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다 커버린 '국민여동생'을 해방시키자

<바람의 화원>서 '여동생' 아닌 배우로 거듭난 문근영

등록 2008.11.17 15:12수정 2008.11.1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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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문근영을 처음 본 건 지난 2007년 봄, 성균관대 교정에서였다. 이미 학교 곳곳에서 문근영을 봤다는 사람이 많았던 탓에 '나도 곧 볼 수 있겠지' 기대하며 복학했을 때였다. 나보다 먼저 문근영을 본 친구들은 "예쁜 것은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하더라"고 전했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국민여동생'의 이미지, 그대로 말이다.

'국민여동생 문근영'은 나이를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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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린신부>에 출연했던 문근영. 문근영은 이 영화 출연으로 '국민 여동생'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 어린신부

그런데 문근영을 직접 본 나는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모습' 일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그녀는 당시 유행했던 물광화장을 하고 미니스커트에 무릎양말을 신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습이 또래 20대 여대생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음에도, 왠지 내가 알던 '문근영'은 아닌 것만 같았다. 

아마, 문근영의 스무 살 이후의  '이미지 변신'을 본 사람들의 심정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교복을 입고 '난 아직 사랑을 몰라'를 부르던 앳된 소녀는 CF속에서 짙은 화장을 하고 섹시댄스를 추었고, 화보 속에서 담배를 피기도 하였으며, 시상식에서 가슴이 깊이 파인 드레스를 입기도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마냥 귀엽고 착한 '국민여동생 문근영'을 떠올리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문근영이 '성인 연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간 문근영'은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 갔지만 '국민여동생 문근영'은 나이를 먹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여동생' 이미지를 언제까지고 고수할 수는 없었다. '국민여동생'은 식상하고, '이미지 변신'은 어색했다. 스무 살 이후 문근영은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근영이 이렇게 연기를 잘 했었나


내가 다시 문근영을 주목하게 된 것은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남장여자' 신윤복 역할을 맡은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목소리부터 몸짓, 표정 하나하나가 어찌나 남자 같은지…. 한 장면 한 장면 볼 때마다 '문근영이 이렇게 연기를 잘 했었나'하며 감탄했다. 

이 드라마에서 조선시대 천재화가 신윤복은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로서 삶을 살아야 했던 인물로 등장한다. 문근영은 극중 신윤복을 '남장여자'가 아닌 그냥 '남자'로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드라마를 볼 때도 '여자배우의 남자연기'라기보다는 '미소년의 연기'를 보는 것 같았다.

특히 '러브라인'의 한 축을 이루는 기생 정향과 함께 있을 때면 화면 가득 남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애절함이 묻어난다. 그래서일까. <바람의 화원> 시청자게시판에는 김홍도-신윤복 커플보다 오히려 신윤복-정향 커플을 지지하는 글들이 더 많이 올라오고 있다.       

1999년에 데뷔한 '10년차 배우' 문근영이 연기를 잘한다는 게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국민여동생'이 되기 전에 찍었던 드라마 <가을동화>, <명성황후>와 같은 작품에서 이미 그녀는 '연기 잘하는 아역배우'로 주목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 <어린신부>부터는 작품성에 대한 논란은 있었지만, 그녀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문근영은 늘 연기 외적인 것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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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한 장면. ⓒ SBS


대학 입학도 그 중 하나였다. '안티 없는 국민여동생' 문근영에게 안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계열에 수시합격을 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당시 문근영은 '자기추천자 전형'으로 수시에 합격했는데 이로 인해 많은 수험생들의 미움을 받았다. 대학 입학 이후로는 앞서 말했듯이 계속해서 '이미지 변신'을 꾀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전 국민에게 사랑받던 '여동생'은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녀가 <바람의 화원>을 차기작으로 선택한 것은 조금 의외였다. 20살 이후 그녀가 보여주었던 섹시이미지를 볼 때, 이제부터는 제 나이에 맞는 성인연기를 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근영은 다시  너무도 앳된 얼굴의 '어린 화공' 신윤복이 되었다. 이제는 '국민남동생'이 된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통해 '국민여동생'이라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존재했던 문근영은 '배우 문근영'으로 다시 태어났다. 연기도 연기지만, 무엇보다도 <바람의 화원>에서는 그녀의 연기에 대한 욕심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문근영이 촬영을 하다 코뼈가 부러졌을 때 방영되었던 스페셜방송을 보면, 문근영은 그야말로 몸을 사리지 않고 연기한다. 그러고도 만족하지 못하면 "한 번만 다시 하면 안 될까요?"라고 말한다. 이러한 열정 덕분에 남자도, 여자도 될 수 없었던 천재화가 신윤복의 삶은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다.  

'기부천사' 닉네임 '배우 문근영' 옭아매지 않았으면

최근 문근영은 또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지난 2003년부터 6년간 8억 5천만 원을 기부한 익명의 20대 여자연예인이 바로 문근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각 언론은 문근영에게 '기부천사'라며 찬사를 보냈다. 이와 함께 이른바 '통혁당 사건'으로 30년 넘게 옥고를 치른 '비전향 장기수'였던 외할아버지를 둔 문근영의 가족사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어린 나이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기부를 해온 문근영의 선행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실종된 요즘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나는 '국민여동생'에 이은 '기부천사'라는 닉네임이 또 다시 문근영을 옭아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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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으로 열연하고 있는 배우 문근영. ⓒ sbs

그동안 사람들이 문근영의 '이미지 변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국민여동생'이라는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문근영을 규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드라마·영화 속에서도, 밖에서도 '여동생'이어야만 했고, 이와 충돌하는 이미지를 대중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거부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 '기부천사'라는 닉네임이 더해져, 계속해서 문근영을 '착한 여동생' 이미지로만 생각하게 될까 우려스럽다. 물론 그녀의 선행은 박수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문근영은 더 이상 '바르게 자란 여동생'이 아닌 다양한 삶을 연기하는 '배우'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섹시댄스를 출 수도 있고, 담배를 필 수도 있고, 노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을 연기하는 문근영은 여전히 또래 여자배우들보다 어려 보인다. 그녀가 성인연기를 한다면 어떨지, 아직은 상상이 안 가기도 한다. 여러 해 동안 그녀를 규정해왔던 '국민여동생'의 이미지는 이토록 견고하다.

나는 이제 그만, 22살의 문근영을 '국민여동생'에서 해방시켜 주었으면 한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여동생'을 인정하고, 하나의 '아이콘'이 아닌 한 사람의 '배우'로서 문근영을 보았으면 한다.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주었던 '이미지'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은 결국 문근영 자신의 몫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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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 #바람의 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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