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네 글자에 3조원 쓴 YS... MB는?

[데스크칼럼] 김정일-오바마 만나면 한국은 '왕따'

등록 2008.11.19 11:08수정 2008.11.1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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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사진은 지난 2007년 3월 이명박 에세이집 출판기념회.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사진은 지난 2007년 3월 이명박 에세이집 출판기념회. ⓒ 오마이뉴스 이종호

 

1994년 10월 21일 북한과 미국 사이에 체결된 제네바 합의문 3조3항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 기본합의문에 의하여 대화를 도모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데 따라 북남대화를 진행할 것이다." (The DPRK will engage in North-South dialogue, as this Agreed Framework will help create an atmosphere that promotes such dialogue.)

 

남북한의 모든 합의문이나 언론 발표문은 똑같은 한글이지만, 남한판과 북한판이 따로 있다. 둘의 차이는? 일단 양쪽에서 쓰는 단어가 약간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남북장관급회담'이라고 하지만 북쪽은 '북남상급회담'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남한판은 남북한을 나열할 때 항상 남한이 먼저 다음에 북한이 나중에 나오지만, 북한판은 그 반대라는 점이다.

 

남한판은 '남북 관계', 북한판은 '북남 관계' 이런 식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에 굵은 자취를 남긴 제네바 합의문의 한글본은 오직 북한판만 존재한다. 제네바 합의 당시 한국은 끼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과 미국의 양자 협정에 어떻게 해서 제 3자인 남한이 언급되게 되었을까? 더구나 그 내용이 제네바 합의가 잘 이행되면 이에 따라 '북남 대화'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게 됐을까? 남북한 사이에 해야 할 일을 어떻게 해서 북미가 약속했을까?

 

1994년 6월 1차 북핵위기는 파국으로 치달았고 빌 클린턴 행정부는 북폭을 결심한다. 미국은 한국에 살고 있던 자국민을 한반도 밖으로 빼내는 계획을 세웠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남한에서는 쌀·라면 사재기가 벌어졌다.

 

그러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6월 15~18일 평양에 가서 김일성 주석과 담판을 벌임으로써 전쟁 위기를 넘긴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정상 회담까지 잡았다. 

 

YS는 역사상 최초 남북 정상회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해 7월 8일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한다. 당시 미국은 북미 협상을 진행하던 로버트 갈루치를 제네바의 북한 대표부에 보내 조문했다.

 

그러나 남한은 정반대였다. YS는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렸고 당시 이부영 민주당 의원이 국회 외무통일위에서 조문단 파견 용의를 정부에 물었다가 보수세력이 문제 삼으면서 마녀사냥을 당했다.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발언'까지 겹쳐 남한은 공안정국으로 치달았고 정상회담까지 약속했던 남북 관계는 파탄났다.

 

미국에 따돌림 당한 YS "무슨 동맹이 이런 게 있노"

 

그러나 북미는 제네바에서 계속 협상을 진행했고 이른바 '제네바 합의문' 작성까지 갔다. 북미 협상 와중에 한국은 '왕따'를 당했다. YS는 클린턴을 욕했다.

 

로널드 레이건부터 부시 대통령까지 한국어 통역을 맡았던 통 김(한국명 김동현)씨가 지난 2005년 6월 22일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http://julie.pe.kr/zbxe/95)에는 당시 상황이 나온다.

 

정작 YS가 클린턴에게 화낸 것은 다른 상황에서였다. 94년 10월 북·미 간에 제네바합의(북한이 핵개발을 동결하고 그 대가로 경수로 2기를 지어준다는 게 골자)가 이뤄졌을 때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 명의의 친서를 북한에 써줬다. 북한이 합의를 위반하지 않으면 경수로 사업을 끝까지 완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 사실을 한국에 알려주지 않았다. 북한도 "우린 비밀을 잘 지킵네다"라며 입을 다물었다. 나중에 따돌림 당한 걸 알게 된 YS는 클린턴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무슨 동맹이 이런 게 있노"라면서 화를 냈다. 당시 한국 측 통역이 당황해 YS의 말을 장황하게 다른 말로 바꿔 설명하던 기억이 난다.

 

더 문제는 왕따를 당했던 한국이 경수로 건설 비용 46억 달러의 70%(32억 달러)를 대기로 했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는데 한국은 못 낸다고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경수로 비용을 대는 대신 제네바 합의문에 '남북대화 촉구' 내용을 간신히 집어넣었다.

 

이야기가 옆길로 새지만 YS의 대북 정책 좌충우돌은 가관이었다.

 

YS는 6월 초까지만 해도 유엔의 대북 제재를 찬성하면서 전쟁 불사를 외치더니(당시 북한은 유엔의 대북제재는 곧 선전포고라고 규정했다), 6월 들어 정작 클린턴이 전쟁하려고 하니 '전쟁은 안 된다'고 막았다.

 

카터가 방북해서 중재안을 내놓자 김일성과 정상회담 한다고 하더니, 그가 사망하자 조문을 막고 공안정국을 조성해 북한의 심기를 박박 긁었다. 그러더니 제네바 합의에는 32억 달러를 대는 조건으로 '남북대화' 문구를 어거지로 넣었다.

