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앞에만 서면 쫀쫀해지는 남자

'까짓 거 100원짜리 동전 하난데?'

등록 2008.09.22 09:39수정 2008.09.2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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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가(김수희의 '애모' 일부)


정말 그렇다. 난 '그놈' 앞에만 서면 내가 자꾸 작아지는 걸 느낀다. '까짓거' 하면서도 그게 실제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까짓 거 100원짜리 동전 하난데…' 속으론 그리 생각한다. 근데 꼭 달려가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가지고 와야 후련하다.

내 아내는 한 술 더 뜬다. 남이 버린 것까지 끌고 가 동전을 꺼내오고야 만다. 무슨 얘긴지 궁금하지 않는가. 쇼핑카트 얘기다. 마트의 입구에 떡 버티고 서있는 카트 말이다. 요즘은 재래시장도 마트를 따라하는 곳이 많다. 카트 앞에서 쪼그라드는 걸 느끼는 남자는 나밖에 없을까.

100원이 내 쫀쫀함에 불을 댕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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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쇼핑카트 보관장소에는 "사용하신 쇼핑카트는 이곳에 놓아 주세요"라고 쓰여 있다. ⓒ 김학현

카트를 끌고 장을 볼 때마다 카트가 내게 말을 건다. '오늘도 역시 네 쫀쫀함에 불을 댕기고 말거야!' 항상 '오늘은 한번 쫀쫀함을 벗어보리라'하고 마음먹어도 쉽지 않다.

장 본 물건을 운반하여 차 트렁크에 싣고서 잠시 담대함으로, '그냥 카트를 아무데나 버리고 갈까' 하다가도 다시 집어 들고 카트 보관 장소로 가 100원짜리 동전을 기어코 빼가지고 온다.


이런 쫀쫀함이 지배하는 한 카트는 한 곳에 모아져, 마트 관계자들이 마음먹은 대로 그들을 편안함으로 인도할 것이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어야 빠지는 카트, 카트를 제자리로 몰고 가 서있는 놈과 연결해야 빠지는 100원짜리 동전, 그러면서 형성되는 질서의 사회학은 무엇일까.

'100원의 위대한 능력' 때문일까. 때로는 이 '100원의 위대한 능력'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한다. '100원의 힘이 이리 강해도 되는가. 100원의 흡인력이 이리 힘세도 되는가. 100원으로 무얼 할 수 있는데?' 그런데 100원은 마트에서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이것은 나만의 경험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겪는 경험이리라. '정말, 100원이 아까워서 카트를 제자리에 갖다 놓는가?' 이 물음에 대해 대답하라면, 당연히 '아니다'이다. 근데 왜 우리는 카트를 지정한 장소에 갖다 놓을까.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100원이 건 마술에 걸린 게 아닐까.

난 그것을 내 속에 똬리를 튼 '쫀쫀함의 능력'이라 부르고 싶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그렇다. 분명히 100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근데도 나도 모르게 카트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100원짜리 동전을 가져오게 만든다. 100원짜리에 걸린 쫀쫀함이든, 마술이든 어쨌든 결과는 그렇다.

100원짜리 동전 한 닢의 힘,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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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짜리 동전을 넣어야 빠지는 카트, 카트를 제자리로 몰고 가 서있는 놈과 연결해야 빠지는 100원짜리 동전, 그러면서 형성되는 질서의 사회학은 무엇일까. ⓒ 김학현


이 쫀쫀함은 바로 질서에 순응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그런 본능은 나 말고도 다른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있다는 것을, 카트를 제자리에 갖다 놓는 이가 대다수란 걸 통해서 알 수 있다. 다만 100원짜리 동전은 그 질서본능을 일깨우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나서 뭐 달라진 게 있습니까?"
"그럼요. 보세요. 주차장에 어지럽게 나뒹굴던 카트가 이젠 거의 없잖아요."

3년 전 서울의 한 마트에서 막 달라진 카트제도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 내가 물었더니, 점원이 자신 있게 대답한 내용이다. 그렇다. 그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주차장에 나뒹구는 카트는 만나려고 애써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100원짜리 동전 한 닢의 힘, 대단하다.

