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악의 오페라

등록 2008.10.21 21:56수정 2008.10.2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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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형 야외 오페라 투란도트가 한국 오페라를 망쳤다'라는 기사를 읽었다. 직접 가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할 만한 처지는 못되었다. 그러나 서울 올림픽 공원 내 올림픽 홀에서 한국 오페라 건국 60주년이라는 그럴싸한 타이틀의 오페라 카르멘을 본 적이 있는 나는 그 기사에 100% 공감할 수 있었다.

 

4500여석의 큰 체육관 시설 같은 공연장소. 장소의 단점을 줄이기 위해 설치한 음향 및 영상 시설이 오페라를 보는 내내 눈과 귀를 자극했다. 당연히 그런 큰 공간을 울리려면 마이크는 필수였을테고 작은 무대를 극복하기 위해 배우들의 움직임과 표정까지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한 배려는 고마웠다.

 

그러나 공연 내내 들려오는 음향시설의 잔잔한 소음과 낱낱이 공개되는 배우들의 표정과 움직임 하나하나가 너무도 어색하고 불편했다. 오페라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뮤지컬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애매모호한 장르를 난생처음 접해보았다.

 

공연 내내 잠시도 쉬지 않는 아이들의 소음과 자리 이동 심지어 공연장 내부에서 아이들의 축구 경기 감상까지. 도대체 음악공연을 보러 온 건지 장터에 쇼를 구경하러 온 건지 혼동될 지경이었다. 그 정도의 공간에서 공연하려면 관람객을 위한 엄숙한 공연을 위한 준비가 있던지, 그도 아니라면 아예 완전 개방된 축제로 만들던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말뿐인 오페라.

 

'오페라'라고하면 일반인이 흉내 낼 수없는 신이 주신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인간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주 큰 매력이다. 특히 가수들의 울림 및 성량 그리고 기교 등의 비교는 오페라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지어진 오페라 극장 혹은 홀 안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의 풍성한 울림. 그 매력을 마이크와 스피커가 다 빼앗아 갔다. 성악가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허접한 음향시설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동일한 볼륨과 동일한 크기로 기계에서 울려 퍼져 나왔고 합창단 역시 찢어지는 듯한 스피커 울림에 귀를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으며, 오케스트라는 무슨 전자 악기 소리를 듣는 듯하여 뮤지컬 사운드인지 혼동이 될 정도였다.

 

오페라 카르멘의 화려함은 간데 없이 사라지고 넓은 공간을 채우지 못하는 어설픈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무대 그리고 배우들의 초라한 모습. 새로운 시도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광경에 오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과 열정이 배어 있는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물론 수지타산을 위해 큰 공연장에서 많은 관객을 유치하고 싶은 마음이야 제작자 입장에서 얼마든지 욕심이 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오페라에 대한 진정한 매력을 못 느끼고 재미없다거나 지루하다는 선입견만을 만들어 낸다면 오페라의 미래는 없다.

 

작은 공연장이라도 작은 규모라도 알찬 공연을 올려서 진정한 오페라의 매력을 발산해 내고 마니아층을 끌어 모으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오페라를 부흥시키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소극장에나 어울릴만한 공연을 4500여석이나 되는 대형 공간에서 공연을 하려니 이런 부작용들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오페라의 쇠퇴를 막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일 년에 하나의 작품을 보더라도 정말 좋은 공연을 보고 싶다. 오페라를 제작하여 올리는 분들은 이 점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 여러분들의 손에 오페라에 목숨 걸고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의 꿈이 달려있다고.

2008.10.21 21:56 ⓒ 2008 OhmyNews
#오페라 #성악 #카르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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