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

안부 문자를 마지막 유언쯤으로 착각하신 부모님

등록 2008.10.28 09:33수정 2008.10.2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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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다. 여대생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그런 연애문제(?)였지요. 서울에서 혼자 살기에 마음이 더 적적하고 해서 부모님께 평소보다 자주 연락도 드리고 고민 상담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하루는 강의를 듣는데, 교수님께서 부모님들 건강을 잘 챙겨주라며 교수님 부모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마침 날씨도 추워지고 해서 멀리 떨어져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부모님께 문자를 보냈지요. '우리 가족들 항상 건강하고 하는 일 모두 잘되고 행복하기를!' 이런 밝고 건강한 문자였습니다. 답장은 없더군요. 오십대 후반이시니까 또 문자를 늦게 확인하시는가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요.

일상적으로 하루를 보내고 곤히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6시부터 전화가 요란하게 울리는 것입니다. 잠결에 누군가 보니 엄마였습니다. 별로 중요한 전화같지도 않고, 잠도 오고 해서 나중에 다시 전화를 할 요량으로 폰을 꺼버리고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두 시간 후에 일어나서 다시 전화를 걸려고 폰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로부터 문자가 여러 개 와 있는 것입니다.

'연아! 고민있나? 엄마가 비록 모자라고 맘에 안찰지 모르지만 같이 걱정하면 안될까? 연이의 기도 그분께서 기꺼이 들어주시리라'와 같은 내용이 연달아서 와 있었지요.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일인가 싶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는 "연아, 힘드니, 무슨 일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와 같은 엄청난 위로를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무엇인가로부터 저를 회유하려고 했습니다.

저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습니다. 잘 자고 잘 먹고 안부문자까지 보냈는데 말입니다. 엄마한테 갑자기 왜그러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난 니가 요즘 힘든 일도 있고, 마지막 유언 같은 문자를 아빠랑 엄마한테 보내고 전화도 안 받길래' 하며 말끝을 흐리셨습니다. 설마하는 생각에 '나 자살이라도 한 줄 알았어?'라고 여쭈니, '응. 걱정했었어'라는 엄마의엄청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나이가 오십대 후반이시다보니 문자 확인을 금방금방 안 하십니다. 그래서 새벽에 문자를 확인하시곤 다급한 마음에 전화도 하고 문자도 하셨나봐요. 여튼 일단 말도 안 되는 생각하지 말고, 나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아 세상이 이렇게 뒤숭숭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그런 식의 소리는 단 한 번 한 적도 없는 나를 부모님이 그렇게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세상이라는 생각에 어이없기도 해서 웃음이 났습니다.

하도 여기저기서 사람들 자살했다는 소식들이 들려오니 부모님 마음도 뒤숭숭하셨나 봅니다. 아침에 벌어진 작은 에피소드로 끝났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자살 #부모님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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