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금했는데 전화 불통...속 타는 추석을 보내다

[산채원 촌장 일기 15] 곰취나물 보식을 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등록 2008.09.23 11:45수정 2008.09.23 11:4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곰취 모종 물을 흠뻑 주고 임시로 심어놓은 곰취가 며칠을 잘 버텼다. 옮기려고 뽑고 있다. ⓒ 산채원촌장


내 스스로 보강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


산나물의 제왕 곰취. 향이 진하고 모양도 보기가 좋다. 곰이 첫눈이 녹자마자 겨울잠에서 깨어나 제일 먼저 맛보는 풀이라 곰취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곰이 눈밭에 콕 찍은 발바닥 모양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얼마 전 올해 심어진 산나물 준공 검사를 하였다. 24ha이니 7만평이 조금 넘는다. 종일 산을 탔다. 이른 봄부터 심어놓고 잡초를 제거하였기에 벌써 제자리를 잡은 것도 있지만 더러는 작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게 있다.

대표적인 게 곰취다. 정성을 들였건만 곰취 밭에서는 준공 검사자인 면사무소 산업계장과 몇 차례나 기 싸움을 하였다. 어린 모종을 찾느라 눈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늘이 많아서 녹고 가물어서 사라진 나물이 태반이다.

하지만 어쩔 건가. 결국 보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보식(補植) 명령은 체력이 고갈된 상태의 선수에게 느닷없는 연장전을 치르라는 것과 같다. 추석 전 어떻게든 상반기 사업을 마무리하고 잡풀과 칡넝쿨 제거를 서둘러야 할 상황에서 이런 조치는 지친 내게 청천벽력과 같았지만 이 또한 내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

산나물로 성공하기 위해 사는 삶, 대표작물이 이러하니 보강하여 더 심어야만 내년에 수확할 게 있다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보조금 타먹기 위한 농사가 아니라 한 뿌리라도 더 심어 당장 소득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애초 목표량보다 훨씬 많이 심어야 함은 자명하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깨어나기를 누차 살펴보았지만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손실분을 만회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추석 무렵 벌어진 모종확보 전쟁

어린 곰취 오늘 현재도 곰취 크기가 이 모양이다. 옆 피나물에 치일 정도다. 큰 비가 쏟아지면 맥없이 쓰러질 정도이며 해가 많아도 걱정, 그늘이 많아도 걱정이니 이를 어쩔 거나. 내년 봄에나 구실을 할 수 있을까 몰라. ⓒ 산채원촌장


암담했다. 당장 모종확보가 문제다. 산채원이 종자를 받을 목적으로 따로 심어둔 것은 기껏 5천주에 지나지 않는다. 제철인 오뉴월 봄이라면 돈만 주면 쉽게 구할 수도 있지만 추석 무렵이라 백방으로 뛰어봤자 그게 말같이 쉬운 게 아니다.

먼저 정선에 있는 산사랑산채원(대표 전연택)에 도움을 요청했다. 몇 차례 통화를 하였지만 난감하단다. 한 달만 일찍 말했다면 협조가 가능한 일이지만 때가 때인지라 모종이 동이 나서 어쩔 수가 없다는 거다. 더군다나 이미 비싼 인건비 들여 정식을 했으니 그걸 다시 뽑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나는 몇 가지 정황을 더 자세히 설명했다. 같이 돌아본 산업계장과 내가 내린 판단은 전체에서 10% 밖에 생존하지 않았다는 점, 아무리 서둘러 모종을 보내라고 했지만 심기에 적당하지 않을 만큼 모종 상태가 너무 어렸다는 점, 이번 기회를 무사히 넘기지 못하면 내년 사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하루 말미를 줄 테니 물량을 점검하고 답변해주기를 기다렸다. 추석 연휴 전날 4천주 가량 가능하다는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아직 계산하지 않은 여러 모종 값 1100만원을 완불하였다.

대개 사업을 하다보면 잔금을 조금은 남겨야 안전하다고 하지 않던가. 심사숙고 끝에 상대를 진심으로 믿고 전액을 보내기로 결단을 내렸다. 산사랑산채원 전연택씨가 약속한 추석이 지난 목요일에 무사히 모종이 도착한 걸 확인하고 보내야 하는 절박한 심정이었는데도 말이다.

