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습니까?

<한 편 시와 에세이> 남북화해를 바라는 팔순 시인이 쓴 어머님 편지

등록 2009.01.03 16:06수정 2009.01.0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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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남북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이 무덤가에서 민통선 철책을 바라보고 있다 ⓒ 이종찬


꿈에 네가 왔더라
스물세 살 때 훌쩍 떠난 네가
마흔일곱 살 나그네 되어
네가 왔더라
살아생전에 만나라도 보았으면
허구한 날 근심만 하던 네가 왔더라
너는 울기만 하더라
내 무릎에 머리를 묻고
한마디 말도 없이
어린애처럼 그저 울기만 하더라
목놓아 울기만 하더라
네가 어쩌면 그처럼 여위었느냐
멀고 먼 날들을 죽지 않고 살아서
네가 날 찾아 정말 왔더라
다신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눈물어린 두 눈이
그렇게 말하더라 말하더라

-김규동, '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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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푸는 열쇠는 6.15, 10.4선언에 있는 것 같습니다 ⓒ 이종찬


남북관계가 날이 갈수록 더욱 꽁꽁 얼어붙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말 그대로 '순풍에 돛단 듯' 잘 나가던(?) 남북관계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살얼음이 어는가 싶더니, 급기야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 사건으로 지난 해 10주년을 맞은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켰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이명박 정권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분통을 터뜨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해 7월 11일 이 대통령이 국회 개원연설을 통해 남북대화를 전격 제의하고 나선 날, 하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금강산 관광 중단과 민간인 대규모 방북 중단을 북한을 압박하는 카드로 삼아서야 되겠습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금강산 피격 사망사건에 따른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이상설'이 나왔습니다. 보수진영은 이를 빌미로 마치 김정일 정권 붕괴가 코앞에 다가온 것처럼 여론몰이를 했습니다. 특히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이 청와대 등 정부쪽 핵심인사들 입을 통해 흘러나왔고, 제대로 확인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일부 '넋 나간'(?) 보수단체들이 대북전단(삐라)을 북한으로 무차별 살포했습니다. 이에 그렇잖아도 마음이 몹시 불편했던 북한은 마침내 지난 해 10월 2일 열린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전단 살포행위가 계속될 경우 개성공단사업과 개성관광에 엄중한 후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대북전단 살포는 계속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정치권 한 관계자는 글쓴이에게 "정부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원하고 있거나 눈 감아 주고 있는 것"이라며 강하게 꼬집기도 했습니다. 민통선 교회 담임목사인 이적(51) 시인은 "만약 북한에 문제가 생기면 북중우호협력조약에 따라 중국이 자동으로 개입하도록 돼 있다"며 "남한이 북한이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우려 섞인 여러 사람들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변화해야 한다'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결국 남측의 '6.15, 10.4선언 불이행'과 '대북 강경책'을 문제 삼아 육로통행 엄격 제한, 차단, 개성관광 중단, 개성공단 내 상근자 감축 등을 담은 '12.1조치'를 내놓았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10개월 만에 남북 화해와 협력을 상징하던 금강산 관광과 개성관광에 빗장이 굳게 걸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더불어 56년 만에 어렵사리 이어졌던 문산-봉동 간 화물열차도 다시 끊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남북 경제협력을 상징하는 개성공단도 언제 먹장구름이 까맣게 뒤덮을지 알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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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예나 지금이나 북한을 '동반자'나 '공존공영'하는 한 민족으로 여기지 않고 무조건 색안경부터 끼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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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동반자' '공존공영', 참 좋은 말입니다 ⓒ 이종찬


오른 쪽 뺨 맞으면 왼쪽 뺨까지 내주어야

어렵사리 물꼬를 터놓은 남북관계가 이렇게 허망하게 닫히게 되다니… 정말 어처구니 없는 현실입니다. 여기에 지난 2일(금)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국정연설에서 한 말, "북한은 이제 더 이상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구태를 벗고 협력의 자세로 나와야 한다"는 자신감에 찬 말을 곱씹어 보면 더욱 말문이 막힙니다.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구태'라니요. 북한이 언제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구태를 저질렀습니까. '통미봉남'이란 그럴싸한 한자어도 '북한 달래기'에 실패한 이명박 정권이 만들어낸 말이지 않습니까. 이 대통령은 최근 부처 업무보고에서 "정치적으로 남북관계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통미봉남'(이동관 대변인)이란 말 그 자체가 정치적이지 않습니까. 

'남남갈등 구태' 부분은 이날 아침 국정연설을 앞두고 이 대통령이 직접 넣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에 대해 "북한의 기본적인 자세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며, "밀접하게 모든 사안에 대해 긴밀히 협의하는 체제가 이미 구축돼 있다"고 애써 강조했습니다.

이 대변인은 이날 "남북관계 경색이나 긴장구조를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이 대변인은 또 "북한이 남북관계를 자꾸 전술적, 전략적으로 하려는 발상에서 벗어나 우리의 진정성에 호응하는 자세 변화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의미"라며, 거듭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옛말에 '오른 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까지 내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설령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할망정 서로 묶이고 맺힌 것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 먼저 한 쪽 뺨이라도 맞을 각오를 해야만 합니다. 한 쪽에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데, 자꾸 그 한 쪽에게 먼저 고개 숙이라고 하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그 말을 듣겠습니까. 

