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보려다 신용불량자 됐어요"

[인터뷰] 제8회 시민영상제 개막작 <학교를 다니기 위해...> 안창규 감독

등록 2008.10.23 21:34수정 2008.10.2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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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의 한 장면 ⓒ 민주언론시민연합


2008년, 대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은 뭘까. 열정? 패기? 낭만? 물론 이것도 필요하지만 필수조건이자 전제조건이 되어야 하는 것이 등록금, 바로 '돈'이다. 등록금 1천만 원 시대라는 말은 이제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여진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야기이지만, 등록금은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짐이고 빚인 게 현실이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 학자금 대출 이자를 내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학생들은 이제 '특별한' 경우가 아닌 것이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은 '등록금'인 현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하는 제8회 퍼블릭액세스 시민영상제에서 24일(금) 개막작으로 상영될 예정인 다큐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등록금에 의한 삶을 살고있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달에 100만원 벌어서 80만원을 저축해도 학자금 대출받은 1000만 원과 집의 빚 1500만원을 갚아나가기 빠듯한 대학생 김은화씨, 학자금 대출이자를 내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대학생 안형우씨,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대학생 김우람씨, 그리고 등록금뿐만 아니라 재개발로 인해 오른 하숙값에 또 절망하는 대학생 이준혁씨.

인터뷰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학교를 다니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닌, 그렇다고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것도 아닌 '돈'을 마련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대학생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 다큐를 기획·제작한 안창규(RTV <영화, 날개를 달다> 제작) 감독은 대학생도 아닌 30대의 다큐 감독이다. 그는 왜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됐을까? 지난 22일 그를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다.


30만원 벌려고 임상실험 아르바이트까지...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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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의 안창규 감독 ⓒ 정미소

- 왜 '등록금'을 소재로 선택했는가.
"나도 대학교 생활을 오래했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휴학했던 기간이 있어 29살이 돼서야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방학 기간에 건축 공사 현장에서 한 달 반 정도만 일하면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고도 여행할 수 있는 경비까지 남았다.


그러나 지금은 한철 공사 현장을 다녀도 등록금 마련하기가 어렵다. 학교 후배들과 등록금 이야기를 하면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사회는 학생들을 점점 더 힘든 상황, 즉 생활전선으로 내몰고 있다. 사회, 대학교, 기성세대들에게 이런 문제점을 보여주고 이를 개선해 나가야 함을 말하고 싶었다."

- 작품 제목이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것들'은 등록금 말고 또 무엇을 말하는가.
"나는 10년 전에 학교를 다녔다. 열정과 낭만 등이 학교를 다니기 위한 요건들이었는데 그게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지금은 돈이 있어야 하고, 좌절하지 않고 상처 받지 않아야 한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이준혁 학생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빈부격차를 느낀다고 한다. 그로 인해 자괴감에 빠진다고 말했다. TV에서 나오는 대학 생활은 너무 환상적이지만, 요즘 학생들은 그런 환상조차 꿈꾸지 않는 것 같다."

- 작품을 보면 제1장 봄, 제2장 아우성, 제3장 작은 망루, 제4장 새로운 마을, 제5장 개미지옥으로 나눠져 구성되어 있다. 장별로 나눈 이유와 장별 특징은 무엇인가.
"등록금 투쟁의 시작 단계가 봄이다. 2월에 등록금 고지서가 발송되면 그때부터 등록금 투쟁을 시작한다. 1장에서는 등록금을 내기 위해 받은 학자금 대출이 오히려 빚이 된 학생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학생들이 왜 등록금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2장은 집회에 모인 학생들을 인터뷰해 등록금을 내야 하는 학생들의 현실적 어려움을 표출하는 내용을 담았다. 3장은 당시 탑을 만들어 그 위에서 등록금 투쟁을 하고 있었던 이화여대 총학생회 소속 학생들을 인터뷰했다. '망루'는 감시하는 탑을 이르는데, 이대 학생들이  나무로 오두막 같은 것을 만들어 위에 올라가 등록금 투쟁을 하는 모습이 사회와 대학교를 감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4장의 경우 흑석동 뉴타운이 들어서게 되면서 하숙 값이 오르는 문제를 담았는데, 어쩌면 등록금과 동떨어져 있는 문제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학생들이 겪고 있는 문제였기에 같이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등록금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 데 있어서 다같이 해결 방법을 찾고 모색해 나가야 함을 강조하고 싶었다."

- 작품에서 보여지는 학생들의 사례가 대학생들의 일반적인 현실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쩌면 특별한 경우로 비춰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민을 한 부분이다. 그러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인터뷰 자체가 케이스별로 진행됐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등록금 투쟁 집회에서 학생들의 '등록금 낮추자'는 외침에 시민들이 호응을 해주는 모습을 오랜만에 봤다. 시민들도 느끼고 있는 문제이기에 호응을 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품에 나오는 학생들을 볼 때 '매번 등록금 문제 제기하는 학생들 아니야?'라고 색안경을 쓰지 않고 바라봤으면 한다. 작품에 나오는 학생들은 자신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라고 봐줬으면 한다."

