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식모'가 '국민누나' 로 불리는 까닭?

시인 이행자 시선집 <파랑새> 펴내

등록 2009.01.06 16:23수정 2009.01.0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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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행자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고 있는 시인 이행자 ⓒ 이종찬

▲ 시인 이행자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고 있는 시인 이행자 ⓒ 이종찬

 

날마다 흔들어 헹구면서도

못다 헹군 죄 많아

저리 아름다운 월미도 일몰 앞에서도

죄를 씻는다

 

그해 오월!

유인물 한 장

복사해 돌리지도 못하고

숨어서 시랍시고 끼적거린 그 치욕

1970년 11월 13일!

노동의 불꽃으로 부활한

전태일을 핑계 삼아

시인이 된 부끄러움

 

천지신명이시여!

내 영혼의 *거멀못을

어찌 씻김 하오리까?

 

-19쪽, '씻김굿' 모두

*거멀못/나무, 그릇 따위에 터지거나 벌어진 곳

 

시인 이행자는 이름 그대로 이 세상 고통을 짊어지고 가는 고된 행자(行者)다. 서울에서 독립운동가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편했던 다리를 절며 이 세상을 엿볼 때도 그랬다. 군사독재가 내미는 총칼이 서슬 퍼런 8~90년대 운동판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할 때도 행자였고, 나이 육순을 훌쩍 넘긴 지금도 변함없는 행자다.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기를 무척 좋아하는 그는 스님과 목사, 문학예술인, 인기가수에서부터 노동운동가에 이르기까지 '조건 없는' 사랑을 마구 쏟아 붓는다. 마당발, 혹은 국민 누나, 국민 언니가 그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시 쓰는 식모'라 불러주기를 바란다. 그만큼 정이 많고 낙천적이다.

 

그는 주변 사람이 어려운 일이나 궂은일을 당하면 참지 못한다. 누가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거나 초상이 나 상가에 가면 그 자리에 가장 먼저 그가 눈에 띠는 것도 그다. 그렇다고 그가 한 자리에 느긋이 앉아 손님 대접 받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 스스로 손님을 맞이하고 일일이 챙기는, 그야말로 식모대장이다.  

 

문단에서 '행자 누님'으로 불리는 그는 민가협과 유가협에서 오래 일했다. 그뿐이 아니다. 재야단체 기금마련을 위한 일일주점 행사라도 마련되면 후원티켓을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가난한 문학예술인들 호주머니를 탈탈 털게도 만들었다. 기억력도 아주 좋다. 환갑이 훨씬 지난 나이지만 옛 일을 떠올릴 때면 마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 삶이 한 편 시가 되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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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행자 시선집 파랑새 시인 이행자(63)가 지난 2004년 세 번째 시집 <은빛인연>을 펴낸 지 4년 만에 시선집 <파랑새>(바보새)를 펴냈다 ⓒ 이종찬

▲ 시인 이행자 시선집 파랑새 시인 이행자(63)가 지난 2004년 세 번째 시집 <은빛인연>을 펴낸 지 4년 만에 시선집 <파랑새>(바보새)를 펴냈다 ⓒ 이종찬

"동해였다 / 애인의 부고 / 기다리며 사는 여자 / 황량한 겨울들판 걸어와 / 바다 향해 서 있다 / 나 / 곡비 찾아 예까지 온 거다 / 산더미 같은 파도가 / 으르렁대며 / 황토빛 눈물로 / 통곡해주고 있다"-49쪽, '곡비' 모두 

 

1990년 제3회 <전태일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 이행자(63)가 지난 2004년 세 번째 시집 <은빛인연>을 펴낸 지 4년 만에 시선집 <파랑새>(바보새)를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전태일, 김진균, 박현채, 신경림, 구중서, 이수호, 현공스님 등, 한 시대를 이끈 수많은 사람들이 한 편 시가 되어 은빛 바다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모두 4부에 실린 '손! 선생님 손' '일지암에 군불을 지피며' '우전 반세기' '머루주를 마시며' '겨울강은 흐르고' '숫눈 같은 사람' '고 박현채 선생님을 그리며' '편지로 쓰는 시' '내게 온 너에게' 연작 8편, '물왕 저수지에서' '은빛 바다 은빛 소년' '죽지 못해 미치지도 못하는' '아름다운 이에게' 등 75편이 그것.

