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식 땐 학교로 돌아와 계세요!"

[현장] 해임된 박수영 교사의 방학식... 지역 촛불 시민과 학부모들이 지지와 격려

등록 2008.12.24 14:48수정 2008.12.2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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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교사가 24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등학교 앞에서 담임을 맡았던 6학년 9반 학생들과 '교문밖' 방학식을 갖고 있다. 방학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당분간 선생님을 볼 수 없어 아쉽다"며 몸을 기대어 안기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 남소연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거원초등학교 겨울방학식이 열린 24일.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두고 방학을 맞이한 초등학생들은 더 없이 기뻐했다. 하지만 해임된 박수영 교사 방학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박 교사는 아이들과 즐거운 방학식을 함께 하고 싶었지만 교문 앞에서 "학부모와 학생의 선택권을 존중하면 파면, 해임되나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어야 했다. 박 교사 앞에는 학생들 대신 그를 지지하는 학부모 30여 명이 섰다.

학부모들은 아이들 방학식이 끝나려면 한참이 지나야 하는데도 아침 일찍부터 교문 앞으로 나와 박 교사를 지지하고 격려했다. 그리고 이날은 '일제고사 반대하는 송파시민모임' 회원 십여 명도 학교를 찾아 박 교사를 격려했다.

교문 밖의 교사, 학부모와 지역 촛불이 위로와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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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교사가 24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등학교 앞에서 담임을 맡았던 6학년 9반 학생들과 '교문밖' 방학식을 갖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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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교사가 24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등학교 앞에서 담임을 맡았던 6학년 9반 학생들과 '교문밖' 방학식을 갖고 있다. 방학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당분간 선생님을 볼 수 없어 아쉽다"며 팔짱을 낀 채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 남소연


이들은 지난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조직된 지역 촛불 운동을 벌여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붉은색과 푸른색의 산타복을 입고 나와 "일제고사 반대" "교사 징계 철회" 등의 요구를 담은 피켓을 들고 박 교사와 마주했다.

한 회원은 "우리가 활동하는 지역에서 참교육을 실천하는 교사가 해임됐는데, 그를 지켜주고 싶다"며 "이런 활동도 지역 촛불의 건전한 활동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지역 촛불 운동만 진화한 게 아니다.

학부모들도 교문 앞에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이제부터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여하자" "엄마들이 나서서 학교를 바꾸고 교육을 지키자"는 의견을 나눴다. 즉석 학부모회가 열린 셈이다.


학부모 이모씨는 "박 교사의 해임을 겪은 뒤 학부모들도 많이 배우고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학부모들도 학교와 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는데, 나쁜 의미의 '치맛바람'이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활동을 지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도 학부모들은 박 교사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자발적으로 작성해 오기도 했다.

교사-학부모-시민들의 '아침 시위'가 약 1시간 가까이 이어지고, 오전 9시 30분이 되자 방학식을 마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아이들은 박 교사가 담임을 맡았던 6학년 9반 학생들이었다.

수십 명의 아이들은 "선생님~!"을 외치며 박 교사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한꺼번에 아이들이 달려드는 바람에 박 교사가 들고 있던 피켓이 부서졌다. 아이들은 "선생님 개학 할 땐 돌아오실 거죠?" "꼭 졸업식은 같이 해요"라고 말했다.

학생들 "개학식 땐 선생님 돌아와 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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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교사가 24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등학교 앞에서 담임을 맡았던 6학년 9반 학생들과 '교문밖' 방학식을 갖고 있다. ⓒ 남소연

상황을 좀 더 많이 아는 아이들은 "선생님이 소송에서 분명히 이길 거예요"라고 박 교사를 격려했다. 박 교사는 이런 아이들을 한 명씩 안아주며 "방학 동안 몸 건강히 신나게 뛰어 놀고, 좋은 책도 많이 읽으라"고 말했다.

박 교사는 반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에야 학교 안으로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다. 학교 쪽은 "아이들이 동요할 수 있으니, 방학식이 끝나면 학교에 들어오라"고 '부탁'했고, 박 교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박 교사는 "교장선생님이 동료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 줬다"며 "그동안 학교에서 크고 작은 소란이 있었는데, 여러 선생님들에게 감사와 더불어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박 교사는 "아이들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은 걸 배웠으리라 생각한다"며 "나도 크게 잘못한 게 없는 만큼 머지않아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때가 되면 다시 꿈과 희망을 나눌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박 교사를 포함해 중징계를 받은 교사 7인은 이날 교원 소청심사위윈회에 징계의 부당함을 확인하는 소청심사를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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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교사를 응원하기 위해 겨울 방학식이 예정된 24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등학교 앞에 산타복장을 한 시민들이 나타나자 박 교사가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 ⓒ 남소연


징계 교사 7인, 부당 징계 확인 소청심사 신청

전교조 서울시지부는 소청심사 신청에 앞서 "서울시교육청의 징계가 터무니 없어 사실 관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라며 "교사들이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징계했지만 체험학습 허가는 교장의 권한이지 교사들은 그런 권한도 없다"고 밝혔다.

소청심사는 징계처분을 안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청구할 수 있고, 청구인은 60일 이내에 취소, 무효 확인, 기각 등의 결정사항을 통보받게 된다. 청구인들이 소청심사 결정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다시 90일 이내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학생들 방학이 시작된 날, 교사들은 '법적 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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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부 기자입니다.

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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