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낭만을 되살린 대포항 저녁놀과 낙산 아침놀

<슬라이드>포구 바닷물에 잠긴 저녁노을과 바다 멀리 떠오르는 태양

등록 2008.11.11 08:43수정 2008.11.1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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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양양으로 가는 길에 설악산 한계령을 넘는 길에서 내려 주전골을 걸어 내려갔습니다. 주전골 입구인 오색약수터에 도착하니 어느 듯 오후 4시, 낙산으로 가기 전에 속초 대포항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생선회를 유난히 좋아하는 일행들의 요청 때문이었지요. 낙산보다는 아무래도 속초 대포항에서 먹어야 값이 한결 쌀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대포한 주차장에 도착하니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멀리 바라보이는 설악산 위로 떠오른 뭉게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설핏합니다. 그래도 망망한 바다 위의 하늘은 아직 푸르고 밝았습니다. 대포항은 확장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 같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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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항 바닷물에 비친 등대와 붉은 구름 ⓒ 이승철

대포항 바닷물에 비친 등대와 붉은 구름 ⓒ 이승철

포구 안 작업장의 선박 위에 실린 포클레인 삽날이 공중에 어정쩡하게 들려 있는 모습이 바닷물 속에 그림자로 잠겨 있는 것이 아주 특이한 풍경입니다. 대포항 뒷산 위 하늘에 떠있는 뭉게구름은 거북이 모양으로, 저녁햇살을 받아 발그스름한 빛깔이 여간 멋진 모습이 아니었지요.

 

모처럼 여행길에서 낭만에 젖은 노인들

 

"저길 봐요? 저 붉은 구름이 왜 바닷물 속에 잠겨 있지?"

 

70세가 넘은 노인이 바닷물 속을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물속에는 정말 붉은 구름이 잠겨 있었습니다. 바로 대포항 뒷산 위의 구름이었습니다. 노인도 모처럼의 즐거운 여행에 감성이 넘쳐나고 있었던 게지요.

 

날은 금방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태양이 설악산 너머로 숨어들고 있었지요. 그래도 아직 바닷물에 잠긴 구름과 포크레인 그림자는 잔잔한 잔물결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어, 우리가 언제 북한에 들어왔지? 저길 봐? 북한 횟집이잖아?"

 

이번에는 다른 노인이었습니다. 노인들의 농담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인들은 대포항 안쪽 건물 위에 불을 밝힌 '북한 횟집' 간판을 보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어둠이 내리 깔리는 동해 포구에서 노인들도 잊고 살았던 낭만을 되살리고 있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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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끝내고 대기중인 선박과 포크레인 ⓒ 이승철

작업을 끝내고 대기중인 선박과 포크레인 ⓒ 이승철

"음식 준비가 다 되었답니다. 들어갑시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우리들을 부르러 왔습니다. 음식점에 먼저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주차장에서 서성이던 일행들이 우르르 그를 따랐습니다. 대포한 횟집 골목은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고 한산한 편이었습니다.

 

"어! 이 사람들 싸움판 벌어지겠구먼."

 

무슨 말인가 하고 살펴보니 대포항 상인들이 걸어 놓은 펼침막이었습니다. 몇 곳에 걸려 있는 펼침막에는 대포항 확장에 상인들이 반대한다는 입장 표명이었습니다.

 

항구 확장에 따라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대포항 상인들

 

"왜 안 그러겠어요? 지금도 살기 어려운데 항구 확장했다고 저쪽으로 옮기라는데, 그것도 그냥 옮기라면 괜찮겠지만 많은 돈을 내라고 한다니까 그렇지요."

 

집 앞에 나와 호객하는 상인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심드렁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항구 확장에 따라 비좁은 이곳에서 넓은 곳으로 영업장을 옮기라고 할 것에 대비하여 미리 반대를 한다는 것이었지요.

 

"거참, 이상하네, 항구를 확장하여 넓은 곳으로 옮기라는데 왜 반대를 할까?"

 

그러나 일행들은 상인들의 입장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길옆 건물에 들어있는 상인들이야 당연히 좋아하지요. 그러나 길가 바다쪽 가건물에 들어있는 상인들은 많은 비용을 들여 옮겨야 되고, 또 경쟁도 그만큼 많아질 테니까 반대를 하는 거지요."

