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에만 산다는 크낙새는 어디로 갔을까

광릉수목원의 비밀2-안개 낀 육림호 계곡

등록 2008.11.06 19:03수정 2008.11.0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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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림호 육림호 단풍 ⓒ 정정자


벌레 한 마리라도 다칠까봐 굽이굽이 깔아놓은 목재 데크로 된 숲 생태관찰로는 미로를 찾듯 아기자기한 길이어서 연인들끼리 걸으면 멋진 추억의 코스가 될 것이다.

그 숲 생태 관찰로를 벗어나면 소리봉 그림자가 잉어 떼를 키우는 육림호에 다다른다. 육림호 뒤쪽엔 개다래넝쿨 우거진 바위틈에 옛 고향 할머니가 쓰시던 표주박을 닮은 옹달샘이 서늘한 눈빛으로 맞아준다.


육림호가 꽁꽁 얼어붙은 겨울에도 돌돌거리며 입김을 뿜는 이 옹달샘은 광릉수목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다. 내 어린 시절 고향마을 뒷산에도 이런 옹달샘이 있어서 사철 마르지 않는 그 샘을 동네 사람들은 무지개 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어느 날 전깃불도 안 들어가던 그 산골에 버스가 들어가고, 가재를 잡고 보리수를 따던 무지개 샘 골짜기엔 골프장이 들어섰다. 그 후 고향마을은 독한 농약에 오염되어 샘물도 못 마시게 되었고 옹달샘은 먼 나라로 이민 간 그리운 친구처럼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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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 단풍 육림호 주변 단풍 ⓒ 정정자


그래서인지 광릉수목원에서 이 옹달샘을 처음 만났을 때 난 마치 잃었던 고향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갈 때마다 모래가 가라앉은 옹달샘을 청소하고 주변에 떨어진 낙엽을 걷어냈는데, 어느 날은 그 옹달샘에 개구리가 들어앉아 눈을 부릅뜨고 주인행세를 하고, 또 어느 날은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이 물은 살아 있다'고 온 몸으로 일러주곤 했다.

아, 그런데 광릉에만 산다는 천연기념물 크낙새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때 산림욕장으로 개방을 하던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때 놀라 달아났다는 크낙새는 안타깝게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흔한 칡넝쿨은 왜 보이지 않나 궁금했는데, 칡넝쿨은 다른 나무들을 휘감아 말라죽게 하므로 철저히 뽑아버린단다. 그걸 보면 우리 인간도 너무 독선적이고 욕심이 많으면 공동생활에서 외면당하고 배척당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단풍나무 중 가장 고운 건 역시 복자기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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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낙새 복제품 ⓒ 정정자


육림호 밑에는 우리 선조들의 구황식물이었다는 도토리나무 휴게광장이 있다. 날이 가물면 도토리는 햇살을 많이 받아 수정이 잘되므로 흉년엔 도토리가 많이 열린다고 한다. 내가 어릴 땐 해마다 흉년이 들어 어머니는 도토리묵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도 아깝다고 뜳뜨름한 도토리무거리로 떡을 쪄주셨다.

광릉 숲엔 또 천연기념물인 미선나무, 광릉요강꽃, 광릉물푸레, 광릉골무꽃이 있고, 서어나무에만 사는 장수하늘소와 백악기에 살았던 울레미소나무도 있지만, 그래도 가을의 여왕은 단풍나무들이고 그 중에도 가장 고운 건 복자기단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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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 해바라기 하는 곰 ⓒ 정정자


동물원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순수 토종 동물만 키우는데 그들이 서식하는 특성을 살려 한적한 위치에 배치했고, 서로의 울음소리로 스트레스 받지 않게 멀리감치 우리를 지어놓았다. 독수리, 수리부엉이, 원앙새, 꿩 등의 조류와 사슴, 노루, 멧돼지, 고라니, 늑대 등이 있다. 백두산 호랑이나 반달곰처럼 보호를 받는 귀족들도 있지만, 일광욕을 나왔다가 미움을 받는 뱀들이며, 멧돼지들도 있다. 그리고 숲에는 다람쥐, 새들, 수많은 곤충들과 미생물들까지 질서를 유지하며 풍요롭게 살아간다.

숲은 이 모든 가족들을 보호하는 아름다운 울타리이고 보물창고이며 특히 우리 인간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생명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4억년의 역사를 지닌 수목들 앞에서 고작 200만년밖에 안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절절히 깨닫게 해준다.

또한 아름답게 잘 가꾸어진 광릉수목원은 넉넉한 인품을 갖춘 성자처럼 늘 풍요로운 신비로 우리를 감싸주고 포용해주어 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하는 은밀한 삶의 교육장이 된다.

덧붙이는 글 | 실버넷뉴스에도 올랐음


덧붙이는 글 실버넷뉴스에도 올랐음
#괄릉 숲 2 #좋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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