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 사진찍기 참으로 어렵네

[사진말 27 : 사진에 말을 걸다 161∼166] 눈물 쏙 빼게 하는 사진 하나

등록 2008.11.25 14:15수정 2008.11.2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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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찍는지 골목길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다 보면, 찍을거리가 넘쳐서 늘 ‘탈’이라고 느낍니다. 우리 살아가는 모습은 무엇이나 좋은 사진감이 됩니다. 우리 스스로 이런 우리 삶을 사진감으로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 최종규


[161] 좋은 노래를 듣는다 : 좋은 노래를 듣는다. 내 귀에 좋게 들리는 노래를 듣는다. 아마 1000번쯤은 들었겠지. 1000번 훨씬 넘게 들은 노래도 있을 테고. 그런데 이 노래들은 언제 들어도 새롭다. 어쩌면, 언제 들어도 새롭기 때문에 내 귀에 좋게 들리는 노래가 아닐까. 들을 때마다 다른 생각이 들고 다른 울렁거림이 있기에 좋은 노래가 아닐까. 그렇다면 내 사진은 어떠한가. 내가 보기에도 1000번쯤 넉넉히 다시 보고 또 볼 만한 사진일는지. 다른 사람들이 보기 앞서 나부터 보기에 1000번쯤 넉넉히 다시 보고 또 보아도 새로움과 새삼스러운 울렁거림이 느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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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시장 고양이와 아이 신포시장 뚱뚱이 고양이하고 노는 아이. 아이는 이 고양이가 왜 뚱뚱이이고, 왜 왼쪽 눈이 다쳤는지를 우리들한테도 찬찬히 들려줍니다. 고양이 머리도 쓰다듬고 배도 어루만지면서 한참 놀다가 갑니다. ⓒ 최종규


[162] 요즈음 맑은 날 사진 찍기 : 요새는 맑은 날 사진 찍기가 참으로 어렵다. 서울이고 부산이고 시골이고 크게 다르지 않다. 해맑다고 하는 날에도 뿌연 먼지띠가 짙게 끼어 있기 때문에, 감도 100 필름을 쓸 때 조리개를 활짝 열기 어려워졌다. 조리개값을 16이나 22쯤으로 열자면 세발이를 받쳐야 할 때마저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인데 말이다. 앞으로는 감도 100 필름 쓰기는 더욱 어려워지리라 본다. 자동차는 자꾸만 늘어나고 우리들 씀씀이도 커지니까. 그렇다고 필름 탓, 장비 탓을 할 수 없겠지. 셔터빠르기를 낮춰도 손이 떨리지 않도록, 세발이를 안 받치고도 안 흔들리도록 더 매무새를 단단히 추슬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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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아도 뿌연 하늘 맑아도 뿌옇기만 한 서울 하늘입니다. 시골은 조금 낫기는 하지만, 우리 나라 하늘이 크게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맑은 날 찍어도 하늘이 뿌옇게 나오는, 파란빛이 보이지 않는, 죽어 버린 하늘. ⓒ 최종규

[163] 서울 하늘
: 요즘 디지털사진기는 성능이 아주 좋아서 하늘을 찍어도 파랗게 잘 나옵니다. 그렇지만 하늘이 참으로 파랗기 때문에 그처럼 파란 빛깔이 또렷하게 살아날까요? 큰비가 여러 날 내리고 난 뒤, 하늘에 가득했던 먼지띠가 걷힌 하루이틀을 빼놓고는 서울 하늘은 언제나 뿌연 하늘, 구름 한 점 없어도 뿌연 하늘이라고 느낍니다.

서울 장승백이역 앞에 있는 헌책방에서 찍은 사진을 스캐너로 긁다가 울컥 했습니다. 하늘이 너무 뿌얘서. 파란빛은 조금도 안 잡혀서. 이날은 구름 하나도 안 끼어 있던 날인데.

