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대표님! 대통령 아닌 국민을 보십시오

[주장] 청와대 영수회담에서 민주당이 얻을 것은 없다

등록 2008.09.23 20:30수정 2008.09.2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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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여기는 중국 베이징입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막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베이징은 비온 뒤 끝이라 그런지 제법 쌀쌀해 졌습니다. 여러분 환절기 감기 조심하십시오.

 

25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만난다고 합니다. 영수회담인지 오찬회동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 만나서 무엇을 이야기 하고 어떤 성과를 남길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왜 이 시점에서 누가 뭐가 아쉬워서 구태정치 용어의 한 귀퉁이에나 있을 법한 영수회담이 성사되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정 대표께서 참모들과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 불초소생도 한마디 거들어 들릴까 합니다.

 

저는 이 시기에 모양새만 갖춰 주고 웃는 사진 한 장만 선물 받고 나올 회담이기에 썩 탐탁지 않습니다.

 

미국 발 금융위기가 몰아닥쳐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는 야당이 나랏일 걱정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런데 나랏일을 걱정하는 형식은 맞지만 그것이 꼭 이명박 대통령과의 만남의 형식을 띨 필요는 반드시 없다는 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나라 걱정을 안 할리야 만무하겠지만 국민들 또한 나라 걱정하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야당은 대통령을 쳐다보고 정치를 하면 망합니다. 야당은 대통령의 선물보따리만 받는 수혜적 입장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쟁취한 업적만이 보약이 됩니다. 야당은 실정에 등을 돌린 국민을 쳐다보고 정치를 해야 흥합니다. 이번 영수 회담이 참 아쉬운 것은 순서가 참 중요한데 국민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형식적 절차가 없었던 점이 아쉽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비록 쇼일지언정 밟는 절차를 왜 건너뛰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먼저 국민과의 회동이 아쉽습니다. 지금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나랏일 걱정하는 것에 더해 이명박 대통령은 절대 피부로 느끼지 못할 걱정도 합니다. 국민들은 "이러다가 IMF 또 오는 것 아니냐? 이러다가 내개 하는 기업이 금융위기로 망하는 것 아니냐? 비싼 이자로 파산하는 것 아니냐?" 뭐 이런 걱정들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있습니다. 주식으로 쪽박 차고 떨고 있는 국민들도 많고, 이런 분들 쭉 만나고 가면 참 좋으련만….

 

제가 꿈같은 소설을 써봤습니다

 

저는 가장 이상적인 영수회담의 형식은 촛불시위로 정부가 위기에 몰리고 야당은 국민들의 신임을 얻고 대통령은 야당 대표에게 손길을 내밀어 국민들의 들끓는 불만을 잠재우려 하고 대통령은 영수회담을 제안하고 야당은 거부하고, 다시 제안하고 야당은 못 이기는 척 조건을 걸고, (예를 들면 강만수, 최시중, 어청수 퇴진, 대통령 사과, 구속 수배 네티즌 석방, KBS YTN 사장 추천위 노-사 동수 구성 등). 제가 꿈같은 소설을 써 봤습니다.

 

저는 이번 영수회담인지 철수회담인지 왜 누구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는지 궁금합니다. 하여튼 누군가는 제안을 했고 동의를 했기 때문에 만남이 이루어진 것은 분명합니다. 이번 회담 은 참 텐션(긴장)이 없는 전무후무한 회담이 될 것 같습니다. 원래 영수회담은 누군가가 아쉽고 도움을 주고 받기위해 합니다. 그 만남 자체가 성과의 처음과 끝인 경우도 있습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그 경우에 해당됩니다.

 

이번 영수회담은 국민들의 요구를 대신 들고 들어가는 야당이 아니기 때문에 긴장감이 없습니다. 또한 대통령은 들어 주어도 그만 안 들어주어도 그만인 상황이니 야당 대표와 포용력 있는 포즈로 사진 한 장 찍어서 나쁠 것이 없습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이나 참여정부 시절 영수회담은 대개 정부가 코너에 몰렸을 때 청와대의 사정으로 성사되었습니다. 현직 대통령은 애써 웃고 야당 대표는 굳은 표정이고….