 

결과적으로 YS는 '남북대화' 딱 네 글자에 32억 달러를 지불한 셈이 됐다. YS는 '퍼주기 본좌'라 할 만하다. 14년 전 일을 끄집어 낸 것은 요즘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행보를 보니 YS 꼴 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어서다.

 

경수로 비용 100% 부담하게 될 수도

 

이 대통령은 지난 17일 미국 CNN과 한 인터뷰에서 '북핵해결에 도움이 된다면'이라는 전제를 깔고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도 "북한 핵을 포기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미국 대통령(버락 오바마 당선인)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에서 미국이 직접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면 한국이 소외될 것이라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을 말하는데 이는 폐쇄적인 국내의 정치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현재의 한·미 관계를 깊게 이해한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나 MB 말은 개인적인 희망 사항에 불과할 수 있다.

 

한미 공조를 말하는데 역대로 미국 민주당 정권과 한국의 한나라당 정권 및 그 전신들은 사이가 좋은 적이 없다. 1970년대 박정희와 지미 카터, 1990년대 YS와 빌 클린턴은 앙숙이었다. 이런 갈등은 주로 주한미군과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더구나 오바마와 이명박의 정치 성향은 전혀 다르다. 대북 정책도 마찬가지다. 레이건 이래 30년간 지속된 미국의 신자유주의와 네오콘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오바마와 미국 네오콘의 '짝퉁'에 불과한 뉴라이트에 기대 정권을 잡은 이명박의 궁합이 맞을 리가 없다.

 

또한 미국은 대북 협상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제대로 부담한 적이 없다. 틈만 나면 한국에 떠넘겼다. 1994년 제네바 합의가 좋은 사례다.

 

더욱이 김정일과 오바마 만남의 전제 조건을 '북한 핵을 포기시키는데'라고 단 것부터 자승자박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이 진짜로 핵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곧바로 경수로를 받아야하겠다는 말이다. 대북 안전보장, 북미 수교 등은 기본이다.

 

2005년 9.19 합의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여타 당사국들은 이에 대한 존중을 표명하였고, 적절한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관한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데 동의하였다.

 

여기서 적절한 시기란 바로 북한이 진짜로 핵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어느 정도 구체적인 계획을 잡을 때를 말한다.

 

이때 가서 경수로 비용은 누가 댈 것인가? 1994년에는 한국이 70% 부담했지만 앞으로 경수로 얘기가 나오면 100% '독박'을 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일과 오바마가 만나서 협상을 진행하는데 그들끼리 나누는 밀담이 곧 한국에 들어올 것이라는 얘기는 순진한 발상이다. YS의 꼴을 보고도 MB는 똑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개성공단 1주일 폐쇄는 곧 영원한 폐쇄 의미

 

한마디 더하면 반북 단체들의 삐라 살포와 관련한 일부 한나라당 의원과 통일부의 태도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은 "햇볕정책보다 삐라가 더 효과적인 것 같다"(http://www.cbs.co.kr/Nocut/Show.asp?IDX=972981)고 말했다. 반북 단체들이 자제 요청을 거부하자 통일부는 고압가스안전관리법을 적용할까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전 정권 때도 반북 단체들은 삐라를 살포했다. 북한은 이를 알고도 아무 소리 안 했다. 이제 와서 북한이 삐라 문제를 들고나오는 것은 개성공단 폐쇄 등 남북 관계 악화의 핑곗거리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북한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명분을 만든다. 설사 그 명분이 우리 눈에는 엉터리로 보일지라도…. 그런 차원에서 삐라를 물고늘어지는데 홍정욱 의원은 거꾸로 알고 있다.

 

삐라를 고압가스안전관리법으로 단속할까 고민하는 통일부의 모습도 한심하다. 이명박 정부가 대북 정책을 바꾸면 삐라 수억장이 날아가도 북한으로부터 별다른 불평 나오지 않을 것이다. 정공법을 놔두고 엉뚱하게 삐라를 어떻게 단속할까 고민하는 것은 잘못됐다. 현재와 같은 MB의 대북정책이라면 설사 삐라를 엄격하게 단속한다고 해도 북한은 다른 핑계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러저리 나도는 관측을 들어보면 이명박 정부 핵심들은 겉으로야 개성공단 유지 운운하지만 속내는 한 1~2년 정도 문 닫았다가 재가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들은 개성공단을 한 1~2년 문 닫으면 연간 2500만 달러의 현금이 북한이 못 들어가기 때문에 김정일의 버릇이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시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김정일을 악의적으로 무시했다가 결국 북한의 핵실험까지 갔다. 이후 부시는 대북 정책을 확 바꿔 '미국판 햇볕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부시는 북한을 길들이려 했지만 결국 순화된 것은 김정일이 아니라 부시였다.

 

개성공단 잠시 문 닫았다가 다시 재가동하겠다는 생각이라면 번짓수부터 잘못 짚었다.

 

만약 개성공단이 1~2년 폐쇄됐다가 재가동된다면, 그리고 그때 남북 관계가 풀렸다고 한 들 그 어떤 기업이 다시 들어가려 할 것인가? 대통령이 바뀌면 또 언제 폐쇄될지 모르는데…. 개성공단은 단 1주일만 폐쇄돼도 사실상 완전히 문을 닫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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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11:08 ⓒ 2008 OhmyNews
#김정일 #오바마 #개성공단 #김영삼 #북핵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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