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인간] 신안소학교의 '혁명 교사' 장준하

[김갑수 역사팩션 133회] '열두개의 눈동자' 편

등록 2008.10.12 12:17수정 2008.10.1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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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가 신안소학교 교사로 가도록 주선한 사람은 길교학이었다. 길교학은 장준하의 동창이자 가까운 친구 김용묵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였다. 어느 날 길 목사는 장준하와 김용묵에게 말했다.

"우리 집 사람이 그곳의 교사인데 의욕적인 젊은이가 필요한 학교라고 합니다. 설립한 지 30년이나 되었지만 모든 게 변변치 못한 소학교입니다. 시골일수록 나이든 학생이 많고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가 태반이지요. 그러나 젊은이로서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오히려 더 뜻있는 직장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요즘으로 치면 대학교 신입생 정도의 나이인 두 사람은 정주 신안소학교의 교사로 부임했다. 길 목사 말대로 학교는 작고 누추했다. 아무리 기독교 학교라지만 학교 건물보다 교회 건물이 더 큰 것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교사(校舍)는 마치 교회의 부속 건물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운동장도 웬만한 집 마당 크기밖에는 되지 않았고 교문도 따로 없었다.

두 사람이 놀란 것은, 새 학기 시작 전 날 교사들이 모여 담임 배정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마치 떡이나 과일을 나누듯이 한가하고 태평스럽게 담임을 나눠 맡았다. 그러고는 결과를 학교 이사장인 교회 목사에게 보고했다.

교장은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알고 보니 교장은 3·1운동 독립선언 대표 33인 중의 하나인 이명룡의 아들 이경화 장로였다. 그런데 그는 운수사업에 정신이 팔려 학교를 거의 돌보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 오래 있다가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선의 현실은 물론 학교 일도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장준하는 5학년 담임을 맡고 한 살 위인 김용묵은 6학년 담임 겸 교장 대리까지 떠맡게 되었다.

장준하, 학교를 새롭게 하다

장준하는 학교를 일신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는 여학생들의 치렁치렁한 머리부터 단정히 고치는 일에 착수했다. 그는 자신의 판단에 회의하는 일이 거의 없는 청년이었다. 그에게는 한 번 결정을 내리면 남의 생각이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기질이 있었다.


그는 우선 자신이 담임을 맡은 5학년 여학생들의 머리를 가위로 잘라 단발이나 갈래머리로 만들었다. 당연히 학부모들의 반발이 드세게 일었다. 장준하는 교사 뒤뜰에 아예 고정 의자를 설치하고 여학생들의 머리를 잘랐다. 김용묵은 그것을 단두대에 빗대 '단발대'라고 불렀다.

단발대 소동으로 학교뿐 아니라 정주 시내가 소란스러워졌는데도 장준하는 눈 하나 꿈쩍이지 않고 다음 일에 착수했다. 그는 읍내 양복점의 재단사를 학교로 불러 들였다. 그리고 여학생들에게 치마저고리 대신 블라우스와 통치마를 교복으로 입혔다. 그는 학생들에게 월사금 받은 것으로 교복 대금을 치렀다.

교장 대리인 김용묵은 학부모와 지역 유지와 교회 재직자들의 항의를 무마하고 그들의 이해를 구하느라고 편한 날이 없었다. 사실 그도 장준하의 저돌적인 행동에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장준하의 순수성과 진정성을 알고 있었다.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이화여전의 성가대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인지 장준하는 학교 성가대를 조직하여 주일 예배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그는 바닥이 마루로 되어 있는 교회를 평일에는 학생들의 체육관과 무용장과 음악당으로 사용했다.

장준하는 교회 재직자회의에 참석하여 나태하고 비합리적인 학교 운영을 통박했다.