다소 찜찜한 추석 연휴를 보내는 건 내가 선택한 일이다. 처갓집에 가서도 곰취 모종 구할 방법을 찾느라 장수군 일대 산을 온종일 오르락내리락했으니 이 얼마나 몸과 마음이 고단했을까.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면사무소와 약속한 추가분 1만 5천 주를 채우기 위해서다. 다급한 마음에 지리산삼영농조합과 곡성장에서 만난 남원 수지 할머니께도 연락을 드렸다.

우주왕복선을 쏘아 올리기 위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듯 하루하루 손을 꼽아가며 날을 보냈다. 드디어 수요일 아침! 더는 기다릴 수 없어 강원도로 전화를 했다. 조금 오래다 싶더니 "전원이 꺼져있어 통화할 수 없습니다. ~~~"라고 나온다.

'어! 이건 아닌데!'

재차 삼차 걸어도 마찬가지다. 이젠 일반전화로 걸어봤다. 똑같은 소리만 들린다.

'아차!'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다섯 번 시도했지만 손전화와 집전화까지 끊겨있다. 따로 전화가 있을지 몰라 033-114로 전화번호를 찾았지만 같은 번호 뿐이다. 명절을 잘못 보내기라도 한 건가. 암담했다. 후회스러웠다. 모든 일을 멈추고 화순에서 정선까지 갔다와야할 지도 모른다. 

'사람을 믿는 것까지는 좋지만 100% 다 믿으면 안 되는데 나는 왜 늘상 이런단 말인가.'
'이럴 사람이 아닌데….'

취나물 취나물도 가식을 했다. 취나물은 봄에 모종을 넉넉히 해둬서 그나마 다행이다. 씨앗도 열 가마니나 딸 수 있을까? ⓒ 산채원촌장


새참 시간이 임박했다. 모든 걸 지우고 산으로 갔다. 묵은 김치를 넣고 라면을 끓였다. 숫자대로 떠드리고 국물 조금에 소주 두 잔을 마시니 복잡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전혀 내색하지 않고 있으니 할머니 인부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잘도 드신다.

그래도 나오는 한숨은 자신을 속이지 못하는가. 절로 나오는 긴 한숨을 막지 못했으니 근심은 여전한 상태다. 땅바닥에 누워 담배를 머금고 나뭇잎 사이로 뚫린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전화 통화 시도로부터 두 시간이 지났다.

워낙 산중이라 거의 전화가 되지 않는 산 속 농장. 내가 급할 때는 통화지점을 찾아 무전기를 들듯 전화기를 꿈쩍도 않고 이야기를 하면 되지만 다른 사람이 나와 전화를 할라치면 아예 불통이니 이 또한 문제다.

살다보면 쥐구멍에 볕 들 날도 있고, 솟아날 구멍도 있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있다고들 하지 않던가. 명당에 퍼질러져 있는 그 자리에서 전화 수신음이 들렸다. 여기는 조선시대 때부터 무선전화가 통하지 않던 지역이라 신주단지 꺼내듯 휴대전화를 조심히 꺼냈다.

"여보세요."
"정선입니다."
"예?"
"정선이에요."
"전화기 둘 다 꺼져있대요?"
"그게 고장이 나서 수리 맡겼습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 모종 보냅니다."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4천 포기가 조금 덜 될 지 싶습니다."
"하여튼 최대한 맞춰보세요."

다행히 모든 건 정상화되었다. 하루를 이렇게 무사히 넘겼다. "휴~" 내 세상살이는 그냥 쉬 넘어가는 일이 왜 이리도 없을까. 

가뭄에 속이 타들어 가고….

곰취 식재 비 내린 토요일 아침 곰취를 심었다. 비가 온 만큼만 더 오면 좋으련만. 세상이 내 뜻대로 다 되지 않으니 맞춰 사는 수밖에 없다. ⓒ 산채원촌장


상반기 날씨는 참으로 좋았다. 제때 일을 하라는 건지 밤에만 비가 오고 낮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갰다. 흠뻑은 아니지만 작물이 자라기 좋게 왔다. 허나 비옷 딱 한번 꺼내 입을 정도로 양이 미미하여 한여름을 지나고 나서는 서서히 말라가기 시작했다. 9월 들어서는 물방울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늦더위까지 기승을 부리니 그 부드럽던 산 흙이 괭이로도 파지지 않을 정도다.

