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고 우주로 간 유럽... 한국은 언제 가지?

[유럽 현장리포트①] '조선강국' 코리아, 유럽에 길을 묻다

등록 2008.09.24 08:56수정 2008.09.2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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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재단과 KAIST는 언론인을 대상으로 과학디플로마-항공우주분야 연수를 5개월 동안 진행했습니다. 그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연수단 10명은 지난 8월 21일부터 열흘간 유럽을 돌며 ESA(유럽우주국) 최대조직인 ESTEC, 유럽 최대 항공우주기업 EADS 핵심 자회사인 아스트리움과 에어버스 등을 방문했습니다. 유럽 항공우주기술의 현주소를 담은 현장 리포트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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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우주정거장(ISS)에 장착된 ESA 우주실험실 '콜롬부스' 실제크기 모형. ⓒ 김시연


지난달 폐막한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집계에서 개최국 중국(51개)이 미국(36개)을 누르고 사상 처음 1위에 올랐다. 그런데 당시 유럽 언론에선 유럽연합(EU) 27개국이 딴 금메달이 모두 87개로, 종합 1위라는 보도가 나와 화제가 됐다. 아직은 유럽 안에서조차 가십거리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지만 실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유럽연합 단일팀'이 구성된다면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비록 리스본 조약 부결로 경제통합을 넘어 정치통합으로 가려던 행보는 멈칫했지만 유럽연합의 시너지는 곳곳에서 이미 발휘되고 있다. 그 어떤 산업보다 막대한 자본과 인력, 시장을 필요로 하는 항공우주분야가 대표적이다.

최준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성시험실장은 "지난 시절 우주가 미소 냉전구도 속에 군사와 과학 경쟁의 무대였다면 현재의 우주는 통신 방송과 기상관측, GPS 등 차세대 서비스산업의 경쟁시장"이라고 말한다.

태생적으로 방위산업과 밀접한 항공우주산업의 특성상 여전히 군수용이 절대적이지만 최근 민수용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의 중심에 바로 유럽연합이 있다.

베이징올림픽 종합우승은 유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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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상반기 발사 예정인 구경 3.5m짜리 허셜 우주망원경의 위용.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에 있는 ESTEC에서 시험중이다. ⓒ 김시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인공위성의 위치측정기술에 바탕을 둔 내비게이션이다. 현재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 나라가 미국이 군사용으로 개발한 GPS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GPS 기술 대미 종속에서 탈피하기 위해 러시아·유럽·중국·일본 등은 오래전부터 독자적인 위성항법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상용화 목표인 유럽연합의 민간GPS 갈릴레오다.

모두 30개의 위성을 쏘아 올리게 될 '갈릴레오'처럼, 개별국가로선 엄두도 내기 힘든 거대한 프로젝트 뒤에는 EU와 함께 ESA(유럽우주기구)가 있다. 유럽의 NASA라 할 수 있는 ESA는 유럽연합(EU)과 별개로 17개국이 모인 다국적 조직이며 각국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항공우주기술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유로컨설트에서 조사한 2006년 '민수용 우주개발사업 국가별 투자규모'에 따르면,  미국이 173억 달러(NASA 157억달러)로 압도적인 1위고 그 뒤를 일본(22억 달러)-프랑스(16억 달러)-러시아-중국 등이 잇고 있다.

그런데 ESA에 투자한 유럽 회원국들의 투자 규모는 34억 달러로 일본을 누르고 세계 2위다. 유럽연합이 ESA를 통해 투자 규모를 얼마나 키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통계인 셈. 국가별 투자 규모가 한국(2억 달러)과 비슷한 스페인·벨기에나 절반 수준에 불과한 네덜란드가 이 분야에서 웬만한 강대국 못지않은 기술력을 축적한 배경에도 바로 ESA가 있다.

ESA가 유럽 각국이 수행하던 우주개발계획을 통합해 유럽 기술 개발 중심 역할을 한다면 산업적 측면에서 이를 뒷받침해 주는 곳이 바로 EADS(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다.