 

앞서 걷던 사람이 슬쩍 귀띔을 해줍니다. 그는 이 지역 주민인 것 같았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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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대포항 풍경과 바닷물에 비친 풍경 ⓒ 이승철

어스름 대포항 풍경과 바닷물에 비친 풍경 ⓒ 이승철

주차장에서 포구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은 너무 비좁고 복잡한 곳입니다. 길 바깥  쪽엔 건물들이 들어서 있지만 바다 쪽엔 가건물이 세워져 있고 그 안에서 가난한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항구가 확장 되면 당연히 바다쪽 가건물에 들어 있는 가난한 상인들이 밀려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상인들을 뒤로 하고 음식점으로 들어가 맛있는 회와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 버스를 다시 타고 낙산으로 달려가 예약이 되어 있던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밤에 열린 회의는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한 현안문제들이 많아 새벽 1시가 지난 후에 끝났습니다. 잠자리에 든 시간은 얼추 2시경이었을 겁니다. 긴 여행에 산길을 많이 걸었는데 늦게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곧장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일어나요? 일출 보러 나가지 않을 거예요?"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같은 방에서 잠들었던 일행이었습니다. 벌떡 일어나 바다쪽 베란다에 나가보았지만 바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를 메고 바닷가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바닷가로 나서자 저만큼 앞에 노인들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대포항 주차장에서 모처럼 낭만에 젖었던 바로 그 노인들이었습니다. 노인들도 일출을 보기 위해 바닷가로 나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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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 바닷가의 젊은이들 ⓒ 이승철

해뜨는 바닷가의 젊은이들 ⓒ 이승철

백사장엔 한 떼의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곳에 모여 맨손체조로 몸을 푼 다음 바다쪽을 향해 다소곳이 앉아서 태양이 솟아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새벽바람은 싸늘했습니다.

 

물가로 내려가자 저 앞쪽에 네 명의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싸늘한 날씨도 아랑곳없이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 물장난을 하기도 하고 펄쩍펄쩍 뛰기도 하는 것이 초등학생 어린이들처럼 보였습니다.

 

해 뜨는 바닷가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젊은이들

 

해는 아직 솟아오르지 않았지만 날은 점점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어슴푸레 바라보이던 설악산의 울산바위가 흰 구름에 덮여있는 풍경이 아련하게 다가왔지요. 모래사장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청년들은 변함없는 자세 그대로였습니다.

 

"얏호! 태양이다, 태양!"

 

물가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뒤돌아보니 바닷물을 뚫고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양은 얼굴을 모두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수평선에 검은 구름이 띠처럼 내려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솟아오르는 태양은 아래쪽은 바닷물에 잠겨 있고 위쪽은 구름에 가려 가운데 부분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대신 수평선 위로 낮은 산맥처럼 띠를 두르고 있던 구름 위에 붉은 선이 그려졌습니다. 구름 위로 비치는 태양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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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과 구름사이에 떠오른 태양 ⓒ 이승철

바닷물과 구름사이에 떠오른 태양 ⓒ 이승철

"역시 동해일출은 뭐가 달라도 달라, 기막히게 멋진 풍경이구먼."

 

동행했던 또래의 일행이 그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바닷가의 아이들은 솟아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두 손을 뻗치기도 하고 뛰어오르기도 하다가 우리들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 저희들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가까이 다가온 아이들은 아이들이 아니라 청년들이었습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들은 남녀 각 2명씩의 커플이었지요. 내가 카메라를 건네받자 그들이 태양이 떠오르는 바다를 등지고 자세를 잡았습니다.

 

"예쁘게 찍어주세요?" "멋지게 찍어주세요?"

 

여성들은 예쁘게 찍어 달래고 남성들은 멋지게 찍어 달랩니다.

 

"자! 예쁘게, 멋지게 웃어보세요?"

 

내가 그들에게 웃으라고 주문하자 그들 네 사람이 활짝 웃었습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지요, 그렇게 몇 컷을 찍고 사진을 보여주자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정말 유치원생들 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이었습니다.

 

"야호! 진짜 태양이 떠오르네, 다시 한 번 더 찍어주세요?"

 

돌아서던 그들이 다시 한 번 사진을 더 찍어달라고 합니다. 마침 그때 수평선 위에 띠처럼 낮게 드리워져 있는 구름 속에 숨어있던 태양이 구름 밖으로 서서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 태양을 향하여 갈매기 한 마리가 기다렸다는 듯 날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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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에 붉은 고리를 끌며 떠오르는 태양 ⓒ 이승철

바닷물에 붉은 고리를 끌며 떠오르는 태양 ⓒ 이승철

한 번 구름 밖으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태양은 순식간에 얼굴 모두를 드러냈습니다. 출렁이는 바닷물에 붉은 그림자를 끌며 태양은 금방 밝은 빛으로 올라왔습니다. 낙산 바닷가의 풍경이 밝은 햇살을 받아 더욱 선명한 모습으로 다가와 있었습니다.

 

"멋진 사진 많이 찍었어요?"

 

저 만큼 뒤쪽에서 일출을 기다렸던 노인들 두 사람이 다가오며 말했습니다. 모래사장에 다소곳이 앉아 일출을 기다리고 있던 청년들도 어느새 일어나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닷물을 뚫고 불끈 솟아오른 붉은 태양과 함께 새로운 하루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승철 #저녁놀 #대포항 #낙산 #아침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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