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맹모삼천지교

결혼이주민 한국어교실 밖 풍경

등록 2008.10.20 13:36수정 2008.10.2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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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아악~~”
“고 녀석 가수해야겠네. 이제 그만, 알았지?”


갑자기 고함을 지른 녀석 덕택에 여기저기서 놀란 아기들이 칭얼거리고, 아기들을 돌보고 있던 선생님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댑니다. 고함을 지른 녀석은 채 돌이 지나지 않은 남자앤데, 고함을 지르고 나선 씨익 하고 웃는 게 제 깐엔 무슨 신이 난 일이 있었나 봅니다.

“어머 어머, 애 좀 봐. 까르르”
“응아아~~”
“아빠 닮았어요. 여자 좋아해”
“하하하”

17개월이 된 정원이가 단잠을 자다 고함소리에 잠을 깬 정은이의 볼에 뽀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을 깼던 정은이는 정원이의 뽀뽀에 더 칭얼거리기 시작합니다. 이어 이제 막 뒤집기를 하기 시작한 명오가 따라 울기 시작합니다.

“어어~, 흔들침대가 어디 갔지?”
“아까 애기 엄마가 교실에 갖고 갔어요.”
“한꺼번에 울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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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눈맞추는 보육도우미 한꺼번에 갑자기 울어대면 참 난감해진다. ⓒ 고기복


이쯤 되면 완전 비상사태입니다. 아기 울음소리들이 커지자, 몇몇 엄마들이 정확하게 아기소리를 알아듣고 나타납니다.


매주 토, 일요일 용인이주노동자쉼터에서 진행하는 결혼이주민을 위한 한국어교실과 교실 밖 풍경입니다. 베트남과 태국 출신 결혼이주민들로 구성된 학생들은 대부분 20대 초반부터 중반의 엄마들로 아직 앳된 모습이 채 가시지 않았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는 순박한 사람들입니다. 한국어교실에는 아직 뱃속에 아기를 갖고 있거나, 얼굴에 벌건 핏기가 사라지지 않은 젖먹이를 두고 있는 학생부터 한참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를 둔 엄마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공부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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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민 한국어교실 풍경 수업 중에 걸음마가 가능한 꼬마가 엄마를 찾기도 하고, 아기를 품에 안거나 옆에 두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 고기복


그럼 엄마들을 위한 한국어교실이 진행되는 동안 젖먹이 아기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기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 중 절반은 아기를 안거나, 옆에서 보채는 아기들을 옆에 두고 수업을 하고, 아직까지 낯가림이 심하지 않거나 잠을 자는 아기들은 자원활동가 선생님들과 함께 하게 됩니다. 지난 토요일에도 상당 시간 동안 다섯 명의 아기들은 교실에서, 다섯 명의 아기들은 교실 밖에서 자원활동가 선생님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대개 아기들은 자원 활동가들의 품에 안기거나, 요람 위에서 잠을 청합니다. 그 와중에 잘 자다가도 배가 고프거나, 쉬나 응가를 해서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칭얼거리며 엄마를 찾습니다. 그러면 엄마들이 달려와서 아기들을 위해 가슴을 풀어헤치고 젖을 물리기도 하고, 아기를 안고 교실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문제는 걸음마가 가능한 녀석들인데, 이 녀석들은 거의 통제 불능입니다. 잘 자는 아기들의 잠을 방해하기는 보통이고, 수업에 열중인 엄마에게 달려가기도 일쑤입니다. 그러다보니 아기엄마들은 공부하는 시간보다 아기에게 신경을 쓰는 시간이 더 많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매주 두 번씩의 한국어수업 시간은 결혼이주민들에겐 오랜만에 고향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자, 사랑방 같은 분위기에서 한담을 나눌 수 있는 시간입니다. 수업에 참석하는 결혼이주민들은 종종 고구마를 삶아 오기도 하고, 시골에서 감을 따서 한 봉지 싸들고 오기도 합니다.

어쩌면 지금은 젖먹이지만, 몇 해 지나면 엄마보다 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을 아이들을 위해 엄마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고, 불편을 감수하며 공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매주 수고하는 자원활동가 선생님들 역시 결혼이주민들과 그 가족 구성원들이 우리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의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속에 팔목이 저리고 가끔씩 아이들의 실례에 옷이 젖기도 하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엄마 품에 안겨 조기 교육받는 이 녀석들, 현대판 맹모삼천지교의 수혜자들 아닌가요? 엄마 품에서부터 한글을 익히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결실이 아름답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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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좀 자면 안 되겠니? 요람에 누워 눈만 멀뚱멀뚱, 언제 자려나? ⓒ 고기복

#결혼이주민 #한국어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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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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