 

시인 이행자는 이번 시집 앞머리에 "핏줄이라면 부르르 떠는 내 오라버니와 그의 가족들에게 (이 시집을) 바칩니다"라는 짤막한 글만 남기고 있다. 이는 이 시집에 실린 시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이 다 담겨 있는데 굳이 '시인의 말'이라 이름 붙여 구태의연한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에 / 못질을 한 뒤에도" 들릴 것만 같은 그 말 "병신새끼"

 

흔히들 그저 들어넘기는

"병신 새끼"가 내게는 늘

"병신의 새끼"라는

비수로 꽂히곤 했다.

불혹이 지날 때까지

아이를 기르고픈 유혹에 시달리면서도

"병신 육갑한다" 소리에 자지러져

병신의 새끼 가르지 않았지만

 

-21쪽, '지천명의 비망록' 몇 토막

 

글쓴이가 어릴 때, 다리를 심하게 절어 늘상 목발을 짚고 다니는 꼬치동무가 한 명 있었다. 아기 때 걸린 소아마비를 미처 치료를 하지 못한 탓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글쓴이와 한 반이었던 그 동무는 학교에 가기를 몹시 싫어했다. 그 동무 스스로 허리에 책보를 질끈 동여매고 목발을 짚고 걷기가 몹시 힘들었던 탓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절뚝절뚝 목발을 짚고 걷는 뒷모습이 너무나 우스꽝스러워 지나치는 아이들마다 저마다 손가락질을 하며 놀려대는 것이 더 무섭고 괴로웠다. 그때 그 동무가 가장 싫어했고 가슴 아파 했던 말이 '병신새끼'였다. 하지만 우리는 놀이를 하다가 누군가 조그만 실수라도 하게 되면 '병신새끼'라는 말을 쉬이 내뱉었다.

 

그래도 자꾸 실수를 하면 "병신 육갑한다"는 말도 스스럼없이 내뱉었다. 그때 '병신새끼'란 말은 흔히 쓰는 '야, 임마'와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목발을 짚고 다니는 그 동무는 우리가 흔히 내뱉는 '병신새끼'란 말이 가슴에 비수로 꽂힌다고 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병신새끼'란 말이 튀어나오면 그 동무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먼저 살피곤 했다.   

 

이행자 시인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한 쪽 다리를 절고 있다. 아마 시인도 주변 사람들이 '병신새끼'라 하는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던 모양이다. 시인이 '병신새끼'를 '병신의 새끼'로 여긴 것도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 그늘이 컸기 때문이리라. 오죽했으면 시인이 "관에 / 못질을 한 뒤에도 / 이 두 마디는 / 나를 놓아주지 않고 / 시인보다 / 앞장을 설 것이다!"라고 절규처럼 내뱉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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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자 시집 이행자 시선집 <파랑새>는 'MB악법' 위에 새똥 찍찍 싸며 나는 우리시대 파랑새를 그리고 있다 ⓒ 이종찬

▲ 이행자 시집 이행자 시선집 <파랑새>는 'MB악법' 위에 새똥 찍찍 싸며 나는 우리시대 파랑새를 그리고 있다 ⓒ 이종찬

 

홍어찜 보고, 상한 음식 판다고 호통 친 신경림과 구중서

 

"얌마!"

"짜샤!"

환갑이 지났어도

모두들 동심여선이다

시인도 박사도 교수도

우정 반세기 앞에서 맥을 못춘다.

 

-30쪽, '우정 반세기' 몇 토막

 

이 시에 나오는 "얌마!" "짜샤"는 칠순을 훌쩍 넘긴 시인 신경림과 문학평론가 구중서가 만날 때마다 내뱉는 '살가운 인사' 말이다. 사실, 글쓴이도 지천명이라는 나이 오십을 훌쩍 넘겼지만 정말 살가운 동무를 만나면 "일마" 이거 어쩌구 저쩌구, "절마" 저거 어쩌구 저쩌구, "글마" 그거 어쩌구 저쩌구, 한다. "일마" "절마" "글마" 해야 살갑기 때문이다.

 

지난 해 가을이었던가. 하루는 고향에 있는 고교 동창생한테서 손전화가 왔었다. 동창회 체육대회가 며칠 몇 시에 열리니 꼭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근데, 첫 마디가 "야! 일마야, 이 싸가지 하나도 없는 문디 자슥아!"로 시작하여 끝 마디가 "요번에도 안 내려오모 서울로 쳐들어가가꼬 반쯤 지기삘끼다, 알것제? 이 문디손아!"였다.  

