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원봉사자들은 '티베트 중국화' 첨병?

[윈난르포 ④] 오지 학교 들어가 중국식 교육... 티베트 망명정부 긴장

등록 2008.10.30 11:16수정 2008.11.0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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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벙초등학교 3학년들을 가르치는 류이춘. 그는 스스로 티베트 오지마을에 온 자원봉사자 교사다. ⓒ 모종혁


중국 윈난(雲南)성 더친(德欽)현에 위치한 메이리(梅里)설산. 메이리설산은 티베트 불교의 8대 성산 중 하나로, 최고봉은 해발 6740m에 이른다. 티베트어로는 카와 카르포(喀瓦格博), '설산의 신'으로 불린다.

설산의 신답게 메이리설산의 정상은 지금까지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처녀봉이다.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등반대가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1991년 1월 메이리설산 등정에 도전했던 중일 연합등산대의 조난사고는 처절했다. 예기치 못한 눈사태로 등반 중이던 17명이 파묻혀 유명을 달리한 것.

조난사고시 수많은 중국 내외신 기자들은 중일 연합등산대의 전초기지가 있었던 위벙(雨崩)마을에 몰려들었다. 마을의 한 티베트 주민은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면서 "마을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외지 손님이 몰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헬리콥터를 타고 수많은 일본인 외교관과 기자가 마을을 찾았다"면서 "한동안 위벙에 중국 관리와 기자의 발걸음이 잦았던 것도 그때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비극적 사건을 통해 위벙마을은 전 세계 언론에 오르내렸다. 본래 위벙은 '경서'(經書)라는 뜻의 티베트어다. 마을 위에 있는 큰 암석이 마치 경서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위벙마을은 두 마을로 나뉜다. 해발 3200m에 있는 위(上) 위벙촌과 3050m에 있는 아래(下) 위벙촌이 그것이다. 두 마을의 거리는 약 3㎞로, 윗마을에서 아랫마을로 걸어 내려가는 데만 30여분이 걸린다.

위벙은 샹그릴라(中甸)에서 240㎞나 떨어져, 먼저 자동차로 8시간, 다시 말로 4시간을 타야 들어갈 수 있는 오지 중 오지다. 중국 정부는 1950년대에서야 지도 측량을 위해 위벙을 찾았던 인민해방군 병사를 통해 그 존재를 알았다.

한족과 달리 샹그릴라와 더친 일대 티베트인들에게 위벙은 예부터 유명한 마을이다. 적지 않은 라마불교의 고승이 위벙에서 태어나 출가한데다, 메이리설산을 찾는 티베트인이 꼭 들러야 하는 신령스런 폭포가 위벙에 있기 때문. 하지만 1990년대 초까지 위벙은 2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찾는 이가 별로 없는 조용한 티베트인 마을이었다.

그림과 같이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샹그릴라보다 더 샹그릴라다운 마을로 꼽히는 위벙. ⓒ 모종혁


위벙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체육수업. 간혹 유치부에 취학하지 동네 아이도 참여하곤 한다. ⓒ 모종혁


오지마을 티베트 아이들을 위해 무급 교사로 나서


위벙마을이 조난사고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외부 관광객의 발길이 늘어난 것은 금세기 초부터다. 티베트어로 '졸'(Jol)인 더친현에서도 오지인 위벙은 열악한 도로 사정과 불편한 교통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았다.

위벙에 관광객이 하나둘씩 늘어나게 된 데에는 샹그릴라보다 더 샹그릴라다운 마을이라는 입소문 때문이었다. 마을 뒤를 병풍처럼 둘러싼 설산, 두 명의 라마승이 지키고 있는 작은 라마사원, 티베트인이라면 꼭 찾아야 하는 신령스러운 폭포, 빙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고산 호수 등 위벙의 아름다움은 여행 마니아를 불러들였다.

