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세일' 미국 명품 아울렛 매장 가보니...

[해외리포트] 애프터 크리스마스 세일 즐기는 쇼핑객들

등록 2008.12.31 17:09수정 2008.12.3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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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할 시간 어딨어, 일해야지!"

"지갑 꼭 잠궈라. 돈 나갈까 두렵다."
"지갑 꼭 열게 하라. 무슨 수를 써서든 돈 들어오게 하라."

지갑 속의 돈을 두고 전쟁이 벌어졌다. 경제가 어려운 탓에 지갑을 꼭꼭 닫은 소비자들과 닫힌 지갑을 열게 하려는 소매상들 간에 벌어진 치열한 전쟁이다.

집으로 배달되는 광고 전단을 보면 50% 세일은 기본이고 75% 세일도 흔하다. 50불 어치를 사면 10불 깎아준다는 광고도 있고, 할인된 가격에 상품 하나를 사면 다른 하나를 공짜로 얹어준다는 '바이 원 겟 원 프리(buy one, get one free)'도 적지 않다.

게다가 번들링(bundling)이라는 끼워 팔기(예를 들면, 노트북 컴퓨터를 사면 프린터와 잉크 카트리지, 종이는 공짜!)도 심심찮게 있어 요즘 같은 때에는 소비자들이 행복한 순간이다.

하지만 문제는 돈. 소비자들 역시 요즘 같은 불황기에 무턱대고 돈을 쓸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쉽게 지갑을 열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심리는 <워싱턴타임스> 인터넷판에서 실시하고 있는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잘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의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오늘 애프터 크리스마스 쇼핑을 할 계획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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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크리스마스 쇼핑을 할 계획이세요?" 여론조사를 실시했던 <워싱턴타임스> 인터넷 판. ⓒ 워싱턴타임즈


'애프터 크리스마스 세일' 또는 '포스트 크리스마스 세일'이라고 불리는 이 세일은 크리스마스가 지난 다음 날부터 소매업자들이 재고를 없애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대규모 할인 행사를 말한다. 말하자면 추수감사절 다음 날 실시하는 '블랙 프라이데이'와 같은 것이다.

연례행사로 실시되고 있는 이 세일을 두고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이 조사에는 많은 수의 네티즌들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참여한 사람들을 보면 압도적인 수가 "NO"를 클릭했다.

그러니까 "세일 안 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일 못 간다"가 3/4이 넘는 78%나 된다. (참고로 "예"라는 대답은 17%,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2%에 불과하다.)

흥미로운 것은 위 질문 꼬리에 붙은 네티즌들의 댓글이다.

▶ 나는 일해야 한다. 쇼핑할 시간 없다. (시티즌)
▶ 나, 애프터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긴 했다. 하지만 '메이드 인 차이나' 싸구려 제품 하나 샀다. 어린 딸을 위해. 나는 내 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에 반대한다. 그래서 차도 기름이 적게 드는 차를 몰고 다니고 있다. (빌리언003)
▶ 일하러 가야지 지금 뭔 소리야? 내가 갚아야 할 청구서가 얼마나 많은데. 그거 다 갚으려면 오늘도 일 하러 가야 해. (스포츠)

이처럼 네티즌들은 애프터 크리스마스 쇼핑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실제로 금년 크리스마스 세일 판매는 전국적으로 8% 하락했다고 한다. 이는 1980년대 이래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유명 브랜드나 명품을 파는 아울렛에서의 애프터 크리스마스 세일은 이와는 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 같았다. 적어도 기자가 느낀 그곳에서의 체감 소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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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개나 되는 유명 브랜드 매장이 모여 있는 '리스버그 코너 프리미엄 아울렛'. ⓒ 한나영


주차장 꽉 메운 쇼핑차량들... 불황 맞나?

북 버지니아에 있는 '리스버그 코너 프리미엄 아울렛'.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라고 소개되어 있을 만큼 한국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공장형 쇼핑몰이다.

이곳에는 미국의 유명 브랜드 매장이 총 망라되어 있다. 총 110개나 되는 이곳 매장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버버리, 폴로 랄프 로렌, 삭스 피브스 애비뉴, 코치, 바니스 뉴욕 등이 입점해 있다.

