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반대해도 말하지 않으면 찬성이 된다

[책읽기가 즐겁다 212] 일본아동문학자협회, <하늘은 이어져 있다>

등록 2008.09.23 18:07수정 2008.09.2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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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하늘은 이어져 있다

- 글 : 일본아동문학자협회

- 옮긴이 : 문연주

- 펴낸곳 : 낮은산 (2008. 8. 11.)

- 책값 : 1만원

 

(1) 전쟁을 불러 오는 우리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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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전쟁 문학을 청소년 눈높이에 맞추어서 쓴 글을 모았습니다. ⓒ 낮은산

▲ 겉그림 전쟁 문학을 청소년 눈높이에 맞추어서 쓴 글을 모았습니다. ⓒ 낮은산

아침에 창밖으로 새소리가 들립니다. 옆지기가 무슨 새소리인지 궁금해 합니다. 참새가 아닐까 생각하며 내다봅니다. 전봇대 꼭대기 높은 자리에 앉은 조그마한 새가 보입니다. 박새입니다. 참새하고 조금 다른 소리라고 느끼긴 했으나, 박새 소리였군요.

 

창문가에 서서 살그머니 사진 몇 장 찍습니다. 사진 찍는 소리는 박새한테 들리지는 않을 테지만 조금 뒤 포로롱 날아갑니다. 전봇대 꼭대기에서 잠깐 머물다 날아간 박새한테, 우리 동네는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있는 터전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골목길마다 열매나무가 있고, 가지 꼭대기짬은 사람 손이 닿지 않으니, 이 열매를 먹으면서 배를 불릴 수 있으며, 고무 대야에 심어서 가꾸는 키 작은 대추나무든지 감나무든지 복숭아나무든지에서도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을 테지요. 방앗간에서는 때때로 길바닥에 곡식 부스러기를 뿌려 주곤 합니다.

 

.. 노인은 앞니로 문 이쑤시개를 위아래로 까딱대면서 심술궂은 눈길을 가즈키에게 던졌다. “그 전쟁포기 헌법, 일본인이 만든 게 아니니 바꾸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지.” “네?” “그치들 말에 따르면, 전쟁에서 일본을 패배시킨 미국이 만들어 놓은 헌법 초안을 당시 일본 정부가 그대로 가져와 썼다는 거야.” 할머니가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여성 참정권과 남녀평등을 미국이 지독하게 채근해서 헌법에 넣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가즈키는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그런 거예요? 전쟁포기란 게 일본인이 전쟁을 일으킨 것을 반성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정한 게 아닌가요?” “글쎄, 나야말로 알고 싶군. 그래도, 일본인만큼 전쟁의 끔찍함을 사무치게 느낀 국민도 없을 거야. 그러니까 헌법이 만들어지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뿌리 깊게 생각이 박혀 있는 거겠지.” ..  (21쪽)

 

박새가 짤막이 소리를 남기고 떠난 전봇대 둘레로, 저녁과 새벽에 술 취한 사람들이 제법 많이 지나가는 날이 있습니다. 두 시이고 세 시이고 네 시이고 가리지 않고 참 시끄럽게 떠들어댑니다. 이들한테는 골목집에 깃들어 사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생각할 까닭이 없으며 아랑곳 안 해도 괜찮은지 궁금합니다.

 

아마, 아파트에서 이렇게 술 취한 사람이 있었다면 지킴이 아저씨가 달려와서 끄집어 냈으리라 봅니다. 술 취한 사람들 가운데 막 나가는 사람도 많아, 이들을 나무라거나 꾸짖기는 퍽 어렵습니다. 가끔 경찰을 부르기는 하는데, 경찰도 이들을 어쩌지 못하거나 내버려 둡니다. 동네를 도는 경찰도 술 취한 사람을 뻔히 보면서 지나칩니다.