류이춘(22·여)도 위벙마을의 명성에 매혹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위벙마을에서 유일한 위벙 카와 카르포 초등학교 교사인 류는 작년 8월 처음 위벙에 들어왔다. 류는 허베이(河北)성 바오딩(保定) 출신으로,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터였다. 위벙초등학교에서 단 한 명뿐인 교사지만, 류의 전공은 교직과 전혀 상관없는 언론학이다. 그가 위벙에 온 이유는 단 한 가지, 오지의 소수민족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

위벙마을에 갓 왔을 때 류이춘은 적지 않게 놀랐다. 인터넷에 나돈 소문과 달리 위벙은 더 이상 오지가 아니었다. 위벙마을 주민 수는 30여 가구, 150여 명으로 늘어나 있었고 학교 교사도 2층 규모로 신축 중이었다. 류는 "원래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티베트 토착민만 사는 마을에서 일하는 것"이라면서 "예상과 달리 쓰촨 출신 한족 두 가족과 더친에서 온 티베트인까지 타지 출신 주민이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위벙에 대한 환상은 깨졌지만, 교육 환경과 주거 조건은 열악했다. 1998년 개교한 위벙초등학교는 류이춘이 오기 전까지 고등교육을 받은 교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동안 마을 주민들이 돌아가며 교사를 맡아 아이들을 가르쳤다. 학생을 가르칠 능력도 경험도 없는 교사였기에 제대로 된 교육은 이뤄지지 않았다.

류는 "중국어는 고사하고 티베트어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주민이 맡은 교사였기에 학교는 이름만 내건 상태일 뿐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주민들은 외지 사회단체에서 학교 건물을 만들어주는 상황이었지만 교사를 어떻게 모셔올지 고민 중이었다"면서 "내가 자원해 들어오자 열렬히 환영받았다"고 말했다.

숙식하는 아이들 위해 잠자리와 식사까지 손수 챙겨

숙식을 하는 아이들을 위해 저녁식사를 마련하는 류 교사. 전기가 안 들어와 촛불을 켜서 음식을 만든다. ⓒ 모종혁

현재 위벙초등학교 학생 수는 11명. 초등학생은 3학년생 4명뿐이고 나머지는 유치부생 7명이다. 학생은 많지 않지만 교사가 단 한 명뿐이라 류이춘은 하루 종일 바쁘다. 1교시는 3학년생이 수업하고 유치부생은 자율학습을, 2교시는 유치부생이 배우고 3학년생은 자습한다. 문제는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유치부생들. 몇몇 장난기 많은 아이들이 있어, 류는 3학년 수업을 하면서도 수시로 유치부생 교실에 가서 통제해야 한다.

오후 6시 수업이 다 끝난 뒤에도 류이춘의 일과는 계속된다. 학교에 기숙하며 생활하는 아이들을 위해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윗마을에 있어 아랫마을에 사는 8명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산다. 집에서 학교에 등교하려면 1시간 가까이 산을 타고 올라와야 하기에 주말에만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

땔감을 주워오고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들고…. 류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학교에서 묵묵히 같은 일을 반복한다. 날마다 기숙하는 아이들을 위한 아침·점심 식사를 만드는 것도 류의 몫이다.

류이춘이 위벙초등학교에서 일한 지 1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월급을 받은 적은 없다. 더친현 정부는 위벙초등학교에 약간의 재정적 지원만 해줄 뿐 류에게 월급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학부모들도 간혹 쌀, 야채, 고기 등을 류 교사에게 전해줄 뿐 금전적 지원은 전무하다. 본래 중국의 농촌 학교는 교재만 학생 자비로 살 뿐 학비는 국가에서 지원하여 면제다.

류는 "외부 사회단체에서 보내주는 지원금과 관광객들이 주고 가는 헌금을 학교 운영비로 충당한다"면서 "아이들이 먹고 자는 데 쓸 운영자금이 항상 부족해 월급 챙기는 것은 엄두를 못 낸다"고 말했다.