- 기억에 남는 인터뷰나 사람이 있다면.
"안형우 학생을 인터뷰할 때 힘들었다. 안형우 학생이 아르바이트로 임상실험을 당한 사례는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편집된 영상에서는 아르바이트 사례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당시 단둘이 마주보고 인터뷰할 때는 듣고 있기가 괴로웠다. 힘들어서 인터뷰를 중간에 끊고 갔을 정도다.

작품에는 나오지 않지만 '고액 등록금 피해사례 증언 대회'에서 발언한 약대 졸업생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약사로서 성장하는 게 아니라 빚을 갚기 위해서 약을 팔아야 하는, 양심을 팔아야 하는 처지를 말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 학생들을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등록금 문제는 나도 겪었던 문제였다. 그러나 임상실험 아르바이트까지 하는지 몰랐다. 임상실험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홈페이지에 모집 공고가 올라오면 몇 분도 안 돼서 지원자들이 지원 댓글을 남긴다. 한 번 하면 30만원이라는 돈을 주지만, 자신의 몸을 내맡기는 모습을 보면서 좀 충격을 받았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학생들의 고통이 좀 더 깊어졌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학생들을 인터뷰하기 전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라는 생각보다 '어떻게 돈을 벌어서 생계를 유지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밝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특히 봉유리 학생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학생이었다. 자신의 꿈을 지켜가지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이야기에 봉유리 학생만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대학생들은 개미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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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인하, 등록금 상한제 실현, 이명박 교육정책 규탄 '3.28 전국대학생 행동의 날' 행사가 28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전국대학생교육대책위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 작품에서 내용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제작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좀 더 있었다면 인터뷰하는 학생들과 친해져서, 학생들의 생활 모습을 담아봤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 그러지 못해 깊이가 떨어진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친해지지 않고 사생활을 보여 달라는 건 폭력적이라고 생각해 요구하지 못했다."

- 이번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인터뷰 섭외하는 게 힘들었다. 이준혁 학생의 경우 원래 인터뷰 대상이 아니었는데 마침 총학생회실 안에 있었다. 그래서 '이왕 왔는데 인터뷰 해달라'라고 말하고 이후에도 2~3번 정도 찾아가서 인터뷰 할 수 있었다.

부모님들의 경우에는 3~4번 거절당하니깐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섭외하지 못했다. 부모님들은 선뜻 나설 수 없는 게 자녀의 입장이 있어서다."

- 매년 등록금은 오르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록금이 오르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무한 경쟁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들은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학생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하는데, 학생들을 학교 가치를 높이려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반성해야 부분이 아닌가 싶다.

또 대학들은 학생들이 학교에 없는 방학 기간을 이용해 중요한 정책을 결정한다. 학교의 주인인 학생은 정작 주인 행세를 못하고 있다. 학교는 항상 학생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말하지만 학생들과 함께 논의하지는 않는다. 그 이후라도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비겁하다."

- 등록금 투쟁은 일명 '개나리 투쟁', 즉 봄에만 반짝하고 그만두는 투쟁이라고 비판받는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또래들은 학생들이 너무 힘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푸념에 불과하다. 학생들은 3~4월 달에 자신들의 입장을 충분히 발언했다고 생각한다. 교육계나 학교 당국은 이들의 외침에 귀기울이지 않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학생들을 하나의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고 장사를 하는 것뿐이다.

학생들은 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인식하고, 이를 참지 못해 뛰쳐나온 것이다. 그 사실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문제를 느끼고 뛰어 들어야지 우리가 강요할 수 없는 문제이다."

- 작품 결말을 보면 대학생 이준혁씨의 "현실이 우리를 옥죄고 있다. 다같이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결코 남 일이 아니다"라는 인터뷰로 마무리한다.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가.
"이준혁 학생이 '학생들 사이에도 경제적으로 차이가 벌어져 있으니깐, 더 따라가려고 한다. 알면서도 매달리는 것이다. 마치 서로 빠져 나가려고 해도 빠져 나갈 수 없는 개미지옥 같은 삶이다'라고 말한 부분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작품을 매듭짓는 인터뷰로 선택했다. 결말의 핵심은 학생들을 개미지옥으로 내모는 현실이 잘못됐음을 비판하고자 했다.

또 자신의 현실을 방관하는 다른 학생들, 사회에 등록금 문제는 같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을 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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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퍼블릭액세스 시민영상제 포스터 ⓒ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하는 제8회 퍼블릭액세스 시민영상제가 '희망, 형형색색'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오는 24일(금)부터 26일(일)까지 서울 광화문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서 열린다.

올해로 8회째를 맞는 시민영상제는 시민들이 직접 만든 영상작품을 공유하는 영상제로 120여 편의 작품이 공모됐다. 심사 결과 28편의 경쟁작(어린이 및 청소년 12작품, 젊은이 및 일반 16작품)과 4편의 국내 초청작이 무료 상영된다.

개막작품은 드라마 <170mm> 다큐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로 24일 오후 8시부터 상영되며, 폐막작품은 다큐 <마지막 달동네> 다큐 <우리 교수님 이야기>로 26일 오후 7시부터 상영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정미소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정미소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등록금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 #퍼블릭액세스 시민영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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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기자 활동을 통해 '기자'라는 꿈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 싶습니다. 관심분야는 사회 문제를 비롯해 인권, 대학교(행정 및 교육) 등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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