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신나게 '쿵푸'하자!

강북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함께한 계절학교 이야기 ②

등록 2009.01.18 10:13수정 2009.01.18 10:1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계절학교 셋째날부터는 생명평화연대가 터 잡고 있는 인수동 마을 곳곳에서 진행하였다. 남자 아이들 몇은 오전에 학교에서 방과후 배움터 수업을 듣느라 늦게 도착했다. 착실한 여자 아이들을 데리고 예정된 시간에 일정을 시작했다. 매일 오전, 첫 시간은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열었다. 아이들은 처음 부르는 노래였지만, 음정도 금세 잡고, 가사에 빠져들며 다시금 하나가 되고 있었다. 주옥 같은 가사를 저절로 음미하며.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임을 되새기고, “별 헤는 마음으로 없는 길 가기로” 다짐했다. 또한 "너무 빨리 혼자서 앞서 가지 않기"로 약속하고, "저 뒤에 앉아서 한숨 돌리는 사람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배웠다. 무한 경쟁 시기에 시험 공부하며 "밤새 헤메일지라도 숲사이로 아침은 온다"는 사실에 위로를 얻으며, 성적표에 "눈살 찌푸리며 한숨짓지만 오늘도 축복받는 새생명이 있고 아직 우리에겐 살 같은 벗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흔히 볼 수 없는 "넓은 세상 볼줄 알고 작은 풀잎 사랑하는 아이, 미운 사람 손을 잡고 사랑 노래 불러주는 아이, 빈주머니 걱정되도 사랑으로 채워주는 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누가 따로 시키지는 않았지만 침묵으로 혹은 노래로 자신과 그리고 동지들과 함께 새끼 손가락을 걸며 마음을 다잡았다.

  

a

고전 공부 매일 오전 고전 공부로 머리를 열었다. 공자왈~ ⓒ 생명평화연대

▲ 고전 공부 매일 오전 고전 공부로 머리를 열었다. 공자왈~ ⓒ 생명평화연대

 

노래로 마음을 연 후에, 고전 공부로 머리를 채웠다. 쿵푸에 대해 가르치는 경전의 짧은 문구를 배우고 함께 암송한 것. 사서 중 공부에 관한 가르침이 있는 경전을 뽑았더니 공교롭게도 모두 1장에 있었다. 그만큼 선조들도 쿵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나보다. 대학, 논어, 중용의 주석과 해설을 함께 읽으며 감상을 나누고, 암송으로 마무리했다. 고전의 암송은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긴 세월의 힘과 내용적 깊이의 내공이 아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도전을 주기에 충분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기쁨을 누리며, 덕을 밝히고 친구들을 새롭게 만나고 지극한 선을 이루기로, 하늘이 명한 성품을 따르는 수련을 하기로 다짐했다.

 

음식은 먹여주고, 스케이트는 밀어주고!

 

‘보글보글’은 요리하는 시간이었다. 삼색 주먹밥, 라뽂이, 야채 샐러드, 치즈 햄 토스트를 만들기로 하고 4조로 나누어 만원으로 재료를 구입해왔다. 석빈이는 마트에서 고구마 가격을 깍아내는 노련함을 뽐냈다. 고물가 시대라서 돈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아이들은 계획을 수정하고 절충하여 나름대로 만족스런 장보기에 성공했다. 성원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요리를 하는 거란다. 아이들은 서툴지만 정성스레 만들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경험을 통해 살림의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송이는 자기가 만든 음식을 맛을 보더니 바로 옆 조의 친구에게 가서 먹여 주었다. 이런게 더불어 사는 것 아닐까. 내 배 채우기에만 급급했던 나는 송이에게 한수 톡톡히 배웠다.

 

넷째날 오후에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기획해서 ‘한껏맘껏’ 놀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무엇을 하며 놀고 싶냐고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피시방, 노래방에 가고 싶단다. 그런 곳 말고, 우리가 더불어 얼굴 보고 몸으로 부대끼며 놀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더니, 치훈이가 스케이트장을 말했다. 순간의 정적이 흐르더니 반대하는 아이 한명 없이 그렇게 정했다. 태릉 국제 스케이트장은 정말 넓었다. 그래서 더욱 한데 묶여 놀 수 있는 놀이가 필요했다. 몇가지 놀이를 고안해 냈다. 링크에서 얼음땡으로 몸을 풀고, 이어달리기로 한껏 고양시키고, 인간 컬링에서 절정을 이루기로.

 

컬링은 볼링과 비슷한 빙상 경기인데, 인간 컬링은 둥근 돌 역할을 사람이 하는 게임이다. 두명이 한아이를 손으로 밀어주어 목표지점에 멈추게 하고, 상대팀을 많이 밀어내는 팀이 이긴다. 목표지점에 선 아이는 상대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 정직하게 반응해서 밀려나야 하는데, 아이들은 억지로 버티거나 피하기 일쑤였다. 그놈의 승부욕 때문에. 그래서 게임은 실패했다. 안타까웠지만, 기대치를 낮추고 다른 기준으로 바라봐야 했다. 아이들은 ‘기’가 위치하는 신체부위가 어른보다 위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꽤 지나도 지칠 줄 몰랐다. 그 넘치는 기운으로 타는 요령을 몰라 총총걸음을 하며 힘들어하는 친구의 손을 잡고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아이들의 아름다운 행동에 감탄하며 그렇게 그렇게 평생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다.

