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이거 혹시 위조지폐 아니죠?"

아내에게 생일선물로 100달러 지폐를 선물했습니다

등록 2008.11.24 10:09수정 2008.11.2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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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시미와 쇠고기특수부위를 맛있게 먹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정담을 나눈 뒤 25일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한 그릇에 5천원인 갈비탕 국물의 고소한 맛도 일품이더라고요. ⓒ 조종안

육사시미와 쇠고기특수부위를 맛있게 먹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정담을 나눈 뒤 25일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한 그릇에 5천원인 갈비탕 국물의 고소한 맛도 일품이더라고요. ⓒ 조종안

 

지난 토요일(22일)은 아내의 쉰여덟 번째 생일이었는데요. 형님(시숙)이 한우 전문점에서 차려준 생일상을 받고 좋아하는 로스구이를 실컷 먹으며 시동생 부부에게도 축하를 받았으니 생일선물은 제대로 받은 것 같습니다. 

 

생일상은 한우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25일에는 제수(손아래 동서)씨가 집으로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했거든요. 생일 복이 터진 것인지, 생일상을 두 번이나 받게 되는 아내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제 생일에는 아내에게 축하전화도 받지 못했고, 평택에 사는 막내 누님과 매형, 큰 누님과 함께 해운대 동백섬에서 쑥 개떡 잔치를 벌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으니, 두 번이나 초대받는 아내가 부러울 수밖에요.  

 

그렇다고 아내에게 시비를 걸어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머니에게 "엄니, 오늘이 내 생일인디요"라고 했다가 꾸지람을 듣고 종일 심부름만 다녔던 코흘리개 시절을 떠올리며 생일 복이 없는 제 탓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형님은 한우전문점에서 아내 생일을 축하해주었고, 동생 대신 제수씨가 집으로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한다고 했는데, 나는 무엇을 선물해야 좋을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소주를 곁들인 저녁을 즐겁게 먹고 돌아오면서도 마땅한 선물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옛날처럼 딸이라도 있어야 케이크와 촛불을 준비해서 "사랑하는 당신의 쉰여덟 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를 부르는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겠는데,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딸에게 내려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꽃, 케이크, 옷, 머플러, 가방 등을 생각해보았으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사진작업을 하면서도 아내의 선물 생각뿐이었는데요. 결국, 정하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100달러 지폐를 선물로 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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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발명왕으로도 이름난 ‘벤저민 프랭클린’ 전 미국 대통령 초상이 그려진 1백 달러 지폐. 아내 월급이 매달 1백 달러씩 오르기를 꿈꿔봅니다. ⓒ 조종안

미국 독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발명왕으로도 이름난 ‘벤저민 프랭클린’ 전 미국 대통령 초상이 그려진 1백 달러 지폐. 아내 월급이 매달 1백 달러씩 오르기를 꿈꿔봅니다. ⓒ 조종안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마음에 드는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니까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100달러짜리 지폐에 그려진 벤저민 프랭클린 전 미국 대통령 얼굴이 떠오르며 저도 모르게 "옳지!" 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아내가 워낙 현금을 좋아하거든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었던 지난 1월 모 은행에 들렀다가 환전하러온 손님에게 사놓은 미화 100달러를 당시 10만원도 안 주고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5만원 정도를 오르내리고 있으니 행운을 상징할 만한 선물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가가 오르면 가치가 떨어지는 우리 돈보다, 미국 독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벤저민 프랭클린 전 대통령 초상이 담긴 100달러짜리 지폐가 투자가치가 있을 것 같아 사놓았는데요. 외환시장에서 달러가 거래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더라고요.  

 

아내의 생뚱맞은 질문 

 

생일날 아침을 먹고 오후 근무를 하려고 출근하는 아내를 불러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100달러 지폐가 들어 있는 하얀 봉투를 건넸습니다.

 

"어이, 자기 생일 축하해, 그리고 이 봉투는 생일선물이야, 지난 1월에 큰 맘 먹고 사둔 것인데 지금은 15만원을 오르내리고 있더라고. 50% 넘게 차익이 났으니 행운의 상징이 될 것 같아서 선물로 주는 거니까 잘 간직하라고. 이제 자기 것이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환전해서 사용하든가···."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받은 아내는 놀란 토끼 눈으로 저를 보더니 "선물은 무슨 선물, 아무튼 고마워요. 그런데 이거 위조지폐는 아니지?"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유산슬 밥과 비빔냉면을 참아가며 모은 비상금으로 장만한 건데 위조지폐냐고 묻다니, 생뚱맞은 질문에 어이가 없었지만, 너무나 기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을 것이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평소에도 멋과 애교와는 거리가 먼 아내거든요. 

 

생일날 아침에도 눈을 뜨기 무섭게 "어이, 오늘이 자기 생일이야. 쉰여덟 번째 생일 축하해"라며 생일을 축하했지요. 그러자 아내는 웃으며 "쉰아홉이지 무슨 쉰여덟이야"라며 따지더라고요. 해서 손가락을 꼽아가며 확인해주었습니다.

 

아내는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평소에도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을 꼭 토를 달거든요. 그래서 사소한 일로 말씨름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그렇다고 모든 걸 아내에게만 돌릴 수는 없겠지요.

 

요즘에는 내 생각과 달라도 흘려듣는 경우가 많은 걸 보면 다툼도 젊음의 표시인 것 같습니다. 딸 하나를 키우면서 저희처럼 다툼이 잦았던 부부도 없었을 것입니다. 30~40대 때는 TV 드라마를 시청하다 싸우고, 가요프로를 보다가도 싸우고 정치 관련 뉴스를 보다가도 싸웠으니까요.  

 

하루에 세 번씩 다툴 때도 있었는데, 다행인 것은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싸우고도 금방 풀어져 끼니때가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밥 먹자'고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래도 그때가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함께 늙어가는 동병상련의 정 때문일까요. 쉰여덟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을 하려니까, 먹지 않아도 될 것을 너무나 많이 먹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년 2월이면 아내와 부부의 연을 맺은 지 27년이 됩니다. 짧지 않은 세월이지요. 그동안 티격태격하면서도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해오며 가장 소중하고 친한 사이로 발전해온 게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앞으로도 저는 '결혼 전에는 눈을 크게 뜨고, 결혼 후에는 반쯤 감아야 한다'는 미국 속담처럼 살아가려고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반쯤이 아니라 아주 감아버릴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저에게 행운이 돌아올 것 같기 때문이지요. 

 

"아내여! 27년 가까이 함께 살아오는 동안 큰 탈이 없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쉰여덟 번째 생일을 다시한번 축하합니다. 오늘은 왠지 당신과 조용한 산길을 산책하며 맑은 공기도 마시고 즐거운 대화도 나누고 싶어지네요."

2008.11.24 10:09 ⓒ 2008 OhmyNews
#아내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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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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