 별도로 감금하시오."

봉황성에 머물며 조선 관료들을 떨게 했던 용골대는 소현과 함께 심양으로 떠나고 가린과 박시는 한성으로 출발했다. 청나라 칙사가 온다는 소식보다 먼저 평안감사 구봉서가 보낸 비밀장계가 조정에 도착했다.

"만고의 역적 이계가 돌아오니 그를 처단하게 하소서."

밀계를 접수한 인조가 비국당상회의를 소집했다.

"이계는 청현직을 역임한 자인데 어찌 이렇게까지 나라를 저버린단 말인가?"

"이계가 압록강을 건널 때 이미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뜻이 있다고 누가 말하였으나 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참으로 불측한 사람입니다."
좌의정 신경진이 머리를 조아렸다.

"청인이 묻지 않는데도 스스로 나라의 사정을 남김없이 고해 바쳤으니 어찌 매우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나라를 저버린 자가 조정의 사대부 사이에서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우의정 심기원이 맞장구를 쳤다.

"당초에 그 사람이 이러한 줄을 모르고 청반(淸班)에다 두었으니 후회스럽기 짝이 없다."
"이계는 그 목숨을 용서받을 수 없고 그 자손을 연좌시켜 후세의 경계로 삼아야겠습니다."
신경진이 강력 처벌을 주장했다.

뿔난 임금님, 분노가 폭발하다

"과거 이괄의 난 때 이계의 할아비·아들·손자 중에 한 사람도 나를 호종한 자가 없었다. 그 당시에 나라를 배반하였다고 탄핵한 자가 있었으나 나는 형세가 어쩔 수 없어 그런 것으로 여겼는데 오늘에 와서 보니 과연 그 말이 맞다. 그 자를 일반적인 법에 구애받지 말고 삼족을 멸하여 창생의 분노를 풀어주도록 하라."

청나라에 당한 울분이 이계에게 폭발했다. 인조는 형 집행을 위하여 의주로 떠나는 선전관 박지용과 금부도사 정석문에게 '저쪽에서 혹시 다른 말이 나올지 모르니 계품하지 말고 도착 즉시 처단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집행관들이 의주로 향하는 동안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이계는 특별히 보호하라'는 황명이 하달되었다. 하지만 인조는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참수에 처해진 이계는 길거리에 효시되었고 그의 아들 이국균은 교살되었으며 그의 아버지 이진영은 곤장 백대를 맞고 제주에 유배되어 교살되었다. 또한 그의 숙부 이진익· 이진현과 사촌 이환은 하옥되었고 선천부사로 있던 그의 장인은 파직되었다. 싹쓸이다. 의금부에서 상소가 올라왔다.

"이계의 3촌과 4촌을 연좌시키는 것은 율문 밖의 일이니 대신에게 의논하소서."

"이계는 이미 대역으로 논단하여 팔방에 시신을 조리돌렸으니 그 부자가 연좌되는 것은 본디 정해진 율이지만 형벌이 3촌에까지 미치는 것은 율문 밖에 일로서 그 4촌은 더욱 거론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승평부원군 김류 , 좌의정 신경진 , 판부사 심열 , 우의정 심기원이 헌의했다.

"이계가 문서를 바쳤으니 그 죄는 만 번 죽어도 애석할 것이 없습니다만 국사를 가지고 밀고하였다는 설에 있어서는 물증은 없고 구봉서가 들었다는 말밖에 없습니다. 역모에 관계되어 친족을 주살하는 옥사를 어찌 한 사람이 전해들은 말로서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성구가 신중하게 처결하자고 주청했다. 허지만 인조는 신하들의 청을 물리쳤다. 오히려 신중론을 편 영부사 이성구는 역풍을 맞고 삭탈관직 되었다.
#소현세자 #용골대 #봉황성 #이계 #임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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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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