"육영이란 미명의 간판을 하나님 집에 달아놓고 여러분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장준하의 행동을 칭찬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선량한 조선의 촌민들은 그에게 '도사 선생'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도저히 생각해 볼 수도 없는 일을 척척 해낸다는 경탄의 마음이 반영된 별명이었다. 학생들은 단정해졌고 교정은 산뜻해졌다. 학교의 분위기도 현저히 의욕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장준하의 아버지 장석인과 하숙집 딸 김희숙

이듬해인 1939년, 5학년 아이들을 올려 맡아 6학년 담임이 된 장준하에게 우울한 소식이 전해졌다. 평양신학교에 다니며 신성중학교 교사를 하던 그의 부친이 교직에서 쫓겨난 것이었다. 장준하의 아버지 장석인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그것도 4학년 졸업반으로 정식 목사 안수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교세가 강하고 지도급 목사가 많이 있었던 평북노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사태가 빚어지자, 격분한 평양신학대의 교수와 학생들은 일제히 들고 일어나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선도하게 되었다. 그들은 평양신학대 교정에 기념 식수된 평북노회장 김일선 목사의 나무를 뽑아버렸다. 이 일이 빌미가 되어 결국 평양신학대는 총독부에 의해 폐교되고 말았다.

장석인은 직장인 신성중학교 교사직을 위협하며 노회의 지침에 동의하라는 공문에 날인을 끝까지 거부함으로써 직장과 학교를 동시에 잃어버렸다. 평양신학대는 무기 휴강 끝에 학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졸업 학년이었던 장석인에게는 이듬해 봄 38회 졸업장이 우송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무튼 부친 장석인의 실직은 장준하의 상급 학교 진학 전망을 더 어둡게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장준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교사 일에 더 신명을 냈다. 사실 그는 하숙비를 제외한 나머지 돈을 모두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데 쓰느라고 집에 전혀 도움을 준 적이 없었다.

장준하는 김용묵과 같은 집에서 하숙을 했는데, 그 집에는 중년 부인 노선삼과 그녀의 딸 김희숙이 살고 있었다. 노선삼의 남편 김준덕은 중국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였다. 딸 김희숙은 장준하가 부임 첫해 담임했던 5학년 반의 학생이었다. 어머니는 두 교사에게 하숙비 받는 것으로 신안소학교를 졸업한 딸을 선천에 있는 보성여학교로 진학시킬 수 있었다.

장준하 '도사 교사'에서 '혁명 교사'로

장준하는 신안소학교가 볼품없는 교사(校舍)에 비해 부지를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근 사과밭 2,000여 평이 이사장 명의로 되어 있었고, 주변 1만 평의 산지가 학교 명의로 되어 있었다. 그는 학교가 진작부터 교사 건축 계획을 세워 놓았지만 자금 문제로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교장 대리인 김용묵을 교정의 나무 그늘 밑으로 데리고 갔다. 무더위가 한창인 7월 중순이었다.
"어이, 교장 나리. 내일부터 학교 교사 공사를 시작하겠으니 협조해 주게."

김용묵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자네 여기서 평생 소학교 교사할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 제발 좀 조용히 지내세. 그것은 이사장이나 교회가 알아서 할 일이네."
"떠날 때는 떠나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하지 않은가? 지난번처럼 구경이나 하다가 누가 뭐라 하거든 말이나 잘해 주면 된다네."

장준하의 성격을 아는 김용묵은 긴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날 장준하는 남녀 학생 80명을 데리고 사과밭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손에는 톱과 낫 등의 연장이 들려져 있었다. 그들은 사과나무부터 베기 시작했다. 한 두 달이면 수확이 될 푸른 사과 알이 수도 없이 나동그라졌다.

9월 초에 1차로 운동장이 완성되었다. 새로 다져진 운동장에서 개교 이래 처음으로 운동회가 열렸다. 본부석에는 내빈용 천막이 세워졌고 하늘에는 만국기가 펄럭였다. 모여든 주민들로 운동회는 장터보다도 더 벅적거렸다.

그 날 이사장은 교사 신축 계획을 발표했다. 장준하의 의도대로 된 것이었다. 이듬해 여름, 신안소학교의 캠퍼스는 아주 그럴듯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장준하를 '도사 교사'에서 '혁명 교사'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신안소학교는 평동중학교로 격상 개교할 수 있었다.

(계속)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해 보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덧붙이는 글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해 보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장준하 #신사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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