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단 협약 설명회 열었지만... '눈치'보는 건설사들

"'부실기업' 스스로 인정하는 꼴" 가입 망설여

등록 2008.11.19 09:32수정 2008.11.1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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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전국은행연합회 주관으로 열린 건설사 금융지원 프로그램 설명회에 참석한 건설업계 관계자들이 굳은 표정으로 설명회를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처음엔 은행들이 서로 자기 돈 쓰라며 접대하고 난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우리가 매달려야 하는 판이다. 은행들은 완전히 고자세다."

18일 오후 '건설사 금융지원 프로그램 설명회'가 열린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 4층 대강당. A 건설사 재무팀 이아무개 부장은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불편한 표정으로 강당 뒷편 벽에 기대어섰다.

행사를 주관한 은행연합회측에서 준비한 300여개의 좌석은 설명회 시작 30분 전에 이미 업계 관계자들로 가득 찼다. 이 부장처럼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 있는 관계자들도 200여 명이 넘었다. 그만큼 이날 설명회에 대한 건설사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러나 그들의 의혹에 찬 눈빛 속에선 막연한 불안감을 읽을 수 있었다.

"건설사들이 불안한 마음에 가입을 망설이고 있다"

대주단은 은행을 포함해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의 모임이다. 대주단은 건설사들이 금융지원 프로그램에 가입하면 해당 건설사의 채무를 1년간 유예해 주고 추가 자금지원도 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당초 대주단은 시공능력 순위 100대 건설업체를 대상으로 대주단 협약 가입을 유도한 뒤 이후에 100위권 밖의 업체들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신청한 건설사가 1곳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이미 지난 5월에 가입한 업체여서 최근에는 한 군데도 신청한 곳이 없는 상황이다. 결국 대주단은 최근 협약 자격 제한 및 가입 기한을 없앴다.

건설사들은 대주단 협약에 가입하면 스스로 '부실기업'임을 인정하거나, 그런 기업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구조조정이나 경영권 간섭 등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황인기 일신건영 재무팀장은 "어제까지만 해도 사실상 부실징후가 있는 회사가 가입 대상으로 언론에 보도됐는데, 그런 보도를 보고 가입할 회사가 어디 있겠느냐"며 "대주단 가입이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 등과 맞물려 나오고 있어 건설사들이 불안한 마음에 가입을 망설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건설사가 대주단에 가입하겠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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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들은 대주단 협약에 가입하면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아닌지, 경영권 간섭 등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 하고 있다. ⓒ 유성호


대주단 협약에 가입 신청을 해도 주채권은행의 심사에서 가입이 거절되면 사실상 '퇴출' 결정과 다름없다는 것이 건설사들의 인식이다.

이미 일부 언론에서는 건설사에 자금을 대출해 준 채권 은행들이 국내 100대 건설사 중 7곳을 자금 지원이 힘든 C등급 이하로 분류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상황이다. 협약에 들면 1년 동안 채무상환이 유예되고 신규 대출도 받지만 자금난이 심한 업체가 협약에 가입하지 못하면 워크아웃으로 가거나(C등급) 어음 만기 연장이 안 돼 시장에서 퇴출될(D등급) 수도 있다.

하지만 장덕생 은행연합회 부장은 "대주단 협약은 건설사를 살리기 위한 협약이지, 건설사를 죽이기 위한 협약이 아니다"며 "기한에 관계없이 언제든 가입할 수 있다"고 거듭 건설사들의 협약 가입을 독려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건설사들의 협약 가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주채권 은행들의 경영권 간섭이나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장덕생 부장이 "은행은 돈을 빌려주면 최소한 어떤 명목으로 빌려가는지, 제대로 사용했는지 정도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그런 정도의 확인을 하는 것이지 경영권 간섭 등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말로는 경영권 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결국 자구책을 내놔라, 서류를 내놓으라 하면서 경영권을 침해할 것"이라며 "대주단 가입 전에 구체적으로 경영권 통제의 한계를 명확히 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설명회가 끝난 뒤에도 업계 관계자들의 우려는 사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날 설명회가 대주단 가입에 대한 우려와 불신을 더욱 키웠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 건설사 재무 담당자는 "은형연합회측의 설명을 들었지만, 의문이 깨끗이 해소가 되지는 않았다"며 "아직 대다수 업체는 눈치보기를 할 것 같다. 잘못하면 퇴출된다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어떤 업체가 섣불리 가입하겠느냐"고 말했다. "업체 입장에서는 대주단에 가입해도 걱정이고 안해도 걱정인데 설명회에서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이미 협약에 가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협약에 가입을 해야 할 정도라면 이미 정상기업이라고 할 수 없고, 또 정상기업이라면 굳이 협약에 가입 할 필요없이 채권은행과 맨투맨으로 채무유예 문제를 논의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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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건설업체들이 경영권 간섭을 우려해 대주단 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것 자체가 도덕적 해이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유성호


그러나 일각에서는 건설업체들이 주채권은행의 경영권 간섭을 우려해 대주단 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것 자체가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건설업체의 자금난은 사실상 건설업체 스스로의 방만경영 등에 원인이 있는데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업체가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는다면 부분적인 경영간섭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편, 유지창 은행연합회장은 이날 설명회에 앞서 은행회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건설사들이 다음 주에는 대주단의 취지를 이해하고 가입 신청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회사 상태가 많이 나쁘지 않다면 불안해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대주단 협약 #건설사 #은행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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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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