리스버그 아울렛 매장은 우리 집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이곳에서도 애프터 크리스마스 세일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었다. 우선 영업 시간의 연장이다. 평소 10시에 문을 열던 이곳 아울렛 매장이 2시간이나 앞당겨 오전 8시에 문을 열고 주말에는 7시 대신 9시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물론 소비자들을 유인하여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한 판매 전략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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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 매장에서 파는 세일 스웨터 가운데 가장 저렴한 30불짜리 초록색 램스울 스웨터.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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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스 피브스 애비뉴 매장. 50%나 할인했지만 여전히 비싼 코트. ⓒ 한나영


애프터 크리스마스 세일 첫 날인 26일 오전. 리스버그 아울렛으로 들어가는 7번 이스트 도로는 쇼핑객으로 보이는 차들로 이미 아울렛 진입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간신히 도로를 벗어나 아울렛 매장으로 머리를 들이밀었지만 이곳 주차장도 만만치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부지런한 쇼핑객 차량들이 벌써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보다 더 늦게 온 사람들은 빈자리를 찾아 주차장을 빙빙 돌기도 했다.

'지금 세계 경제가 불황이라는데 그 말 맞아? 정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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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남녀노소를 가릴 수 없다. ⓒ 한나영



매장 밖으로 길게 줄선 명품족들

불황이 실감나지 않는 현장이었다. 이곳을 걸어 다니는 쇼핑객들의 양 손에는 유명 브랜드 이름이 박힌 쇼핑백이 주렁주렁 들려 있었다.

'아니, 저렇게 많이 샀는데 또 살 것이 있어서 매장 순례를?'

불황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경기침체와 불황 가운데에도 명품은 없어서 못 판다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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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브랜드 '코치' 매장 밖으로 길게 줄을 선 쇼핑객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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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집중!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 한나영


"아니, 저게 뭐니? 무슨 줄이 저렇게 길어?"

아울렛 매장을 ‘구경’만 하고 다니는 우리 앞에 희한한 장면이 펼쳐졌다. 길게 줄지어 늘어선 쇼핑객들의 행렬이었다.

"무슨 구경거리가 있는 걸까? 아니면 무슨 공짜 쿠폰이라도 주는 걸까?"

무식한(?) 한 마디가 튀어 나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줄은 지갑, 핸드백 따위의 가방과 구두, 액세서리 등을 파는 ‘코치’라는 유명 브랜드 매장 앞의 긴 행렬이었다. 매장 안으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매장 측에서는 안전을 위해 사람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이다.

"와, 저렇게 밖으로까지 길게 줄을 서서 유명 브랜드 가방을 사야 되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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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부츠 신어보는 건 공짜! 나인 웨스트 매장에서. ⓒ 한나영


명품족, 또는 브랜드족과는 거리가 먼 기자로서는 매장 밖으로까지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인내가 대단해 보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지금 같은 불황기에는 저런 소비자들도 있어야 경제가 돌아가겠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떠들썩했던 세일 행사, 과연 성공했을까?

그나저나 이번 '애프터 크리스마스 세일'에 사활을 걸어 50%~80%까지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벌였던 소매업자들의 판매 실적은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현재 잠정적으로 나온 결과를 보면 전혀 낙관적이지 않은 것 같다. 지난 27일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는 이번 애프터 크리스마스 세일이 벌어진 '블랙 프라이데이'를 가리켜 우울했다는 의미의 '블루'가 추가된 '블랙 앤 블루 프라이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만큼 비관적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모든 소매업자들이 울상을 지었던 것은 아니다. 온라인 쇼핑몰은 이번 연말 판매에서 비교적 나은 실적을 기록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닷컴은 이번 연말 쇼핑 기간에 630만개의 주문을 받아 전년도에 비해 17% 증가하는 역대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다고 한다.

내년 1월 8일이 되면 주요 소매업체의 정확한 판매 성적표가 나오게 될 것이고, 업자들은 이번 '애프터 크리스마스 세일'을 통해 그동안의 부진을 과연 얼마나 만회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애프터 크리스마스 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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