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물려줄게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거라도 물려 주려고 합니다

등록 2008.10.09 08:40수정 2008.10.0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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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유산을 물려 받은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조상 잘 둔 덕에, 부모 잘 둔 덕에 수많은 땅을 물려 받기도 하고 국보급 보물을 물려 받기도 하며 수많은 재산을 물려 받기도 한 그들.
또한, 거대한 기업을 송두리째 대물림 받기도 한 그들이 나는 무척이나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나의 먼 조상은 세종대왕때 대제학까지 지낸 변계량이라는 분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청렴결백해 모아 놓은 재산이 하나도 없었을까요? 할아버지 시절까진 꽤 재산가였다고 하는데 외경때 큰아버지가 아버지 앞으로 떨어진 재산까지 몽땅 주색잡기로 날려버렸다고 합니다.

아버진 막내로 자라 그런지 눈치코치도 없고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문맹에다가 아무런 재주도 없어 먹고 살기 무진 힘들었지요. 부모는 두 분 다 일자무식꾼이라 돈 버는 방법도, 돈쓰는 방법도 몰랐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가난 속에 살다 9년 전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혼을 하셨지요.

유품은 고사하고 못갚은 외상값만 남겨 두셨더랬습니다. 술을 너무 좋아 하셔서 술을 외상으로 많이 드셨나 봅니다. 아버진 술만 취하면 무섭게 돌변 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나는 아버지의 그 폭력적인 술버릇이 정말 싫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처럼 돌변할까 겁이나서 술, 담배는 결단코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었습니다. 그 맹세는 아직까지 계속 지켜지고 있는 중이랍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품이 한 개도 없으니 솔직히 참 섭섭합디다. 그래서 나는 내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유품 하나라도 남겨 주려고 준비하고 있지요.

1. 커가면서 아이들이 남긴 흔적을 모조리 모으고 있습니다(태어난 후 병원서 찍은 발도장,손도장,출생신고 등 관련 문서 모음).


2. 사진을 찍어 모아 둡니다.

3. 아빠가 쓰는 자식들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일기엔 그날 아이에게 들었던 내용을 정리 하기도 하고 부모랑 나들이 간 것도 남깁니다. 예를 들어 극장에서 영화 보고 밥 먹고 집에 왔다면 극장표를 붙여두는 거죠. 그리고 표값 얼마, 밥값 얼마, 차비 얼마 등을 기록해 둡니다. 몇십 년 후와 비교해 보면 생활의 과거 자료가 될 것입니다. 재밌지 않을까요? 과거랑 비교해 보는 거).

4. 매년 나오는 기념 우표를 모아 둡니다(전지, 시트, 일부인 도장 찍힌 초일봉투, 우표여행, 엽서 등).

5. 기념주화를 모읍니다(기념동전, 연결지폐 등…. 지금은 초보라 그렇지만 차후 계속 공부하면서 범위를 넓일 계획입니다).

두 아이이니 일기쓰기도 2권, 동전, 우표 모으기도 2개씩, 자료집 모으는 것도 2권입니다.그런 일들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해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것입니다. 먼 훗날 두 아이들이 커서 시집, 장가갈 적에 유품으로 주고자 하니까요.

어떤 아이는 이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빠 왜 이런 쓸데없는 걸 모았어?"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게 되겠죠.

"미안하다. 아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학벌도 없고, 권력도 없어서 이런 하찮은 것 밖엔 너희들에게 줄게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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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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