류이춘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면서 "자원해서 왔기에 돈은 관심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단지 학교 운영자금이 넉넉하지 못해 아이들이 배불리 먹이지 못하고 잠자리도 열악해 아쉽다"고 토로했다. 작년 10월 완공된 신축 교사에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못한 것도 고민거리다. 류는 "더친현 정부가 발전기를 마련해 준다고 약속했는데 아직까지 감감 무소식"이라며 "쓸 촛불도 많지 않아 사위가 어두워지는 밤 8시가 아이들 취침시간"이라고 전했다.

양쯔강 상류의 한 티베트 마을을 찾아 자원봉사 활동을 벌이는 한 한족 여성. 한족 자원봉사자들은 교육 뿐만 아니라 농지개량, 환경보호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 쓰촨성녹색하류환경보호촉진회


중국식 교육하는 자원봉사자, 티베트 아이들을 지배한다

더친현의 한 오지마을에서 현지조사를 벌이고 있는 디시학교의 자원봉사자. ⓒ 디시자선학교

티베트 오지마을을 찾아 티베트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족 자원봉사자는 류이춘뿐만이 아니다. 더친현청에서 260㎞, 샹그릴라에서 90㎞ 떨어진 더친현 바룽(巴龍)촌에서는 광둥(廣東)성에서 온 한 부부에 의해 기숙학교가 설립 중이다. 내년 개교를 목표로 한 디시(迪喜)초등학교는 학교 설립이 불가능한 산골오지의 티베트 아이들을 데려와 완벽한 중국식 초등교육을 시킬 계획이다.

천옌(33·여)은 "준비된 자금 외에도 뜻있는 지인과 단체, 여행 마니아 등으로부터 이미 5만 위안(한화 약 980만원)의 성금이 답지했다"면서 "적지 않은 생활물품과 학용품도 보내져 오고 있다"고 밝혔다.

더친현 거둬뤄(各多罗)초등학교에서 일하는 양리(여)는 "물질적 보답은 없지만 티베트 아이들을 정상적인 중국 공민으로 교육시킨다는 사명감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양은 "생각 외로 학부모나 아이들이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강하다"면서 "그동안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아서인지 (교사인 본인을) 잘 따른다"고 말했다. 천옌도 "여러 오지마을도 돌아다니면서 설립되는 학교에 대한 설명회를 가지면 호응도가 높다"면서 "교육의 사각지대에서 배움의 갈증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중국 내지 출신 한족 자원봉사자가 티베트 어린이를 교육시키는 현실을 티베트 망명정부도 주목하고 있다. 과거 티베트 망명정부에서 일한 한 티베트 지식인은 "한족 자원봉사자의 교육방식은 철저한 중국식 교육으로 중국정부의 입장을 티베트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원래 티베트인은 라마승이 되어야만 티베트 문자를 읽고 쓰게 된다"면서 "현재처럼 티베트인의 문맹률이 높은 상황에서 중국어만 배우고 중국식 교육만 받게 된다는 미래의 티베트인은 중국인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된다"고 걱정했다.

실제로 위벙초등학교 아이들에게 한족 교사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일부 아이들은 휴일에도 집에 가지 않고 류이춘과 함께 지내려 한다. 3학년생인 치리용종은 "선생님은 언제나 새로운 지식과 체험을 가르치신다"면서 "중국어와 역사, 문화 등 부모님으로부터 배울 수 없었던 학문을 배우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티베트 청소년의 한족화를 막기 위해 티베트 망명정부는 인도와 네팔에 학교를 세워 나가고 있다. 이에 맞대응해 중국정부는 지난 7월 티베트인 공산당원과 국가공직자가 티베트 망명정부가 세운 학교에 자녀를 보낼 경우 엄벌에 처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우려할 점은 티베트 오지마을을 찾는 한족 자원봉사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티베트 아이들의 영혼을 지배하는 한족 자원봉사자들이야말로 티베트인을 중국화시키는 선봉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저녁식사를 지을 때 필요한 땔감을 주어 나르는 류이춘 교사. 그는 위벙마을 아이들이 위해 계속 무급 교사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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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샹그릴라 #위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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