 

조용한 밤골목을 난데없이 지나가는 폭주족도 있습니다. 이들이 밤골목을 씽씽 내달리는 까닭이라면, 이곳에 다니는 차가 없고 조용하니까, 이 모두를 깨면서 즐기고 싶기 때문일까요. 자기들한테 사랑하는 옆지기가 있고, 옆지기가 갓난아기를 어르면서 겨우 잠이 들었다고 한다면, 이런 집 옆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를 내달리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한 동네 사람이요 한 마을 이웃입니다. 그렇지만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이웃으로 느끼고 있을까 그지없이 궁금합니다.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느끼는지, 나와 마찬가지로 하나뿐인 아름다운 목숨이라고 여기는지 궁금합니다.

 

.. 이라크 문제는 어려웠지만 네 명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아 가며 마침내 완성했다. 마지막 호답게 공을 들인 신문이었다. 복도에 붙었을 때, 네 명 모두 신문 앞에서 만족해 했다. 분명 화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화제는커녕 관심을 보이는 사람조차 적었다. 그저 며칠 뒤, 트레인신문 제호 앞부분에 누군가가 ‘폐품’이라고 낙서를 했을 때에는, 반 학생 모두가 좋아라 했다. 이렇게 하여 트레인신문부의 활동은 끝났다 ..  (82쪽)

 

지난 토요일, 서울에 볼일이 있어 자전거를 끌고 갔습니다. 하늘이 꾸물거리다가 비가 퍼부어,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찻길을 달렸습니다. 굵은 빗줄기가 비옷에 튀기는 느낌을 하나하나 느끼면서 천천히 달리는데, 자전거가 지나갈 길섶은 울퉁불퉁하고 곳곳이 패여서 아슬아슬합니다. 익히 알고 있는 길 형편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이 길 형편이 나아지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빗길에도 자전거를 모는 사람이 드물지만, 빗길 아닌 맑은 날에도 자전거를 몰고 일터나 학교를 오가는 사람이 드물거든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목소리를 내어 ‘파인 길을 메워 달라’고, ‘자전거가 걱정없이 다닐 길을 늘려 달라’고 외칩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목소리는 정작 ‘길을 잘 골라야 하는 행정 부서 공무원’ 귀까지 들어가지 않기 일쑤입니다. 들어간다고 해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공무원 스스로 길 형편을 알아보거나 살펴보며 먼저 나서서 고르는 모습은 여태껏 한 번도 못 보았습니다.

 

거님길 돌을 갈아치우는 데에 쓸 돈만으로도 길섶을 얼마든지 고르게 할 수 있습니다. ‘도로정비’란 자동차가 다니기 좋도록 길을 고르는 일만이 아니라, 자전거와 사람도 걱정없이 다닐 수 있게끔 손질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공무원 스스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지 않으니까, 공무원이 되기 앞서 학생일 때에도 자전거로 통학을 하지 않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사귀고 만나던 때에도 자가용으로 나들이를 다니기만 했지 자전거로 오붓한 나들이를 하지 않으니까, 아이를 낳고 기를 때 장보러 자전거 타고 가는 일 없이 자가용만 끌고 다니니까, 아이가 자라서 학교에 갈 때쯤이면 아이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가도록 하거나 부모가 자전거에 태우는 일은 없이 오로지 자가용에 실어서 학교를 보내니까, 우리네 자전거 길 형편은 늘 제자리걸음이라고 느낍니다.

 

.. 선생님이 할 말을 잃은 순간, “차라리 외국으로 가면 어때요? 한국이나 중국이라면 국내 여행보다도 싸잖아요.” 교실 안이 떠들썩해졌다. “너희들 말이야.” 고릴라가 거칠게 말한 순간 다카시가, “중국이나 한국에도 전쟁의 흔적은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  (181∼182쪽)

 

삶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지 못한다고 할까요. 삶을 부대끼는 몸이지만 스스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삶을 껴안는 마음을 더 넓게 가꾸지 못하면서 제 밥그릇 챙기는 데에만 머리를 쓰기 때문일까요.