우주개발업체인 아스트리움과 세계적 여객기 제작업체 에어버스(Airbus) 등을 자회사로 거느린 유럽 최대 항공우주기업 EADS는 자회사인 아스트리움 등을 통해 ESA 등의 수주를 받아 인공위성 제작 및 발사, 관리 등 산업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 유럽 회사들은 아리랑2호(KOMPSAT-2) 등 한국의 인공위성 개발을 뒷받침해준 훌륭한 협력자이자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유럽식 우주협력모델이 아시아에서도 통할까

이번 유럽연수 기간 내내 머리를 맴돌았던 것은, 과연 아시아에서도 유럽식 협력 모델이 가능하겠냐는 것이었다. ESA나 EADS 사례처럼 항공우주기술과 같이 민감한 분야에 공동투자나 사업이 이뤄지려면 참가국 간의 이해관계와 더불어 상호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 특히 한국을 위시한 동북아에서 이와 같은 협력모델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러시아·중국·일본·미국 등 우리 주변 국가들은 이미 독자적으로 우주 열강 대열에 들어섰기 때문에 한국과 대등한 협력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였다. 

하지만 ESA처럼 군사적 목적을 완전 배제하고 평화적 목적만 추구한다면 순수한 민간 차원의 협력 조직 탄생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실제 민간분야에서 아시아 국가들 간에 활발한 협력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주도한 Sentinel ASIA(우주기술을 활용한 재난관리시스템)가 대표적이다. 2005년 12월 일본 제안으로 시작한 조인트 프로젝트로,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발생하는 산불·홍수·태풍 등 각종 재해를 지구관측위성을 통해 감시하고 각국에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에는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 호주·중국·인도 및 아세안 국가 등 19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기존 ASEAN+3국(한중일) 정상회담이나 APEC 체제를 항공우주분야에 적용하는 방안도 모색해 볼 수 있다. 역시 위성보유국가인 한중일과 미보유국가가 대부분인 여타 아세안 국가 간 불균형이 문제지만, 오히려 중간자적 입장인 한국이 그 균형추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조선강국' 코리아가 '항공우주강국'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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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수주량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한국 조선업를 상징하는 조선소(위)와 유럽 민간항공기업체인 에어버스 A380 제작 라인. ⓒ 현대중공업·김시연


9월 9일은 올해로 5회째 맞는 '조선의 날'이었다. 때맞춰 선박수주량 세계 1위인 한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올 상반기 처음 50%를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또 우리 STX조선이 유람선 분야 프랑스 1위 업체인 아틀란틱 조선소를 인수하면서 현지 언론이 크루즈선 시장까지 한국에 빼앗기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는 소식도 뒤따랐다.

이렇듯 전통적 조선강국인 유럽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한국이지만 정작 미래기술의 각축장인 항공우주분야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아직 미미하다. 올해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를 배출했고 곧 우리 손으로 인공위성까지 쏘아올릴 예정이지만 기술력이나 투자 규모 면에서 미국·일본·유럽은 물론 중국이나 인도에도 많이 뒤진 상황이다. 과연 한국이 만든 수많은 배(船)들이 바다뿐 아니라 하늘과 우주를 누비게 될 날은 언제쯤일까?

이런 한국에 유럽식 협력 모델이 주는 시사점은 크다. 1960년대 초 유럽 6개국이 주축이 된 유로파 우주 로켓 개발이 1975년 ESA 출범의 계기가 됐듯 지금부터라도 민간분야에서 협력으로 신뢰를 다진다면 10여년 뒤 아시아에서도 ESA와 같은 조직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NASA가 이미 50년 전 달에 우주인을 보낸 것에 비하면 고작 10년 전 행성 탐사에 나선 유럽은 한창 뒤처져 보였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주춤한 사이 유럽은 달 탐사 위성을 시작으로 화성·수성 탐사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인도 달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ESTEC 코즈니 박사가 남긴 한 마디가 인상적이었다.

"유럽도 10년 전 지나가는 혜성을 3시간 관측한 것으로 행성탐사를 시작했다. 지금 성공적인 결실을 거뒀지만 그 이전엔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한국과 같은 우주개발 후발국엔 희망적인 조언이다. 여기에 빠진 한 가지가 ESA와 같은 지역 간 협력모델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항공우주 #유럽연합 #ESA #갈릴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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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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