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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부(農父)에게는 아들보다 콤바인(복식 수확기)이 효자!! ⓒ 이장연
저희 집이나 동네는 지난주와 이번주 해서 추수가 얼추 끝났습니다. 팔뚝보다 굵은 고구마도 캐고 잘 여문 수숫대도 잘라내고 깨를 털어 선풍기 바람에 검불도 날리고 황금빛 나는 벼도 베고 말입니다.
그런데 풍성하고 흥겨워야 할 추수철, 외곬에다 오지랖만 넓어 돈도 많이 못 벌고 번듯한 직장 하나 없는 백수 아들이 바쁜 가을걷이에 일손도 보태지 않고 빈둥거려 부모님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아버지가 논과 밭, 집을 오가며 낡은 신발에 묻혀온 흙먼지가 쌓인 계단 청소만 나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어제는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을 자전거로 오가는 길에 둘러봤는데, 어디선가 "삑삑삑삑" 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무슨 소린가 두리번거렸습니다. 타작을 모두 끝낸 논 중에 작은 논뙈기에서 앞뒤를 힘차게 오가며 벼를 베는 콤바인(복식 수확기)이 눈에 띄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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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베기가 다 끝난 들녘 ⓒ 이장연
어렸을 적에는 손으로 모를 냈을 뿐 아니라 가을이면 온 가족이나 마을 사람들이 서로서로 품앗이해가며 낫으로 손수 벼를 베었는데, 이제는 콤바인 한 대면 저 들판의 벼를 예전 만큼 힘들이지 않고 수확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힘든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잘못해 깊은 수렁에 빠지기라도 하면 콤바인을 끌어내기 위해 포클레인을 불러야 합니다.
콤바인 가격 또한 웬만치 값비싸서 몇 해 전 벼농사를 짓는 동네 사람 몇몇이 낡은 콤바인을 공동구매해 서로 돌려가며 수확을 했습니다. 그런데 고장이 잦아 수리하는 데 돈과 품이 더 들어, 이웃동네에서 튼튼한 콤바인을 빌려와 타작을 하고 있습니다. 빌리는 삯도 만만치 않습니다.
결국 봄, 여름, 가을 내내 땀흘려 수확한 쌀을 팔아 비료값 농협에 주고, 콤바인 삯주고 나면 아버지가 손에 쥐는 것은 몇 푼 되지 않습니다. 쌀 팔기도 쉽지 않고요. 그냥 우리 가족들 1년 먹을 양식 정도 마련한 셈입니다. 그래도 고향땅에서 대대로 땅과 흙을 일구며 살아온 아버지는 고된 농삿일을 접을 수 없습니다.
강부자들처럼 일확천금 노리고 땅투기를 일삼거나 거짓으로 벼농사를 짓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벼타작을 모두 끝내고 술 한잔 하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문 소리를 듣고 달려나온 어린 조카에게 "정민아! 할아버지가 너 양식 해놨다!"고 말하시는 것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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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논뙈기의 벼를 콤바인이 베고 있다. ⓒ 이장연
아무튼 머리만 컸지 철없는 아들보다 효자 노릇하는 콤바인을 보고 있자니, 가뜩이나 쌀 개방이다 값싼 중국쌀이다 해서 쌀값은 계속 떨어지고 비료값은 계속 오르고 정부가 추곡수매마저 없애, "벼농사 짓는 게 빚농사 짓는 거다"란 아버지와 농부들의 한탄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전 끝난 '2008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파렴치한 쌀 직불금 부정수령자들 때문에, 피땀 흘려 키운 벼와 논을 트랙터로 갈아엎고 이제는 지쳐서 화 낼 기운조차 없는 농민들의 분노와 한숨이 깊어진 씁쓸한 추수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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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콤바인 운전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논 모양과 길을 간파하는 눈썰미와 요령이 필요하다. ⓒ 이장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 한 해동안 땀흘려 벼농사 짓느라 고생하신 농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당장 쌀 직불금 부정수령자 명단 공개하고, 반드시 사법처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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