 

어이가 없는 게 아니라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살갑고도 정겨운 말이었다. 그날, 글쓴이는 손전화를 끊고서도 한동안 넋 나간 사람처럼 혼자서 마구 킥킥거렸다. 이 시에 나오는 신경림과 구중서가 나누는 홍어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한때 홍어찜을 처음 대한 신경림과 구중서는 주인을 불러 호통을 친다.

 

"중서가 말야 스무 해쯤 전엔가 / 이 집에서 홍어찜이 나왔는데…… 주인을 / 불러 한다는 소리가, 상한 음식을 판다고 / 호통을 치는 거야……". 그때 구중서가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마디 툭 내던진다. "칠십 몇 년도드라… / 신경림이가 말야 홍어찜이 나오니까 / 주인에게 막 경을 치는 거야. 상한 음식을 / 팔면 어쩌느냐고…". 살가운 벗이란 이처럼 흉허물을 터놓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떠넘기기도 하는 재미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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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행자 이행자의 시는 이 땅의 깨어 있는 삶과 함께 하고 있다 ⓒ 이종찬

▲ 시인 이행자 이행자의 시는 이 땅의 깨어 있는 삶과 함께 하고 있다 ⓒ 이종찬

 

나약한 지식인들 일깨우는 기상 나팔소리

 

한여름에도

오소소 소름끼치는

한계령에서

온 몸뚱이로

겨울 맞고 싶다

꽝꽝 얼어붙은 새벽을

네 품에 기대어

맞고 싶다

 

-62쪽, '바람 세차니 한계령 가고 싶다' 몇 토막

 

글쓴이가 이행자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1980년 허리춤께 민족문학작가회의(지금 한국작가회의) 사무실에서였다. 그때 시인은 유가협 후원회에서 일하며, 후원회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하루는 시인이 사무실에 나타나 글쓴이에게 대뜸 유가협 후원회원 가입서를 내밀며 무조건 적어라 했다.

 

그때부터 매달 일정한 날자가 되면 어김없이 시인이 나타나 회비를 거두어가곤 했다. 어쩌다 돈이 없을 때에도 시인은 마치 고리대금업자처럼 그 다음 날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곤 했다. 시인과 글쓴이는 그렇게 만나 여러 행사에 함께 쫓아다니며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들기 시작했다.

 

"한여름에도 / 오소소 소름끼치는 / 한계령에서 / 온 몸뚱이로 / 겨울 맞고 싶다"는 우리 시대 누님 이행자 시인. "봄이면 / 밖으로 마음 열고 / 가을이면 / 안으로 마음 여는 / 한계령 숲에 / 거름이 되고 싶다"는 시인. 시인은 요즈음 이명박 시대를 맞아 '시 쓰는 식모'에서 '국민누나' '국민 언니'로 거듭나고 있다. 이번에 펴낸 시집 제목을 <파랑새>라 이름 붙인 것도 우리시대 어렵고 외진 곳에 '희망의 촛불'을 물어 나르기 위해서다. 

 

이행자 시선집 <파랑새>는 'MB악법' 위에 새똥 찍찍 싸며 나는 우리시대 파랑새를 그리고 있다. 그 파랑새는 재야인사들이자 스님, 목사, 문학예술인, 노동자 농민들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지난 10년 동안 민주화란 포근한 둥지에 안겨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약한 지식인들에게 귀 따가운 기상나팔을 불고 있다.

 

시인 이은봉(광주대 문창과 교수)은 "이행자의 시는 이 땅의 깨어 있는 삶과 함께 하고 있다. 그는 내게 늘 국민모성으로, 좀더 자세히 말해 국민 누나로 존재한다"고 평했다. 시인 박남준은 "꽃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사랑의 강물을 퍼올리는 사람,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오직 한 길, 세상을 따뜻한 모성으로 껴안고 왔던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시인 이행자는 1942년 서울에서 독립운동가의 딸로 태어나 1990년 제3회 '전태일문학상' 시부문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들꽃 향기 같은 사람들> <그대, 핏줄 속 산불이 시로 빛날 때> <은빛 인연>이 있으며, 산문집으로는 <흐르는 물만 보면 빨래를 하고 싶은 여자> <시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 사람아>를 펴냈다.

 

2006년에는 강민과 함께 엮은 시화집 <꽃, 파도, 세월>을 펴낸 그는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후원회 부회장, <전태일문학상> 운영위원 등을 지냈으며, 지금은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2009.01.06 16:23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파랑새

이행자 지음,
바보새, 2008


#시인 이행자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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