 

생각하기도 싫은 대연정 때 박근혜 대표를 청와대에 모시려(?)고 얼마나 청와대가 공을 들였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박근혜 대표에게 권력을 나누어 주겠다고 통 사정을 해도 박근혜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고 결국 "노"라는 짤막한 한마디만 듣지 않았습니까? 야당으로서 영수회담은 이럴 때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한나라당 대표가 노대통령에게 회담을 구걸하거나 좋은 것이 좋다고 장단이나 맞추었다면 과연 그들이 집권했을까요?

 

비록 적장이지만 나는 박근혜 대표의 이런 면은 높이 사야 되고 민주당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은 부자 보수 세력의 이익을 위해 사학법을 볼모로 확실하게 올인 합니다. 그 반대지점에서 민주당은 정말 사활을 걸고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싸웠는가? 반추해 보아야 합니다.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가 정체성 바로 세우기입니다. 그것을 위한 행보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정 대표는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한 행보를 이제 멈추어야 합니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곳은 차라리 안 가는 것이 맞습니다. 예를 들면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폼 나는 행사는 안 가도됩니다. 그곳은 여당 대표가 독무대에 서고 형식적인 박수를 받아도 됩니다. 집권하는데 고생했는데 그 정도 보람은 느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당은 와신상담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가서 심기일전의 투지를 기르는 것이 훨씬 몸에 좋습니다.

 

저는 야당 대표의 일정표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당 대표들이 다니는 곳에 구태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대학 총장 취임식이나 주한 외교사절 초청 만찬이나 국회 내 세미나 참석 등은 원내대표에게 일임을 해도 좋다고 봅니다. 추석날 임진각에 통일부 장관이 아닌 차관이 나와 축사를 하는 자리에 박희태 여당 대표를 대신해 참석한 한나라당 평의원과 동급으로 나란히 앉아 찍은 정 대표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참 자존심이 상하더군요.

 

달콤했던 여당의 대표시절의 앨범은 이제 망각의 강에 던져야 합니다.

 

아직도 여당 대표의 심정과 그에 따른 일정표에 매몰되어 있다면 그것은 야당 대표로서의 자격미달입니다. 현장으로 달려 나가십시오. 제가 생각하는 야당 대표의 방문지와 만나야 할 사람입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회칼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여당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촛불시위의 상징적 사건이입니다. 야당 대표는 사건이 일어났던 새벽에 서울대 병원으로 달려가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만났어야 합니다.

 

이제 촛불은 오체투지를 하는 문규현신부님과 수경스님의 영혼과 육신으로 옮겨 붙었습니다. 국정감사는 원내대표에게 맡기시고 정대표부터 넥타이 풀고 두 분과 반나절만이라도 함께 하십시오. 그리고 지구당 별로 오체투지 순례단을 꾸려 죽을힘을 다해 고행의 길을 떠난 분들과 당원들이 함께 하게 하십시오. 이것만 책임성 있게 실천하면 민주당 지지율 10% 상승합니다. 장담합니다.

 

대표님! 기왕에 취소할 수 없는 일정이니 몇 말씀 올립니다. 청와대에 들어 가셔서 정치회담도 좋고 경제 토론도 다 좋습니다. 저는 이번 회담이 이대통령에게도 정 대표님께도 그다지 필요한 회담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냥 모양새 회담인 셈이지요. 야당이 어려운 경제 사정을 위해 무엇을 협조한다고 한들 그것은 대통령에게 플러스알파이지 야당에게는 큰 소득은 없습니다.

 

아무튼 이명박 대통령과 마주 앉아 그 분의 성격만 파악해도 아무 성과가 없는 회담은 아닐 것입니다. 나중을 위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정 대표님 요즘 국민들 심기가 쇠고기 문제 때보다 더 불편합니다. 통장을 보며 파산을 걱정하는 국민들이 참 많습니다. 이것은 언론장악, 공안탄압, 민주주의 위기 등 보다 더 절실하게 피부에 와 닿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딱 한 가지 부탁드립니다. 제발 카메라 기자들 앞에서 이 대통령과 웃으면서 사진만은 찍지 마십시오. 국민들 열 받아 죽습니다. 야당은 아무리 인기가 없어도, 국민들이 기댈 언덕입니다. 대표부터 국민들의 언덕이 되어 주십사 하는 차원에서 글을 올렸는데 언짢으셨다면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 저도 민주당원이기에 욕바가지로 먹을 각오로 썼습니다. 염치없지만 국민의 뜻이 민주민들의 당에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8.09.23 20:30 ⓒ 2008 OhmyNews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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