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오감 되살려주는 자연을 바라보세요

등록 2008.11.11 14:22수정 2008.11.1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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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의 단풍 나무 이파리만 단풍이 드는 것은 아니다. ⓒ 김민수

▲ 잔디의 단풍 나무 이파리만 단풍이 드는 것은 아니다. ⓒ 김민수

 

가을이 깊은 날, 숲으로 난 오솔길을 걷다 보면 단풍에 눈이 즐겁다. 그것만으로도 축복인데, 밟힌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소리와 부는 바람에 자기들끼리 부디 끼며 내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어디 그뿐인가! 흙으로 돌아가기 직전의 나뭇잎의 향기는 아직도 후각이 건재함을 알려 주고, 단풍 곱게 든 낙엽을 하나 집어들면 사계(四季)의 삶이 고스란히 손끝으로 전해진다. 앙상한 가지에 남아있는 가을 열매를 하나 따 입에 넣으면 온몸에 쌉싸래하게 퍼지는 그들의 삶, 가을 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오감(五感)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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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풀의 단풍 뒤늦게 싹을 낸 오이풀도 단풍이 들었다. ⓒ 김민수

▲ 오이풀의 단풍 뒤늦게 싹을 낸 오이풀도 단풍이 들었다. ⓒ 김민수

 

입동이 지났으니 가을 숲을 걷는 기쁨도 그리 오래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 오래 남지 않은 가을, 그 끝자락을 지키는 것 중에는 예초기에 밑동까지 잘려버린 생명이 다시금 내놓은 어린 새싹들이 많다. 얼마나 추웠을까? 주어진 제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고 자신의 때를 마치는 것 같아 숙연해지기까지 하지만, 그들을 보면서 생명의 힘을 보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오이풀은 쇠뜨기와 함께 비움의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대표적인 풀이다. 여름날 혹은 가을날 이른 아침에 그들을 만나면 몸에서 배출한 물방울들이 여느 이슬방울보다도 신비스럽게 달렸다. 삼라만상을 담은 맑은 물방울 속에서 차마 비우지 못해 탁해진 내 속내를 보며 아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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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의 단풍 고난의 흔적이 들어있는 나뭇잎 ⓒ 김민수

▲ 신갈나무의 단풍 고난의 흔적이 들어있는 나뭇잎 ⓒ 김민수

 

긴 겨울 보내고 맞이하는 봄이면 스프링처럼 튀어오르는 새싹들과 봄꽃으로 행복하다. 여름에는 비었던 숲과 들판이 오밀조밀하게 채워짐으로 행복하고, 갖가지 곤충들의 부산한 움직임 덕분에 숲의 생명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가을에는 그간의 수고들이 열매로 익어감에 행복하고, 겨울을 맞이하기 위한 그들의 몸부림으로 숙연해진다. 쉼의 계절인 겨울,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듯 서 있는 자연 덕분에 행복하다. 어느 한 계절, 어느 한 풍경 허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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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다른 고난의 흔적들 고난이 있어 더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것이리라. ⓒ 김민수

▲ 저마다 다른 고난의 흔적들 고난이 있어 더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것이리라. ⓒ 김민수

 

자연은 내 삶의 해우소(解憂所), 내 삶의 비늘을 떨어내는 곳이다. 그곳에 있으면,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경험은 세상사에 찌들어 고갈된 내 영혼을 치유해 준다.

 

자연이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폭력적인 삶을 살았을까? 나와 이웃에게 폭력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이 사회가 세뇌시킨 경쟁의 논리를 아무런 의심 없이, 고민 없이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단풍 빛이 고운 이파리를 가만 들여다보면 상처입은 것들도 많다. 고운 단풍 빛에 상처입은 자리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 누군가를 위해 내어준 그곳에는 수많은 길이 드러나 있다. 나와 너를 이어주는 길, 자신의 몸을 생명의 밥으로 그 누군가에게 내어준 흔적을 본다. 그렇게 내어주고도 이렇게 넉넉한 상처입은 단풍은 말없이 나를 가르치는 위대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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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흔적에 남은 잎맥들 저 작은 잎맥의 흔적들은 모두 길이다. ⓒ 김민수

▲ 고난의 흔적에 남은 잎맥들 저 작은 잎맥의 흔적들은 모두 길이다. ⓒ 김민수

 

눈은 솔직해서 보려고 하는 것만 보인다. 그리고 이내 보이는 것만 보인다. 그래서 ‘무엇을 보는가?’ 하는 문제는 참으로 중요하다. 보지 않아도 될 것이 너무도 많은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도적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보려고 노력해야 하고, 훈련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자연 보기’ 훈련이다.

 

자연의 속살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우리네 삶이 고스란히 들어 있음을 본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다운 삶인지 보인다. 보이는 대로 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내 삶의 경구가 되는 것이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온다. 가는 계절도 오는 계절도 소중하게 다가오는 날이다. 이제 잠시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자연을 바라봐야겠다. 자판을 두드리던 손가락으로는 떨어진 낙엽 하나 집어들고, 자판 소리 대신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를 들어봐야겠다. 커피 향 대신 바스락거리며 부서진 낙엽의 향기를 맡아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11.11 14:22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단풍 #오감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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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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