 

두 다리나 자전거가 아닌 자가용만 타기 때문에 더 많은 기름을 써야 하고, 더 많은 기름을 써야 하니 석유전쟁이 터집니다. 세 식구 최저생계비가 이백만 원쯤 된다고 하던데, 우리 세 식구 살아가는 데에는 백만 원이어도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국민소득 이만 달러가 되는 오늘날, 세 식구가 이백만 원쯤은 벌어야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만,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가를 살펴서, 안 쓰고도 즐겁게 살아갈 길을 찾는다면, 최저생계비 끄트머리에도 못 미치는 일삯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법에 매이지 않고 아름답고 재미나게 살림을 꾸릴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전쟁은 못난 지도자 몇 사람이 일으키지 않으니까요. 입시지옥은 기득권 몇 사람이 부추기지 않으니까요. 교통대란은 누가 일으킵니까. 한미자유무역협정이나 미친소 고기는 누가 일으킵니까.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시장이? 군수가? 다름아닌 우리 스스로 일으키고, 우리 스스로 더 많은 자원을 더 펑펑 쓰게끔 삶을 맞추어 놓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지금 우리 눈높이를 맞추거나 지키자면, 한국보다 못살면서 한국한테 싼값으로 자원을 대 주어야 하는 나라가 꼭 있어야 합니다.

 

전쟁무기가 가장 많은 나라가 미국이고, 미국은 수많은 전쟁을 꾸준히 일으키고 있습니다만, 미국 한 나라만 잘못해서 일어나는 전쟁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대학교 졸업장 꼬랑지를 놓지 않으니 전쟁이 터지고, ㅇ마트 ㄹ마트에 자가용 끌고 가서 장보기를 하니까 전쟁이 터지며, 한 번 쓰고 버리는 나무젓가락과 플라스틱을 아무 생각 없이 쓰고 버리기 때문에 전쟁이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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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박새 참새만큼 참 작은 박새가 전봇대 꼭대기에 앉았습니다. 높은 아파트숲과 견주어 너무도 작은 박새인데, 이 도시에서 어떻게 스스로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목숨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 최종규

▲ 조그마한 박새 참새만큼 참 작은 박새가 전봇대 꼭대기에 앉았습니다. 높은 아파트숲과 견주어 너무도 작은 박새인데, 이 도시에서 어떻게 스스로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목숨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 최종규

 

(2) 전쟁에 등돌리는 우리 책

 

아침 나절, 옆지기하고 책 하나를 들춰봅니다. <달콤하고 살별한 음식의 역사>(2008)라는 책으로, 책 겉에는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가 선물한 전 세계 어린이를 위한 세계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나라와 겨레마다 먹을거리가 다르고, 때와 곳에 따라서 밥을 달리 해서 먹고 있음을 사진 몇 장과 글 몇 줄로 찬찬히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넉넉하고 짜임새가 돋보입니다. 이 책을 우리 말로 옮겨서 펴낼 만한 값과 뜻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는 이처럼 제 나라 아이들에다가 이웃나라 아이들이 너르고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도록 키우려고 애쓰는데, 한국땅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교 출판부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이 나라에서 몇 손가락에 꼽을 만한 출판사에서는 아이들한테 어떤 책을 선물하고 있는지 알쏭달쏭해집니다.

 

책은 참말로 우리들한테 마음밥이 되고 있는가요. 수많은 나무를 베어내고 자원을 쏟아부어야 빚어낼 수 있는 책은 그지없이 마음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있나요. 훌륭하거나 아름답다는 줄거리를 담은 책은, 책을 집어들어 읽는 사람 모두가 훌륭하거나 아름답게 거듭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까.

 

.. 내가 전쟁 반대 집회에 가고 싶다고 말하자, 아빠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펄쩍 뛰었다. “중학생이 갈 곳이 아니다.” “그럼, 엄마랑 갈게. 같이 가 주세요. 엄마, 전쟁 반대하지?” “바보, 전쟁에 찬성하는 사람이 어디 있니.” 아빠가 내뱉듯 말했다. “그럼, 왜 전쟁이 일어나는 거야?” “여러 가지로 어려운 문제란다.” “석유에 대한 권리 같은 거 땜에?” “그 문제보다도 너, 이제 곧 새 학기가 시작되잖아? 중2는 중요한 시기다. 괜찮은 거니? 제대로 공부는 하고 있는 거야? 애들은 전쟁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 가는걸요.” … 중학생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른이 되어서도 곤란을 겪지 않도록 기초학력과 지식을 몸에 익히는 것이라고 선생님도 부모님도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허울 좋은 말일 뿐이다. 그저 입시에서 실패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교사는 교사라는 이유로, 부모는 부모이기 때문에 ..  (131쪽)