이 대통령은 이날 "북한도 이제 시대 변화를 읽고 우리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란다"며 "저는 언제라도 북한과 대화하고 동반자로서 협력할 준비가 돼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 대변인은 이에 대해 "공존공영의 대상이라는 것은 여러 차례 밝혔으며, 북한을 정치적, 정략적 관계로 끌고 가지 않겠다는 차원"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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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대북전단 살포는 계속해서 이루어졌습니다 ⓒ 이종찬


자기 반성 없이 남 탓만 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

'동반자' '공존공영', 참 좋은 말입니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대통령 국정연설에서 나온 이 말은 말 그대로 '끼워치기'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이 좋은 말이 갑자기 옛말에 '까마귀 검다고 백로야 웃지 마라'에 나오는 백로처럼 여겨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말이란 이처럼 쓰임새에 따라 그 뜻이 제멋대로 구부려지기도 합니다. 

이 대통령 국정연설에 대해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지난 1년간의 경제실패와 남북관계 경색, 민주주의 후퇴 등 국정 난맥상에 대한 자기반성 없이 국회 탓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선진당 박선영 대변인도 "이 대통령의 연설은 겉과 속이 다른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대통령부터 자기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푸는 열쇠는 6.15, 10.4선언에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12.1조치'를 경고한 전화통지문(11월 12일)에서 "역사적인 두 선언에 대한 남조선괴뢰당국의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가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입장과 태도는 선언에 따른 모든 북남합의를 노골적으로 파기하는 엄중한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이번 국정연설에서 '6.15와 10.4선언을 부정한 적이 없다'라는 내용은 한 마디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저 북한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는 입장만 되풀이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최근에도 "기다리는 것도 전략",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이 궁극적 목표", "남북관계 책임은 북한"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습니다.

이는 이 대통령 측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하나 같이 "과거 남북관계를 보면 임기 초반에 남쪽 새 정부를 길들이겠다는 차원에서 한국의 머리 위로 미국과 손잡고 해결한다는 '통미봉남'이라는 식의 종래 패러다임이 더 이상 통용되던 시대는 지났다"(이동관 대변인)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이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북한을 '동반자'나 '공존공영'하는 한 민족으로 여기지 않고 무조건 색안경부터 끼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이 이렇게 계속 고집을 피우다가는 남북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깊고 캄캄한 수렁 속으로 빠져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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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서로 묶이고 맺힌 것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 이종찬


꿈속에서 만난, 북한에 계신 어머님 말씀
   
"꿈에 네가 왔더라 / 스물세 살 때 훌쩍 떠난 네가 / 마흔일곱 살 나그네 되어 / 네가 왔더라 / 살아생전에 만나라도 보았으면 / 허구한 날 근심만 하던 네가 왔더라 / 너는 울기만 하더라 / 내 무릎에 머리를 묻고 / 한마디 말도 없이 / 어린애처럼 그저 울기만 하더라 / 목놓아 울기만 하더라"

문곡 김규동 선생님은 192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나 1947년 연변의대를 나온 뒤 1948년 평양종합대학교를 중퇴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님을 북에 두고 홀로 서울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때 선생은 곧 다시 뵐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철조망이 가로막는 바람에 어머님을 다시는 뵙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시는 북한에 있는 어머니, 지금은 돌아가셨을 그 어머니를 그리며 쓴 시입니다. 선생은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날 꿈에 어머니를 보게 되었다. 흰옷에 가냘픈 모습을 하고 아무 말 없이 손을 잡는 어머니…. 어머니는 또박또박 위 시를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꿈에서 깬 선생은 온통 눈물로 젖어 있었다고 합니다. 선생은 재빨리 연필을 찾아 어머니 말씀을 한 자도 놓치지 않고 종이에 적었습니다. 어머니 말씀을 옮겨 적은 선생은 다시 자리에 누웠습니다. 행여 어머니 모습을 한 번 더 볼 수 없을까 하고 말입니다. 이 시는 그때 옮겨 적은 어머니 말씀이라고 합니다.

이 시에 얽힌 이야기는 하나 더 있습니다. 선생이 이 시를 1972년 <한국일보>에 발표하려 했을 때 신문사 문화부장이 "지금 남북 서신 왕래가 불가능한 때인데 북한에서 편지가 왔다고 신문에 내도 괜찮을까요?"라며 "또 정보부에서 무슨 난리를 부리는 건 아니겠지요?"라고 우려 섞인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선생은 웃으면서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중으로부터 날아온 소식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안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은 이어 "만일 정보부에서 뭐라 할 것 같으면 김규동이 하도 발표를 강요하다시피 해서 낸 것이라 하시고 모든 책임을 저에게 미루세요"라고 못 박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남북분단은 이처럼 한 시인에게도 깊은 멍에가 되었습니다. 김규동 선생은 "8순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사가 거꾸로 흐르고 있으니,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어찌 좋은 일이 생기겠느냐"라며 "살아생전에 꼭 통일이 되는 그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이명박 정부도 북한에 대한 구태를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일천 만 이산가족 생각도 해야 합니다. 이제 보수주의자들도 핏줄끼리 서로 만나지 못하고 꿈속에서나 만나고, 죽어서야 만나야 한다는 것이, 일천 만 이산가족에게 얼마나 가슴 아프고 깊은 슬픔을 안겨주는 일인가를 뼈저리게 깨달아야 합니다.
#김규동 #남북관계 #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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