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콘'은 오바마를 짝사랑한 게 아니다

[주장] 오바마 당선 요인의 하나는 보수층 끌어안기

등록 2008.11.06 10:41수정 2008.11.0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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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11월 4일 시카고의 그랜트 공원에서 열린 자신의 선거의 밤 집회에서 무대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 AP=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11월 4일 시카고의 그랜트 공원에서 열린 자신의 선거의 밤 집회에서 무대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 AP=연합뉴스

결국, 오바마가 승리했다. 곧 그의 승리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이후 전망과 관련한 글들이 쏟아질 것이다. 여기서는 그중 하나의 주제가 될 수 있는 '오바마콘' - 오바마(Obama)와 보수주의자(Conservative)의 합성어 - 의 등장을 둘러싼 문제를 짚어보려고 한다.

 

일부 보수층의 일방적 짝사랑에 불과했을까

 

1기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스콧 매클렐런은 "워싱턴을 바꿀 가장 큰 잠재력을 지닌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며 오바마 지지 의사를 밝혔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도 "시대의 변화를 이끌 인물"이라며 오바마를 지지했다. 보수 논객 크리스토퍼 버클리도 "내가 공화당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공화당이 나를 버렸다"며 오바마 지지 대열에 합류했다.

 

이 외에도 오바마 지지를 밝힌 보수 인사들은 많다.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손녀인 아이젠하워재단 이사장 수전, 레이건 행정부의 법무부 법률위원장을 지낸 더글러스 크믹, 이라크 전쟁을 '식은 죽 먹기(cakewalk)'라고 지지했던 네오콘의 핵심 인물 케네스 애덜먼, 네오콘 이론가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 등도 오바마 지지 의사를 밝혔다.

 

<워싱턴포스트>의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오바마는 보수적 유권자 가운데에서도 무려 22%의 지지를 얻었다. 민주당 후보로는 1980년 이후 가장 높은 지지율이라고 한다. 이들이 바로 '오바마콘'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는 전통적 공화당 지지층의 분열을 의미한다. 이들은 오바마가 매케인보다 공화당의 보수주의적 가치를 잘 구현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인종을 넘어선 실력 위주의 사회라는 점을 강조할 수 있는 큰 기회로 간주했다.

 

이처럼 오바마를 지지하는 공화당원과 보수주의자들이 결집하며 '오바마콘'을 형성한 것은 이번 미 대선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였다. 이에 대해 오바마의 전통적 지지층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것이 오바마에 대한 공화당의 공격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보호막이 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오바마 역시 열심히 변신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을 '오바마콘'의 오바마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이라고 할 순 없다. 미국 현역 상원의원 중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지녔던 오바마였으나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후 열심히 변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오바마 또한 오른쪽으로 관심을 많이 쏟았던 것이다. 그것이 바짝 따라붙는 매케인의 추격을 물리치기 위한 선거공학적 몸부림에서 나온 것이든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건.

 

그는 심지어 공화당의 전통적 표밭인 보수 기독교인들을 향해서도 팔을 뻗었다. 물론 세속 국가의 원칙을 지키겠다고 말하며 부시와 차별화를 강조하긴 했지만, 5억 달러짜리 종교단체 지원 정책은 종교와 거리두기를 바라는 그의 지지자들과 불화를 일으킬 수 있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자, 그렇다면 오바마의 최근 변신 목록 몇 가지만 살펴보자.

 

- 정부의 도청프로그램에 협력하는 통신회사들을 보호하는 해외정보감시법(FISA)에 찬성(그는 민주당 예비선거 과정에서 해외정보감시법안 개정에 반대하겠다고 약속했었다.)

- 세제를 단순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법인세율 인하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힘(이는 매케인과 유사하다.)

- 미 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에 참석해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전체 통제권을 유지해야 한다"며 이스라엘 지지 방침을 명확히 함

- "당선되면 한 해 최소 5억 달러를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공동체 지원 행사에 투입할 것"이라 밝혀 부시의 '종교 정치'를 사실상 확대 계승하겠다고 함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 행정부에 몸담았던 시사평론가 브루스 버틀렛마저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오바마의 공약에 나타난 타협적 면모에 이끌리고 있다며 찬사를 보낸 바 있다. 그가 새로운 인물인 동시에 충분히 타협적으로 변신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핵심 보수층이 아닌 보수주의자들이 그에 대한 지지를 밝히는 데 큰 거리낌은 없을 거라는 것이었다.

 

오바마의 승리가 확정된 지금, 앞으로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세세하게 예측하긴 어렵지만 탈피하기 어려운 테두리가 있다는 것만큼은 너무나 분명하다. 이미 변신을 하고 있었고 앞으로 더 큰 변신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변신을 단지 윤리적인 측면에서 비판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과서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정책 전환을 충분히 압박할 수 있는 헤게모니를 쥐고 이를 가능케 하는 사회적·정치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마저도 교과서적인 답이긴 하다. 당장 미국의 보수 양당 체제가 균열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그것도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답에 불과하지만.

 

'클린턴 3기'라면 금융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

 

오바마 후보는 올해 6월 미국 경제가 다시 불안한 조짐을 보이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었던 '경제란 말이야, 바보야!'를 내걸고 공화당 매케인 후보를 압박했다. 오바마는 부시 행정부의 경제 실정을 언급하며 매케인이 대통령이 되면 '부시 3기'를 맞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그럼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클린턴 3기'라고 부르는 건 무리일까? 오바마는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경제 문제를 강조하는 대목에서 클린턴 행정부를 추켜세웠다. 그러나 오바마가 간과한 것은 클린턴 재임 당시의 미국 경제 상황과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당시는 '신경제'로 불린 예외적인 경제 호황기였다. 지금은 아니다. 응급처방으로 금방 해결될 위기가 아니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1933년 글래스-스티겔 법을 제정해 은행과 투신 업무를 엄격하게 분리했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0년대에 이 법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고, 1999년 11월 12일에는 그램 리치 브릴리법이 제정되면서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이것이 현재의 금융 위기를 증폭시킨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번 금융 위기 사태를 맞아 오바마가 매케인보다 차분한 태도를 보여준 것 말고 사실 새로운 비전을 보여준 것은 없다. 변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무작정 나쁘다곤 할 수 없지만, 그것이 원인치료가 아닌 진통제에 불과할 때 환자의 고통은 더욱 연장될 뿐이다.

 

미국은 정말 새로운 비전과 능력을 지닌 오바마를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부시 3기의 등장을 막은 것에 불과할까. 답은 곧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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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http://blog.naver.com/aganipe)에도 올렸습니다.

2008.11.06 10:41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http://blog.naver.com/aganipe)에도 올렸습니다.
#오바마 #매케인 #클린턴 #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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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비교정치, 한국정치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에 적을 두고 있다. 에식스 대학(University of Essex, UK)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을>(박종철출판사, 2011) 저자이고,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평생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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