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에 지배당하는가, 상황을 지배하는가

등록 2009.01.02 08:12수정 2009.01.02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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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실험 상황실험 ⓒ 김성화

누군가가 옆의 그림에서 오른쪽 X막대와 같은 길이의 막대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다수의 사람은 당연히 B막대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일정한 공간 속에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위의 문제에 대한 정답을 A막대라고 답한다면, 정답이 B막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와 비슷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약 30%의 사람만이 B막대라고 답한다고 한다. 나머지 70%의 사람들은 정답이 B막대라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A막대가 정답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정답이 B막대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은 실험 참가자들과 달리 B막대가 정답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와 비슷한 경우에 처하게 된다면 B막대가 정답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이처럼 어떠한 상황에서 타인의 영향을 받는 것을 '상황의 힘'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의 힘을 법칙화한 것이 '3의 법칙'이다. 자신과 자신을 제외한 두 명이 모여 세 명이 되면, 그곳에서 집단이란 개념이 발생하고, 집단에 의한 사회 규칙이 만들어 진다. 그리고 집단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은,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려는 인간의 사회 본능에 의하여, 집단 속에 속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단은 하나의 힘을 형성하게 된다. 즉, 인간은 본능적으로 상황의 힘에 의하여 집단에 속하려 하는 것이다. 위의 실험의 경우에서도, 실험 참가자들은 집단에 속하려는 본능 때문에, 자신의 판단과는 반대로 정답이 A막대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황의 힘은 인간을 권위에 복종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연구가 심리학 박사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연구>이다. 밀그램 박사는 가짜 전기충격의자에 연기자를 앉혀 놓은 후, 실험 참가자들에게 연기자가 질문에 잘못 대답할 때마다 전기 충격을 가하고 점점 그 강도를 높이도록 했다.


많은 학자들은 450V의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 참가자는 1% 미만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 실험 결과, 65%의 참가자가 450V의 전기충격을 가했다.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밀그램의 실험 결과를,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선과 악에 대한 가치관이나 믿음, 도덕적 판단과는 상관없이 실험 참가자가 처한 상황 때문에 행한 행위라고 분석했다.

몇 년 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도 상황의 힘에 의한 권위에 대한 복종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들에 불과했던 미군들이 이라크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에게 잔인한 행위를 행했던 것은, 자신들이 상황에 의하여 포로들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졌었기 때문이다.

외부의 관찰자 입장에서 나라면 결코 미군처럼 저러한 행위를 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다. 상황의 힘에 의한 집단 압력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의 힘과 관련하여 방관자 효과라는 것이 있다. 1964년 뉴욕의 한 아파트 앞에서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괴한에게 칼로 찔렸다. 여성의 비명소리에 아파트 주민들은 창문을 열었지만, 38명의 목격자 중 어느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닌 타인이 신고를 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때문이었다.

이러한 경우처럼 내가 아닌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방관자 효과라고 한다. 이러한 방관자 효과는 어떠한 일이 발생한 상황과 관련된 사람의 수가 많을수록 더 나타난다. 길을 가다 누군가가 쓰러져 있을 때 근처에 사람이 없다면 기꺼이 도와주지만, 근처에 사람이 많다면 '누군가 도와주겠지'라는 생각에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도 이러한 방관자 효과이다.

그러나 인간이 항상 상황에 지배당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상황을 지배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에 많은 사람들이 서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이 무단횡단을 하면, 같이 신호등에 서있던 사람들도 무단횡단을 한다. 이처럼 인간은 상황에 휩쓸리는 나약한 존재인 동시에, 상황을 만드는 강인한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어떠한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행동을 달리한다.

1980년대 뉴욕 지하철은 범죄의 온상이었고 무법천지였다. 매일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았고, 1년 동안 약 15,000건의 강력범죄가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하철 관계자들은 무임승차나 소매치기, 지하철 낙서와 같은 사소한 범죄들부터 강력하게 단속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단속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1988년 이후 뉴욕 지하철의 범죄율은 75%가 감소했다. 매우 작은 상황의 변화가 개인의 행동을 바꾼 것이다. 이와 관련된 이론 중 하나가 깨진 창문과 같은 사소한 허점을 방치하면 더 큰 범죄가 진행된다는 '깨진 창문 이론'이다.

따라서 인간이 선한 행동을 하도록 상황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는 푸른 가로등 설치는 인간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악한 행동을 하려는 충동을 막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쓰레기를 불법으로 버리는 곳에 작은 화단을 설치할 경우, 사람들은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푸른 가로등이나 화단처럼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데 영향을 주는 상황은 매우 사소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소한 것들의 변화가 개인의 행동을 바꾼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결코 엄청난 돈과 시간이 아니다. 상황,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상황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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