 

좋다고 할 만한 책은 틀림없이 꾸준히 나옵니다. 아름답다고 할 만한 책은 틀림없이 날마다 쏟아집니다. 제아무리 한국사람이 책을 몹시 안 읽는다고 하여도, 책 읽는 한국사람은 틀림없이 꽤 많고, 새책방에서 팔려나가는 책도 퍽 많습니다.

 

그러면, 한 권이라도 책을 더 읽은 사람들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한 줄이라도 더 읽은 사람들은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서 이웃을 부대끼거나 만나고 있는가요. 한 푼이라도 돈을 더 가진 사람이 쓰는 돈은 무엇이며, 한 가지 힘이라도 더 가진 이들이 펼치는 힘은 어디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요.

 

.. 에리는 책을 읽어도 알 수 없었다. 왜, 전쟁이 일어나는 걸까. 왜, 서로의 나라에 대해 알려 하지 않는 걸까. 답은, 아직 모르겠다 ..  (201쪽)

 

초등학교 교과서는 초등학교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교과서는 중학생 된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도록 이끌고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는 고등학생 아이들이 자기와 이웃을 어떻게 살피고 돌아보도록 가르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나라에서 어떤 일을 하는 분들이 교과서를 엮고 있나요. 이 나라에서 무슨 꿈을 품은 이들이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가요.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림을 꾸리고 돈벌이를 하는 이들이 어버이 된 몸으로 아이들을 먹여살리거나 돌보고 있을는지요.

 

.. 한편, 같은 도로의 반대쪽 차선에는 근처 마을에서 도망가는 세르비아인들이 자동차로 긴 행렬을 만들고 있었다. 그토록 심한 일을 당한 알바니아인이 돌아온다. 어떤 복수를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 공포에 떠는 것은 세르비아인 차례였다. 거의 차가 움직이지 않았던 탓에, 곧바로 고함치고 치고받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알바니아인 가운데 한 남자가 자동차 운전석의 창을 열고, 건너편 트럭에 고함을 지른다. “어디로 도망친들, 우리는, 이 원한을, 앞으로 몇 백 년이고 잊지 않을 테다!” “흥! 이 땅은 바로 다시 우리 세르비아가 되찾을 것이다!” 말싸움이 이어진다. 서로의 눈이 증오로 불타오르고 있다 ..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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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사람과 늦은 저녁, 이웃집 아주머니가 손주를 등에 업고 어르고 있습니다. 동네가 조용하니 이렇게 길에서 아기를 어를 수 있는데, 폭주족이나 술꾼이 동네를 시끄럽게 하면 모두가 괴롭습니다. 우리가 이 길에서 서로를 이웃으로 여길 때와 서로를 남남으로 여길 때, 삶은 아주 크게 달라집니다. ⓒ 최종규

▲ 길과 사람과 늦은 저녁, 이웃집 아주머니가 손주를 등에 업고 어르고 있습니다. 동네가 조용하니 이렇게 길에서 아기를 어를 수 있는데, 폭주족이나 술꾼이 동네를 시끄럽게 하면 모두가 괴롭습니다. 우리가 이 길에서 서로를 이웃으로 여길 때와 서로를 남남으로 여길 때, 삶은 아주 크게 달라집니다. ⓒ 최종규

 

(3) 어린이문학 <하늘은 이어져 있다>

 

‘전쟁이 우리 삶 어디까지 파고들어 있는가’를 찬찬히 짚은 어린이문학을 모은 책 <하늘은 이어져 있다>를 읽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본 자위대가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함께하’자, 이를 반대하면서 입으로만 아닌 몸으로, 한두 마디 외침만이 아닌 문학으로 제 나라(일본) 아이들한테 참과 거짓을 보여주자는 문학가가 하나둘 뜻을 모두어 모임을 이루고, 이 모임에서는 꾸준히 작품을 써내면서 책도 하나둘 펴냅니다. 이참에 우리 말로 옮겨진 <하늘은 이어져 있다>는 그동안 나온 어린이문학 세 권에서 몇 가지 작품을 추려서 엮은 책입니다.

