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근로기준법만 지켜주면 안 되겠니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내놓은 비전문 외국인력 정책 개선방안을 접하고

등록 2008.09.30 11:39수정 2008.09.3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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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외국인 고용허가제에 대한 정부의 손질이 시작되었다.

 

지난 25일 '대통령 자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비전문 외국인력 정책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논의된 내용에 대한 정부 발표를 보면, 과거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오명을 쓰고 여·야 합의로 폐지됐던 산업기술연수생제도보다 더 열악하게 제도를 운영하겠다는 정부 측 의지를 쉽게 읽을 수 있어, 관련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정부 측 안에 따르면 외국인 '고용비용은 합리적'으로, '고용 체류지원은 수요자 중심'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그 방안으로 "근로자들의 지나친 사업장 변경을 자제하도록 유도하겠다"며 "교육과 안내를 명확히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노동자들은 원천적으로 사업장 이동이 금지되어 있다. 다만 예외조항으로 3개월 이상의 임금체불이나 부도, 폭행 등으로 인한 상해가 드러나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에 한해 사업장 이동이 제한적으로 허용될 뿐이다.


제한적인 사업장 이동은 산업기술연수생 제도에서도 허용되었던 것으로 오히려 노동자의 강력한 요구가 있을 때는 현행 고용허가제보다 좀 더 수월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더욱 강력하게 제한하겠다는 것은 '고용허가제가 산업연수생 제도보다 진일보한 제도'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화자찬하던 노동부가 뒷걸음을 쳐도 한참 치는 셈이다.

 

외국인력 정책 개선방안이 국가경쟁력 강화한다?

 

구체적인 퇴보의 근거 중 하나는, 이주노동자 고용 사업주의 숙식비 부담 등에 대한 방안에서 좀 더 명확히 드러난다. 현행 외국인고용허가제가 실시되기 이전, 산업기술연수생제도에서 연수생 고용업체는 숙식제공의 의무를 지고 있었다. 그 부분을 정부는 '관행적으로' 지급돼 왔다고 발표를 했다. 관행이었든, 산업기술연수생 관련 지침에 근거를 두었든 간에 고용주의 숙식 지급이 있었다는 명확한 현실에서, 이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근로조건을 저하시키겠다는 말인 셈이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기본 원칙'에 '근로조건 저하 금지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정부가 이주노동자에게 숙식이 '관행적으로' 지급돼 왔던 것을 고용주 부담이 많아 없애겠다고 하는 것은, 고용주를 위해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저하시키겠다는 공개 발언인 셈이자, 노동부가 나서서 '근로기준법 기본원칙'을 어기겠다고 나팔 부는 격이다.


이런 식의 방안이 '국가경쟁력 강화'라고 주장하는 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의 큰 취지 중 하나는 '내국인 일자리 잠식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가령 외국인에게는 최저임금을 안 줘도 되고, 수습기간도 3개월 혹은 그 이상을 둬도 되고, 숙식비 등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명문화된다면,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주는 내국인을 고용할 리가 만무하다. '싼 맛에 외국인 쓴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며, 저임금 비숙련 내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의도적으로 이주노동자로 대체하려 들 것이다.


관련 시민단체인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가 이 부분에 대해 지난 29일 성명서를 통해 "저임금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유지시키는 것은 결국 기술개발과 시설투자를 저해시켜 산업구조조정에 악영향을 줄 것이고, 정부가 찬양, 고무하는 시장경제원리에도 반대되는 정책"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차별적 임금 지급을 조장하여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발상은 단세포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 단속 활기 띠면서 부작용 속속 등장

 

아울러 정부 발표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 중 하나는 '불법 체류자 감소 대책'이다. 정부는 향후 5년 이내에 국가가 제도권 내에서 관리 가능한 10% 이하로 감소시키겠다고 밝히면서 '불법체류자 증가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를 이유로 들고 있다.


이러한 정부정책시책이 탄력을 받았는지 최근 정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이 한층 열기를 띠면서 그 부작용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호송된 T씨가 갑자기 가슴통증을 호송해 종합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급성심근경색으로 27일 새벽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T씨는 체포 당일 호송되던 중, 가슴 통증을 호소했었지만 이 같은 일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29일에도 인천공항에서 강제출국 대기 중이던 방글라데시인의 자해소동이 있었고, 같은 날 화성외국인보호서에서는 구타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 출입국에서는 "외국인의 인권 보호와 건강 상태 등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단속·보호업무에 임하도록 특별 교육을 실시하는 등 보호 외국인 인권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러한 일들이 단속과 강제출국 정책 기조가 변하지 않는 한, 반복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정부가 내놓은 이번 '비전문 외국인력 정책 개선방안'은 우리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이주노동자를 일종의 '기계 부품'으로 보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노동력을 부르면 기계가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온다'는 말은 외국인력 정책을 입안하는 이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격언이다. 만일 그 말을 잊는다면, 이번처럼 정부가 내놓는 안은 늘 '개선'이 아닌 '개악'이 될 수밖에 없다.

2008.09.30 11:39 ⓒ 2008 OhmyNews
#고용허가제 #국가경쟁력 #이주노동자 #미등록이주노동자 #근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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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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