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통강사인 내가 민주주의 대변자라니?

2008년을 돌아보며

등록 2008.12.31 10:55수정 2008.12.31 10:55
0
원고료로 응원
어째 지금 국회가 돌아가는 꼴이 2004년도 탄핵정국 때와 비슷하다. 그때 한나라당은 소위 ‘역풍’을 맞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역풍의 최대 피해자(?)는 사실 열린우리당이다. 타인의 지나친 행보로 그들을 인지하는 분위기 자체가 매우 긍정적으로 변했다. 그것도 ‘민주주의’와 어울리는 개념으로 말이다. 그래서 한 달 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승리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역풍의 최대 ‘수혜자’란 말로 표기함이 어감 상 자연스럽다. 하지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외부의 해석이 강제로 주입되는 것은 어쨌든 ‘본연의 모습’과는 다른 것 아닌가?

개인의 의지보다 ‘더한’ 평가가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진다면 그건 피해를 받은 것이다. 하루아침에 ‘민주주의 투사’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던 그들은 엄청난 정체성의 괴리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걸 누가 보상하나?

질서유지권이 발동된 2008년도의 마지막 국회. 국회가 어떠한 파국으로 끝날지 모르겠지만, 분위기상 많은 국민들이 흥분할 일이 발생할 듯하다. 한나라당은 아마도 직격탄을 맞을 것이고 등산용 로프로 서로를 결박한 채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은 아마도 이 전쟁터에서 반대급부의 효과를 누릴 것이다. 그나마 상대적 영웅을 찾길 좋아하는 대중의 속성상 그들은 지금이 최고의 기회이기도 하다.

화면구도 상 민주당 의원들이 약자로 비칠 것은 뻔하다. 게다가 불쌍하게 끌려가는 보너스까지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악법들을 저지하고자 노력할 것이고 그 흔적은 화면에 잡힐 것이다. 쪽수가 부족한 태생적 한계 덕택에 쪽수 많은 한나라당이 그들을 ‘민주주의 투사’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a

2008년도는 누구나 민주주의를 외쳤다. 누구나 외칠 정도라면 그만큼 심각하다는 거다. ⓒ 오찬호


시간강사 2년, 너무 다른 2007년과 2008년

2007년부터 시간강사 생활을 본업으로 삼았다. 이제 4학기를 마쳤다. 이 바닥에선 2년은 경력도 아니다. 하지만 2007년과 2008년은 단순히 연속된 시간의 2년이 아닌 듯하다. 참여정부 마지막 1년, 그리고 MB정부 새로운 1년. 국민 모두가 지금 느끼고 있듯이 참 머리가 어질어질한 정권교체기의 혼란함이 여기에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 진단은 단연코 ‘거시적인 조망’에서만 그런 것이다. 학문적 차원에서 ‘과도기’라고 하니까 그렇게 이해할 뿐이다. 실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삶이라는 그릇은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정치인들끼리, 그리고 상위 1% 경제인들끼리 이 작은 땅덩어리를 가지고 노는 세상이 짜증은 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어제와 그다지 다르지 않는 오늘’을 살고 있다.

역설적 의미에서, 이렇게 느끼는 것이 바로 우리가 그저 서민이라는 한계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군사독재시절이든, 개혁정부이든, 경제를 최고로 생각하는 정부이든 서민들은 ‘그냥’ 산다. 주변에서 ‘변했다’고 그러니까 대충 세상이 그렇게 흘러간다고 이해할 뿐이지. 어제 힘들고 오늘 힘든 것은 동일하다.

그렇게 2008년을 난 그냥 살았다. 그런데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나는 “현 정부를 매우 비판하는 강사”라는 소리를 학생들로부터 자주 듣는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정부에게 너무 가혹한 평가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항의 메일을 보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깃든 후에 날기 시작한다”는 헤겔의 표현처럼 MB 정부에 대한 진단은 추후에 학문적으로 접근함이 바람직한 것 아니냐고 <신화와 예술> 수강생이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요즈음 나는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자주 청탁 받고 있다. 내가 딱이란다.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물어보면 수업시간에 그렇게 보였단다. 다른 교수님들에 비해 한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강한 것 같다고 오바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 정말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 단연코 난 변하지 않았다. 2007년도의 나와 2008년도의 나는 사상적으로, 이념적으로 동일하다. 노골적으로 말해 사용하는 강의록도 비슷하고 학생들이 웃어주는 썰렁개그도 다 몇 번씩 우려먹기 재탕중이다. 2007년도의 내가 2008년도의 나다.

사회학 전공자라서 강의 시간에 “과거에는~”, “80년대에는~” 라는 말을 무척이나 많이 한다. <현대사회와 미디어> 강의에서는 언론이 사회적 상황에 따라 현실을 구성하는(social construction of reality) 경우를 1980년대 보도지침의 경우를 사례로 활용하여 설명한다.

<대중예술론> 강의에서 마르크스 주의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 국풍81 사건, 건전가요, 심야영화 등’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환경사회학> 강의에서는 한국식 개발주의를 70년대 박정희 정권으로 규정하고 수업을 진행한다. 우리나라의 과거는 이런 수업을 설명하는 데에는 너무나 ‘딱’이다.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는 강사로서는 이러한 우리의 과거가 참 고맙기까지 하다.

그렇게 2007년도를 살았다. 2008년도 마찬가지다. 다만 약간의 애드리브이 첨가되었을 뿐이다. 스포츠의 정치적 활용사례를 언급하면서 지난 8월의 ‘올림픽 선수단 도보 퍼레이드’를 아주 짧게 이야기한다. 환경문제의 정치적 접근의 경우 ‘대운하’를 약간 언급한다. 현재 계절학기 강의중인데, ‘언론파업’을 경우에 따라 활용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지나가는 농담 수준일 뿐이다. 결코 목 터지게 정치적인 색채를 표출한 적이 없다. 특히나 난 사회학 전공자로선 드물게 ‘진보주의를 싫어하는’ 부류에 속하는 수구 보수 꼴통이다. ‘마초 오’는 나의 또 다른 호칭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내가 언급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을 소개하는 차원에서 ‘약간’ 활용되는 수준이다.

내가 민주화 투사? 지나가는 개가 웃는다

그러나 웬걸? 난 거의 운동권 선배 수준의 강사로 취급받고 있다. 지난 학기 “현 정부의 심각성을 알게 해 주어서 고맙다”라는 강의평가 내용을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민주주의의 대변자 오찬호.” 이 말에는 정말 치를 떨었다. 스스로가 너무 어색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서 좋은 거 다 주워 먹고 있는 꼴이다.

그런데 난 민주화 투사라는 호칭이 싫다. 난 민주화든 산업화든 특정 성향에 목숨을 거는 것 자체가 싫다. 난 그냥 5개월된 딸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가장이다. 꼴에 또 박사논문까지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헛된 욕심을 가진 이 땅의 30대일뿐이다. 이리저리 시간강사 보따리 장사하면서 대한민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한다는 거짓신념 아래에서 블로그 질이나 하는 대책 없는 사람 오찬호일 뿐이다.

그러니 제발 날 과잉해석하지 말길. 내가 민주화 투사? 웃을 사람 정말 많겠다. 하지만 변명은 해야겠다. 난 그냥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1년 사이에 그저 이렇게 변해버렸다고. 나 정말 다시 돌아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och7896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http://blog.daum.net/och7896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2008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3. 3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4. 4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