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돌라 아래로 청춘들은 지고 또 지고

[리뷰] 극단 연우무대의 명작 <칠수와 만수>

등록 2008.10.15 10:50수정 2008.10.1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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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지향의 창작극 돌풍을 주도한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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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나게 살고 싶었다... 출구가 닫힌 청춘들의 로망 '칠수와 만수' ⓒ 연우무대

<칠수와 만수>는 지난 1986년 처음으로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되었을 때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당시 정치경제적 가위눌림 속에서 고통 받던 일반 시민과 대학생들은 사회현실을 통렬하게 풍자한 이 연극을 보고 거의 만장일치로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런 갈채에 힘입어 이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은 거의가 스타덤에 오르는 진기록을 남겼다. 문성근은 말할 것도 없고, <공공의 적> 시리즈의 강신일, 연기파 배우 안석환, <친구>의 유오성에 이어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의 김뢰하 등이 <칠수와 만수>를 통해 본격적인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 작품의 인기는 마침내 영화 제작까지 낳았다. 사회파 박광수 감독은 1988년 안성기, 박중훈, 배종옥을 내세워 동명의 영화를 개봉하기도 했다.

<칠수와 만수>를 본 관객들은 당시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성토하는 배우들의 거친 목소리에 통쾌감을 만끽했다. 동시에 건물 옥상에서 지상으로 투신하는 두 청춘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짙은 페이소스에 젖어들어갔던 것이다. 그 후 어언 20년의 세월이 흘러 <칠수와 만수>가 다시 우리 앞에 섰다.

칠수와 만수는 무엇을 위해서 투신을 택했나

극단 연우무대가 이번에 리바이벌한 <칠수와 만수>(유연수 연출)는 70대1일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을 통과한 김재철(칠수)과 이태형(만수)를 캐스팅해 한층 무대가 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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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소극장의 현수막 20여 년 지나서 한결 젊어진 칠수와 만수가 관객들을 찾는다 ⓒ 김성경


기지촌 출신인 칠수와 수부리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인 만수는 고층빌딩에 매달린 곤도라 위에서 유명 여배우의 거대한 나체를 그리며 힘들게 벌어먹고 산다.  

공사 데드라인을 며칠 앞두고 칠수와 만수는 33층 건물 꼭대기로 올라간다. 해방감에 고양된 만수는 전능한 신처럼 두 팔을 벌리고 까마득힌 저 아래에서 개미처럼 살아가는 도시인들을 한껏 조롱한다. 그러나 이 장면은 돈 때문에 중노동에 종사하는 청춘들이 부풀린 도취감 속에서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는 몸부림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후 실수로 떨어뜨린 페인트통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불러일으킨다. 이어 상황을 제멋대로 왜곡 과장하는 기자가 등장하면서 칠수와 만수는 졸지에 사회불평분자에 테러리스트로 공중파 방송에 알려진다.

마침 대통령 2주년 취임식을 맞아 기필코 사태를 정리해야 하는 구조전문가들은 특공대를 올려 보내 당장에 상황을 끝장내려고 한다. 위기감이 고조된다. 두 사람의 처지는 아무한테도 이해받지 못한다. 결국 칠수와 만수는 '병원에서 만나자'며 두 손을 잡고 저 아래 지상을 향해 몸을 던진다.

생사가 판가름나는 순간 칠수와 만수는 경쟁의 출발선에도 서 보지 못한 낙오자들로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켜낸다. 이 투신은 자유를 향한 낙하라는 의미를 띤다. 지난 10월 12일 3시 공연, 극장을 가득 채운 20대 청춘 남녀들이 20여 년 세월 저쪽에서 탄생한 <칠수와 만수>을 보고나서 충격을 받은 듯 얼떨떨한 얼굴로 극장을 나선 까닭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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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공 칠수와 만수 유명 여배우의 나신을 그리는 동안 페인트로 엉망이 된다 ⓒ 연우무대

덧붙이는 글 | 공연정보 : www.iyeonwoo.co.kr


덧붙이는 글 공연정보 : www.iyeonwoo.co.kr
#칠수와 만수 #연우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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