     

a

스케이트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는 밀어주고! ⓒ 생명평화연대

▲ 스케이트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는 밀어주고! ⓒ 생명평화연대

 

글과 몸으로 표현하는 쿵후 배워

 

이틀에 걸쳐 두 시간씩 글쓰기와 연극 수업이 있었다. 강사는 아름다운마을신문 편집장 주재일 기자님과, 마을학교 선생님이자 신명나게 놀자 회원인 김종성 선생님. 두 분 다 둘째라면 서러워할 배테랑이셨다. 주 기자님은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인지, 신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좋은 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창의적 소재와 신선한 관점, 문장 기술도 중요하지만 국어를 영문법처럼 쓰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셨다. 아울러 폭력적인 글과 신문에 대해서도 알려 주었는데, 강의를 열심히 들은 경진이의 눈망울에서는 일종의 분개심도 느껴졌다. “집에서 구독하는 재벌 언론과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포털을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언론과 포털에 대한 생활 태도를 조금씩 바꾸어 나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연극 수업을 통해서는 또 다른 내가 되어 이해심, 협동심, 예술적 감성 등을 키울 수 있었다. 피지배가 내면화될수록, 자신을 표현하는 게 어려운 법이다. 자기가 아닌 타인을 연기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창작 연극의 형식은 자유지만, 주제는 정해주었다. 등장인물들의 기존 갈등을 각색해서 화해로 새로운 결론을 내는 것. 이에 기발한 기획이 쏟아졌다. 백설공주가 마녀를 용서하고, 콩쥐 엄마가 콩쥐에게 용서를 구하고, 여러 이야기를 섞어서 킹콩이 배트맨과 싸우다가 성냥팔이소녀 덕에 화해하는 내용도 나왔다. 기존의 공교육에서는 아이들의 창진성과 발랄함이 증대되기 힘들지만, 이런 기획에서는 아이들의 창조 능력이 유감없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자신이 기획한 연기를 공동체에서 실현하면서 유기적으로 섞이는 법과 마음껏 연기하고 표현하는 법도 배운 듯 했다. 문숙이는 연극이 처음이라 쑥스럽고 어색했지만, 다른 이와 함께 다른 사람이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해서 좋았다고 했다.

  

a

연극 교실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즐거웠다 ⓒ 생명평화연대

▲ 연극 교실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즐거웠다 ⓒ 생명평화연대

 

함께 살길 기대하며

 

마지막 날은 차분히 둘러 앉아 일주일을 평가하고, 방학 계획을 나누었다. 일주일동안 함께한 우정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지켜본 애정으로 미래의 계획을 함께 꾀해본 것이다. 이때 매일 마지막에 작성한 하루재기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하루 일정을 마무리 하면서,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힘들었는지 직접 글로 남겨서 피드백 자료가 되기도 했고, 추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었다. 하루재기를 근거로 일주일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사건과 시간을 함께 다듬어 보았다. 개인의 회상은 추억이지만, 공동체의 기억은 역사가 될테니! 나아가 남은 방학의 구체적인 계획을 서로 상의하며 조율하기도 했다. 자기 앞길은 자기가 똑똑히 챙겨야 성공하는 시대에 우리는 서로 함께 살길을 모색한 것이다.

 

대망의 갈무리는 롤링페이퍼로 장식했다. 종이 한 장에 한명의 이름을 적고 돌려가며 편지글을 써주는 순서였다. 꼼꼼히 길게 생각하며 쓰는 아이도 있는 반면, 상투적인 인사말 외에 특수하고 적합한 이야기를 쓰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일주일을 함께 보내면서 배우고 놀고 이야기하고 먹고 인사했다. 평화롭고 자유롭고 유쾌하고 우애있게 사는 공동체 생활 안에서,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 사는 길을 닦은 것이리라. 나 또한 진정으로 아이들 덕분에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배운 바대로 쿵푸하며 (어느 노래가사 말마따나)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빛나고 있는 한, 진실이 살아 있는 한" 말이다.

2009.01.18 10:13 ⓒ 2009 OhmyNews
#계절학교 #생명평화연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구순 넘긴 시아버지와 외식... 이게 신기한 일인가요?
  2. 2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 대전 유흥주점 간 정준호 집행위원장
  3. 3 '윤석열 대통령 태도가...' KBS와 MBC의 엇갈린 평가
  4. 4 청보리와 작약꽃을 한번에, 여기로 가세요
  5. 5 5년 뒤에도 포스코가 한국에 있을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