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던 이를 뽑았는데 허탈하고 서글퍼요"

어금니 뽑고 얻은 교훈 '치과를 두려워 말자'

등록 2008.10.27 10:54수정 2008.10.2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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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쯤 되었을까요. 오른쪽 아래 사랑니와 어금니 사이 잇몸이 붓더니 양치질을 할 때마다 피가 보이고 점차 통증이 심했습니다. 해서 잇몸 약과 함께 진통제를 먹으니까 통증이 가라앉아 노쇠현상이려니 생각하고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8월 하순 고향으로 이사와 보고 싶던 지인들을 만났는데, 그 때 작년 추석 때 진료비도 받지 않고 스케일링을 해주고 처방전을 써주었던 치과 의사 친구도 만났습니다. 보고도 싶었지만, 이사를 왔으니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상담을 하려고 찾아갔던 것입니다. 

20년 가까이 부부모임을 했던 사이라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만남의 기쁨도 잠시, 진료실에 들어선 친구는 방사선촬영을 하고 검진을 하더니 하루라도 빨리 오른쪽 끝 어금니와 사랑니를 뽑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치과의사 30년 경력에 다른 병원에 비해 의료기기 시설을 잘 갖춰놓고도 대학병원 같은 큰 병원에서 발치를 해야 한다며 소견서까지 써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낌새가 좋지 않아 들르긴 했지만, 사랑니와 어금니를 한꺼번에 뽑아야 한다는 진단은 예순이 코앞인 남자의 마음을 허탈하고 서글프게 했습니다.   

왜 하루빨리 이를 뽑아야 하는지 설명하는 친구의 진지한 표정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습니다. 백수 인생 주제에 임플란트 시술은 상상할 수도 없고, 처음 하는 발치라서 공포감까지 엄습해 왔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대기실로 나오니까 몸을 움직이기조차 싫더라고요. 해서 한참을 대기실 소파에 앉아 온갖 상념에 잠겼습니다. 어디에 정신을 팔았는지 시내버스를 타고 오면서 생각하니까 진료비도 계산하지 않고 왔더라고요. 한숨과 함께 입가에 쓴웃음이 지어졌습니다.


이를 뽑기로 결단을 내리다

집으로 돌아와 며칠을 번민에 시달렸습니다. 알콜에 적신 솜을 어금니에 물고 윗목에 앉아 울던 코흘리개 시절이 떠오를 때는 이가 스스로 뽑힐 때까지 진통제를 복용하며 견디고 싶다가도 무지몽매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아침밥을 먹다 빠진 유치를 들고 마루로 나가 지붕으로 던지며 "까치야, 까치야 헌 이빨 줄팅게 새 이빨 다오"라고 중얼거리던 옛날을 생각하기도 하고, '나는 잇몸이 건강한 편이니까 부작용도 없고 큰 고통은 없을 거야'라며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아내만큼이나 소중한 어금니가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니 만사가 귀찮고 자신감도 떨어지더군요. 그래도 누구나 겪는 일인데 이래서는 안 된다며 자위도 하고 용기도 넣어주며 달랜 끝에 전주에 있는 전북대 치과병원에서 이를 뽑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를 뽑기로 마음을 먹으니까 두려움도 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해서 지난 9월 29일에는 상쾌한 기분으로 전북대 치과병원에 가서 X-ray와 CT 촬영을 마치고 10월 20일 오후 3시에 발치하기로 날을 잡고 집에 오니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했습니다. 

앓던 이 뽑았는데 허탈하고 서글퍼요

마음을 정하고 나니까 하루라도 빨리 뽑아버리고 싶더라고요. 기다리던 10월 20일에는 12시쯤 여행하는 기분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황금 들녘으로 변한 십자들녘에서 들려오는 콤바인 소리가 가슴을 넉넉하게 했습니다.

온갖 상념을 떨쳐버리니까 몸이 가볍고, 시내버스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더욱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전주행 버스에서도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오수를 즐길 정도로 마음을 편하게 먹고 전북대 치과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간호사에게 사랑니와 어금니를 뽑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더니 약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서 조금 참으면 되겠지 하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어금니 하나 뽑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고 의사가 두 번이나 쉴 정도로 애를 먹었습니다. 의사 말에는 뿌리가 깊이 박혀 있어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해서 사랑니는 경과를 봐가며 뽑기로 하고 발치를 마쳤습니다.   

우리는 답답한 일이 풀리면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이 시원하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속이 시원하기보다 허탈감과 서글픔이 더한 것 같았습니다. 늙음의 증좌로 이를 뽑아냈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동안의 번민과 안타까웠던 일들을 모두 웃음에 날려버릴 수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집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물고 있어야 한다며 거즈를 물려주는데, 휘발유를 적신 솜을 물고 고통스러워하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를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치과를 두려워 말자'

이를 뽑은 다음 날 소독을 하러 병원에 갔는데 입가에 약간의 상처와 조금 부은 것 말고는 경과가 좋아 다행이었습니다. 6일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실밥을 뽑는 오늘(27일)도 진료를 순조롭게 마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실밥을 뽑으러 가면 의사선생님이 사랑니를 뽑자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의사가 완강하게 나오지 않는 한 그냥 두려고 합니다. 사랑니가 살을 뚫고 나온 것도 아니고, 어금니 하나를 뽑으니까 컨디션이 거의 정상을 찾은 것 같아 뽑더라도 훗날 뽑고 싶습니다. 머리털 하나라도 더 보존하고 싶은 절박함 때문이겠지요.  

어금니를 뽑으면서 느낀 게 있는데요. 치과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1개월이 넘는 시간을 번민과 고통으로 보낸 이번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제부터라도 치아에 신경을 쓰려고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평소에 치아관리를 철저히 하고 충치 등 치아나 잇몸에 문제가 생기면 빨리 치과를 찾는 것입니다.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치과 역시 미루면 미룰수록 치료하는 데 시간적, 금전적으로 부담이 커진다는 것을 이번에 경험했습니다. 해서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의사를 찾아가 상담도 하고 치료도 받는 게 가장 현명한 치아관리라 생각됩니다.

건강한 치아를 죽을 때까지 지키려면 건강한 치아를 가지고 있더라도 언제든지 편하게 상담할 수 있는 치과 병원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면 죽을 때까지 건강한 치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어금니 #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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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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