[164] 눈물 쏙 : 어디에 처박아 두었다가 이제야 나왔는지,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필름이 책뭉텅이 사이에서 비죽 나오는 바람에, 지난해 11월에 찍은 사진을 뒤늦게 스캐너로 긁습니다. 필름을 스캐너에 앉혀서 긁을 때 비로소 ‘아하, 이 사진이 이렇게 나왔구나. 여기는 흔들렸네. 아이고, 왜 이렇게 옆으로 기우뚱하게 쏠렸을까.’ 하고 느낍니다. 빛느낌이나 빛부피도 스캐너로 긁으며 살핍니다.

오늘 긁는 필름에는 서울 혜화동 〈혜성서점〉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을 보니 이날 어떻게 찍었는가 하는 모습이 환히 떠오릅니다. 대단히 추운 날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손이 얼마나 꽁꽁 얼었는지, 책방 앞에 자전거를 세워 놓은 뒤 장갑을 벗고 가랑이 사이에 두 손을 끼고 얼굴을 찌푸리며 한동안 손을 녹여야 했습니다. 손을 녹인 뒤 사진기를 꺼내 헌책방 아저씨 자전거와 제 자전거가 함께 보이도록 사진 한 장을 찍었고, 길을 건너서 헌책방이 깃든 건물이 모두 나오도록 한 장 찍었습니다. 그리고 헌책방 바깥에 마련한 책꽂이 앞에 몇 닢 쌓여 있는 가랑잎을 찍었어요. 손이 시려워 덜덜 떨리니 사진기도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숨을 읍읍 멈추어 가며 가까스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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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가랑잎 무척 추운 가을날, 언손을 호호 녹이면서 가까스로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추운 겨울날 손이 꽁꽁 얼어붙어도 장갑이 아닌 맨손으로 찍어야 하는 사진쟁이입니다. 손끝 느낌을 살리자면, 손끝으로 뻗어나가는 느낌을 담아내자면. ⓒ 최종규

그 뒤로 이때 찍은 사진이 어떻게 나왔을까 조바심이 나고 참말 궁금했는데, 그 필름을 이렇게 처박아 두고서 한 해나 묵히고 있었으니, 원 참.


돌돌돌. 스캐너가 움직입니다. 삐이익. 다 긁고 파일이 뜹니다. 책방 앞에 떨어진 가랑잎은 모두 열한 장. 아직 파란 잎이 있고 물이 다 빠져 밤빛이 된 잎이 있고, 차츰 물이 빠지고 있는 잎이 있으며, 다 바스라진 잎도 하나 있습니다. 벌레먹은 잎도 보이는군요. 사진은 아주 잘 나왔습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균형이 살짝 안 맞아 조금 기우뚱하게 찍혔네요. 너무 추워서 몸을 웅크리다 보니 이렇게 기울어졌는가 봅니다. 그래도 참으로 반갑게 잘 나온 사진이라, 눈물이 쏙 나옵니다. 찔끔.

[165] 사진 뒤에 숨은 : 어느 사진 한 장이든지 그 한 장을 얻기까지는 수많은 사진이 바탕이 되는 가운데 하나를 모두어 냅니다. 사진 하나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뒤에 숨어 있겠어요. 필름으로 찍건 디지털로 찍건, ‘아직 멀었어’ 하고 새 마음을 다집니다.

[166]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 : 내가 좋아서 찍은 사진이라면, 내가 즐거워서 찍은 사진이라면, 좀 못 찍었거나 비뚤어졌거나 흔들렸거나 빛이 안 맞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내가 좋아서 찍은 사진이 아니고, 내가 즐거워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면, 아무리 반듯하고 안 흔들렸고 빛이 잘 맞아떨어졌어도 그다지 내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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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광고 대학생은 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 과외를 하면서 돈을 법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교과서 지식을 다시금 외고 또 외워야 한다며 부모가 시키는 과외를 받습니다. 대학생이 할 몫은 교과서 지식을 자기 동생들한테 집어넣기일 뿐인지, 또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받을 선물이란 과외 지식밖에 없는지 궁금합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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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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