 

<하늘은 이어져 있다>가 아니더라도, 적잖은 일본 문학이 한국말로 옮겨집니다. 흔히 말하는 ‘순수’ 문학도 많이 옮겨지지만, 전쟁 문제를 다룬 문학도 많이 옮겨집니다. ‘전쟁 문제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문학도 많이 나오는 일본이지만, ‘전쟁 문제에 등돌리지 않고 온몸으로 맞서는’ 문학도 많이 나오는 일본입니다.

 

.. 마사노리는 적당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상대가 갑자기 덮쳐 왔다면 이유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쏘아 버렸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는 해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왜 사람을 죽이는 걸까…. 죽임을 당한 사람의 평화는 어떻게 되는 거지…. 자기 자신들만 평화를 얻으면 그만이라는 건가 …… ..  (117쪽)

 

곰곰이 생각해 보고 찬찬히 헤아려 보면, 한국 문학가들이 쓴 ‘전쟁’ 문학도 제법 많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에 끔찍하게 전쟁을 겪기도 했지만, 가슴시린 식민지살이도 했고, 개화기라고 하는 때에 치러야 했던 아픈 일은 수두룩하고, 참 민주와 평등과 평화를 바라는 농사꾼들 일어섬도 잦았습니다. 그래요, 우리 한국 문학가들 스스로 이러한 우리네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문학으로 하나둘 여미었습니다. 틀림없이 ‘한국 문학가가 이룬 아름다운 전쟁 문학’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을 새롭게 살아가는 아이들한테 선물해 줄 만한 전쟁 문학도 꾸준하게 쓰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보는 책이기는 합니다만, 먹고살기 바쁘며 고된 회사일에다가 애 낳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는 어른들 마음을 건드릴 만한 전쟁 문학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해야 하고, 아이들을 먼저 헤아려야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어른들 스스로 자기 마음을 가꾸고 추스를 만한 마음밥은 어떻게 이루거나 맺어야 할까도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마음밥을 잔뜩 안겨 주면서, 우리 어른들 스스로 제 마음밥은 챙기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우리들 말을 다소곳하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아이들만 마음밥을 먹고 어른들은 마음밥을 먹지 않는다면, 머잖아 어른이 될 아이들이 이 나라와 사회와 세상을 어떻게 느끼겠습니까.

 

.. “전쟁을 하고 싶은 사람은 있어. 전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전쟁을 하기로 정한 사람이 전쟁터에 가는 일은 없지. 모두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 말하지 않으면 찬성이 되어 버린다는걸. 내 나이(할머니) 정도의 사람들은 모두 비참한 경험을 했을 텐데도 말이다.” ..  (139쪽)

 

전쟁을 반대한다고 생각하지만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치지 않으면 전쟁을 찬성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치지만 전쟁을 반대하는 뜻을 어떻게 몸으로 곰삭이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살피지 못한다면 전쟁을 찬성하는 사람과 같은 꼴입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삶을 알뜰히 녹여내고 있으나 저 혼자만 녹여내고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삶을 바꾸어 내지 않는다면 이 또한 전쟁을 반대하는 일에서 한 걸음도 걸어가지 못하는 셈입니다.

 

전쟁을 바라고 돈을 바라며 쇠밥그릇을 바라는 하늘은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평화를 바라고 사랑을 바라며 아름다운 삶터를 바라는 하늘 또한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어느 하늘을 올려다보는 삶일까요. 지금 우리들은 서로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삶인가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09.23 18:0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하늘은 이어져 있다 - 평화를 향한 이야기의 행진

일본아동문학자협회 지음, 문연주 옮김,
낮은산, 2008


#책읽기 #어린이책 #청소년문학 #전쟁문학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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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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