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어떤 종교를 믿으세요?"

등록 2009.01.16 12:01수정 2009.01.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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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어떤 종교를 믿으세요?"


수업시간(창녕청소년문화의 집 방과 후 논술아카데미)에 뜬금없이 한 아이가 불쑥 물었습니다. 녀석, 하라는 공부는 뒷전으로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 연신 답변을 기다린다는 표정입니다. 하는 짓은 밉상스러워도 눈망울이 참 예쁜 아이입니다. 

그래서 너는 어떤 종교를 믿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녀석보다 먼저 다른 아이들이 나서서 이야기 꼬리를 물고 듭니다. 절에 간다는 아이, 교회 다닌다는 아이, 성당에 나간다는 아이, 생각보다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신심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때 묻지 않은 순정한 마음으로 착실하게 신앙을 쌓는 것이야말로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두터운 신앙은 참 좋은 향기를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게 합니다.

"근데 얘들아, 아직까지 나는 어느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어. 그런 까닭에 너희들한테 종교에 대해서 달리 얘기해 줄게 없을 것 같구나. 그런데 나의 치우친 생각이련지 모르겠으나, 어떤 종교든 그에 맞게 신앙생활에 충실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세상을 좋게 사는 것 같더라.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물론 아이들의 대답은 다 달랐습니다.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어떤 종교를 가져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종교를 믿는 행위가 하나의 틀 안에 갇혀버리게 되면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종교를 들여다보아도 그 종교 특유의 제도나 형식에 노예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더러 종교를 가진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믿는 종교만이 마치 절대적인 것처럼 추앙하고 있어서 씁쓸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적대감까지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맞아요. 지난번 시장에서 보니까 양다리가 없는 아저씨가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제가 아는 분은 유명한 종교인은 그냥 못 본 체하고 지나가던데요?"
"나도 봤어요. 그런 경우를요."


아이들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아이들이 보는 세상은 있는 그대로  봅니다. 그렇기에 어느 것 하나 덧붙이거나 애써 꾸며대지 않습니다. 설령 거짓부령을 한다고 해도 금방 드러나고 맙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의 입은 항상 좋은 말만 하기 때문이지요. 지천명의 나잇살에 열 서넛 살 아이들과 이렇게 토닥거리고 있다는 게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닙니다. 

"그랬니? 참 고약한 모습을 보았네. 하지만 어느 사람이든 그 모습을 보고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야. 너희들 생각이 맞아. 그런데 그 분이 왜 그냥 지나쳤을까? 먼저 못 본 척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당장에 급한 일로 바빴다든지, 깜빡 딴 일을 생각하면서 걷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


아이들,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더 이상 토를 달 까닭이 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누구에게나 잘잘못을 따져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져야합니다. 그래서 제가 맡고 있는 논술교실에서는 많이 따져서 생각해 보게 합니다. 정작 글을 쓰는 데는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이쯤이면 오늘 학습주제는 상당히 벗어난 지점입니다. 물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런 수업진행에 크게 만족합니다.

결국, 오늘 논술수업 주제는 '선생님, 어떤 종교를 믿으세요?'였습니다. 사족이 길었네요. 한 사람의 종교관은 지극한 정성과 갈망된 마음, 믿음을 확신할 수 있을 때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종교는 배워서 얻어지고 아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는 실천하는 삶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항간에 자신이 믿는 종교 이외의 모든 종교를 배척하는 태도는 신실한 종교인으로서 참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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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손 종교인이라면 신실한 신앙으로 참다운 모습을 보일 때가 아름답다. ⓒ 김민수


신실한 종교인으로서 참다운 모습을 보여야

그렇기에 순수하게 자라는 아이들에게 맹목적으로 하나의 종교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도 가 보고, 성당도 찾아보고, 절에도 다녀 보아 자기 마음에 드는 종교를 믿도록 안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부모가 믿으니까, 집안 대대로 믿어왔으니까 당연히 믿어야 한다는 것은 아이의 주체적인 품성의 씨앗을 짓밟는 일입니다. 저는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을 뿐더러 어떤 종교를 믿으라고 권하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의 결정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특정한 종교를 믿으라고 권유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집사나 목사, 신부님이나 수녀님, 스님과 두텁게 교유하고 지냅니다. 집안에 장로를 맡고 계신 분도 있습니다. 자신의 종교가 소중하다면 다른 종교도 신실하다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어떤 종교를 믿건 따져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구도(求道)를 위해 수행자적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믿음이라면 그것으로 자족해야 합니다.

"얘들아, 오늘 논술수업은 우리가 맛보아야할 주제와는 많이 벗어났다. 하지만 상관은 없어. 어쨌거나 다들 열심히 토론했으니까 만족해. 그럼 이번 시간 수업을 정리해 보자. 지금까지 토론했던 주제가 '사람들은 왜 신앙생활을 할까?'였으니까 그에 대한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는데…."
"네, 제가 먼저 얘기 할게요.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이유가 좀더 착하게 살기 위해선 것 같아요? 또 우리 주변에서 보면 신앙생활에 충실한 사람들이 보통사람들보다 착하게 살고 있잖아요. 제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아요."
"응, 혜민이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참 좋은 생각이다. 또 다른 생각은 없나요?"

"저는요, 혜민이와 생각이 달라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자기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서 종교를 믿는 것 같아요. 저희 할머니만 봐도 그래요 늘 손자들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빌고 있거든요."
"그래, 호성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네 생각도 좋아.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기는 해. 하지만 호성아,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가족을 생각하는 게 결국은 우리 사회 전체를 온전하게 만드는 바탕이 되는 게 아닐까? 또 네 할머니는 왜 손자들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비는 걸까? 너흴 당신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련?"
"헤헤헤, 선생님 말씀을 알겠지만, 제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우리 창녕청소년문화의 집 논술수업은 이렇게 끝났다.
#종교 #신앙 #기도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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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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