날씨가 이렇게 애를 먹이다니. 추석 앞뒤로 근 한 달쯤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 산나물을 심은 숲속 땅바닥은 밭보다 더 꽝꽝 굳어 있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메마른 땅에 이 귀한 곰취를 심는단 말인가. 계곡도 말라가는지라 물을 줄 형편도 아니다. 물을 퍼 나른들 또 어찌 그 많은 양을 댈 것인가.

소갈병이 나듯 속이 타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켤 때마다 인터넷을 하루 열댓 번 실시간 날씨 정보를 들여다보아도 비 소식이 없다. 온다는 비는 다음날로 넘어가기 일쑤다. 이런 와중에 곰취 모종이 화순읍에 도착하는 시간은 목요일 10시다.

행여 고온에 모종이 시들까봐 택시까지 대기시켜 놓았다.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비포장도로 산길을 따라 10여 분 산으로 향했다. 인부들과 기우제 이야기가 오갔다. 오르기 전까지는 물이라도 줘가며 심어볼 생각으로 물통을 잔뜩 실은 상태다.

최후의 방법, 물을 주며 심다

곰취 물주기 비가 왔지만 전혀 스며들지 않았다. 뿌리 옆에라도 줘야 살아나니 이 정도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 산채원촌장


타들어가는 땅을 파보았다. 100% 죽게 돼 있다. 달리 방법이 없다. 최후의 선택은 딱 하나! 가식(假植)을 하고 물을 끼얹어주고 며칠 비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이렇게 해놓고도 안 된다면 검사자에게 최선을 다했노라고, 더 이상은 도리가 없노라고 우길 생각이었다. 

내 차는 물을 길어 산에 오르느라 물차로 변했다. 일을 마감하고 집에 와서 날씨를 검색하니 비가 온단다. 마침 중부지방과 군산에는 폭우까지 내린다니 기대를 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노곤함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하지만 밤새 비님을 맞이하느라 뒤척이고 또 뒤척였다. 일곱 차례 비 오는 양을 보며 들락거렸더니 10여 밀리 오고는 날이 새며 비가 잦아들었다. 이것도 얼마나 소중한 금비냐.

단비가 내린 토요일 새벽 아내와 아이들도 태우고 물통을 다시 가득 채우고 인부들과 산으로 갔다. 전날 나무를 적당히 솎았지만 빗물은 나뭇잎이 절반을 먹고 일부만 땅에 내려 보냈다. 이 정도로는 땅속에 물이 배지 않았을 건 확실하니 속흙을 파내고 약간 젖은 겉흙을 뿌리에 모으는 방식이다.

인부들이 심는 사이 아이들과 아내가 부산을 떨며 물통에 채워주면 심은 자리에 분무기로 뿌려줬다. '살겠지, 살아야 한다, 이러고도 죽으면 내가 정말로 힘들어진다, 더 이상은 나를 힘들게 하지 말아라.' 속으로 한 없이 되뇌었다.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 된다는 말이 하나도 틀림이 없다. 몸소 겪고 나니 무서운 게 또 하나 생겼다. "아이구 힘들어." 간절함, 절박감에 몸을 돌보지 않으니 그만 녹초가 되고 말았다. 내일까지 닷새 이런 고단한 나날을 보내면 되니 그나마 다행이다.

연리지 숲 속 솎아베기를 하던 중 만난 연리지 덕분에 힘들어도 기분이 좋았다. 때죽나무 한 그루에 두 개나 서로 붙어서 살아가고 있다. 참 멀기도 한데 어찌 이런 게 가능할까. ⓒ 산채원촌장

덧붙이는 글 | 김규환은 8년 전부터 산나물 연구를 하였고 3년 전 귀향하여 전남 화순 백아산 일대에 200여 가지 산나물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cafe.daum.net/sanchaewon에서 만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김규환은 8년 전부터 산나물 연구를 하였고 3년 전 귀향하여 전남 화순 백아산 일대에 200여 가지 산나물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cafe.daum.net/sanchaewon에서 만날 수 있다.
#곰취 #산나물 #산채원 #백아산 #취나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 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3. 3 나의 60대에는 그 무엇보다 이걸 원한다
  4. 4 이성계가 심었다는 나무, 어머어마하구나
  5. 5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