20여 년 전 '사랑의 마을'을 시작할 때 모금을 하며 내세운 구호가 있다. 그 중 하나가 '1000원에 담긴 사랑을 믿자'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1000원이면 그래도 할 만한 게 있었다. 커피 한 잔, 담배 한 갑, 웬만한 거리의 버스비 정도는 넉넉히 되었다.

순전히 모금으로만 노인시설을 운영해야 했으니 고초가 얼마나 컸을까. 지나 와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모한 짓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그렇게 부족함 없이 무의탁 어르신들을 돌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은혜다.

한 구좌에 1000원, 더도 덜도 아닌 1000원. 취지를 이해한 성도들을 중심으로 일반인들까지 십시일반 계좌에 돈을 넣어주었고, 그 1000원짜리들이 모여 어르신들에게 편한 잠자리와 먹성들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숙소도 두 채나 지었고 땅도 확충하였다.

1000원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그때 실감했다. 근데 요새는 100원의 힘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있다. 시대가 많이 흘렀고, 돈 가치는 더 떨어졌는데도 이 100원의 힘이 얼마나 센가 모른다. 마트의 카트계를 질서로 평정한 100원의 힘, 대단하다.

쫀쫀하면 어떠랴, 100원의 힘 죽 밀고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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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꼭 그 100원을 다시 챙기기 위해 카트 보관소까지 돌아가서 카트를 밀어 넣고 온다. 혹 버려진 카트를 발견했을 때는 얼른 끌고 가 그 카트에 들었던 100원을 챙겨가지고 온다. ⓒ 김학현

언젠가 그 놈의 100원 때문에 혼이 난 적도 있다. 장을 보러 마트에 갔는데 지폐는 있는데 동전이 없다. 그것도 100원짜리 동전이.

이런 때 '대략난감'이다. 밖에 있는 내게 아내가 전화를 해 시장을 봐 오라고 했다. 다른 때야 아내가 동전을 챙기지만 이 날은 아무런 생각 없이 마트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출입구에서부터 동전 100원짜리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서성이는 날 보고 눈치를 챈 점원이 100원짜리 한 개를 빌려 줘 가까스로 장을 보고 온 적이 있다. 100원의 힘! 난 그때 100원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톡톡히 깨달았다.

5~6년 전만 해도 동전을 안 넣어도 그냥 카트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샌 아니다. 대부분 마트가 카트에 동전투입구를 달아놓았다. 카트를 아무 곳에나 팽개치고 가는 손님들 때문에 이런 제도가 생긴 것이다. 근데 그들의 생각은 적중했다.

아내는 꼭 그 100원을 다시 챙기기 위해 카트 보관소까지 돌아가서 카트를 밀어 넣고 온다. 혹 버려진 카트를 발견했을 때는 얼른 끌고 가 그 카트에 들었던 100원을 챙겨가지고 오며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100원 벌었네"라고 한다. 이럴 때는 참 우습기도 하다.

그러나 이 100원짜리 동전 하나가 얼마나 그릇된 생각과 습관을 바꿨는가 하는 것은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작은 것이라고 무시할 수 없다. 작은 100원의 마력으로 이뤄진 질서가 이 정도라면, 조금 더 큰 것으로는 얼마나 더 잘 할 수 있으랴.

경제가 수렁으로 끝모르게 추락하는 요즘, 작은 것의 힘을 믿고 나아가면 어떨까. 너무 먼 곳에 있는 큰 것 말고 가까이 있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100원짜리가 카트계의 질서를 평정(?)했다면, 우리가 가진 더 많은 것들이 더 크고 아름다운 질서를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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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소에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쇼핑카트 ⓒ 김학현

덧붙이는 글 | 1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서부터 마트의 쇼핑카트가 보관소에 잘 정렬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녕 100원의 가치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좋은 의견 있으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1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서부터 마트의 쇼핑카트가 보관소에 잘 정렬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녕 100원의 가치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좋은 의견 있으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쇼핑카트 #할인마트 #100원 #동전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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