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600년은 기본!

부평초등학교 주변 ... 부평도호부청사, 욕은지, 어사대, 600살 먹은 은행나무까지

등록 2009.01.20 08:50수정 2009.01.20 08:50
0
원고료로 응원
play

그곳에 가면 600년은 기본! 부평초등학교 지역문화재 천지!! ⓒ 이장연

▲ 그곳에 가면 600년은 기본! 부평초등학교 지역문화재 천지!! ⓒ 이장연



계양산 뻗어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부평초등학교

 

인천 시민 여러분? 계산동 계산삼거리 인근의 부평초등학교(http://www.ibp.es.kr/)를 아시나요? 1899년 '부평공립소학교'로 개교한 이래 95회 졸업과 21,7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부평초등학교, 그곳에 가시면 600년은 기본인 지역문화재를 무려 4개나 만나볼 수 있습니다. 징매이고개 너머 계양도서관을 오가는 길에 둘러볼 수 있는 곳이라 맘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날이 풀린 오늘(19일)에야 찬찬히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a

부평초등학교는 계산삼거리에서 골목으로 접어들면 얼마가지 않아 부평초교가 나온다. ⓒ 이장연

부평초등학교는 계산삼거리에서 골목으로 접어들면 얼마가지 않아 부평초교가 나온다. ⓒ 이장연

 

부평초등학교는 본관과 신관, 별관 건물이 넓은 운동장을 가운데 두고 자리하고 있었는데, 학교부지가 꽤 큰 편이었습니다. 파란 겨울 하늘과 맞닿은 계양산도 본관 건물 뒤로 건너보였는데, 교가 첫마디가 "계양산 뻗어내려 양지 바른 곳"이라 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겨울방학인데도 몇몇 학생들이 학교에 나와 있더군요.

 

a

부평초등학교 ⓒ 이장연

부평초등학교 ⓒ 이장연

 

팔작지붕이 멋드러진 부평도호부청사(富平都護府廳舍)

 

한낮의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아 꽁꽁 언 땅을 녹이는 운동장의 한편에는, 두꺼운 창살로 둘러쳐진 시도유형문화재 제2호(계양구) 부평도호부청사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부평도호부청사는 관아건물 중 하나로 '부평부읍지'에 의하면 중심업무를 보던 동헌, 외국사신이 묵던 숙박시설인 객사, 죄를 다스리던 포도청 등 수많은 건물이 있었다 합니다.

 

그러나 이곳에 초등학교를 세우면서 현재 건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을 헐어버렸다고 하네요. 지금 있는 건물은 원래 ㄱ자형이었으나 1968년 현재 위치로 옮기면서 ㅡ자형으로 개조했다 합니다. 학교 때문에 문화재를 헐어버리고 개조까지 했다니 황당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암튼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동헌이나 현감의 살림채였던 내아로 추측된다 합니다. 규모는 앞면 6칸, 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건물 앞에는 긴 돌을 이용해 단을 쌓고 네모난 형태로 연못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는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연못이라 합니다.  

 

a

부평도호부청사 전경 ⓒ 이장연

부평도호부청사 전경 ⓒ 이장연

 

a

두꺼운 창살로 부평도호부청사 건물과 연못을 둘러쳤다. ⓒ 이장연

두꺼운 창살로 부평도호부청사 건물과 연못을 둘러쳤다. ⓒ 이장연

 

a

창살 사이로 카메라를 넣어 그 안의 모습을 촬영했다. 네모난 연못은 조선시대 연못의 전형이라 한다. ⓒ 이장연

창살 사이로 카메라를 넣어 그 안의 모습을 촬영했다. 네모난 연못은 조선시대 연못의 전형이라 한다. ⓒ 이장연

 

a

살림채로 사용했을 것이라 한다. ⓒ 이장연

살림채로 사용했을 것이라 한다. ⓒ 이장연

 

a

부평도호부청사 ⓒ 이장연

부평도호부청사 ⓒ 이장연

 

a

팔자지붕이 멋드러지다. 하지만 학교를 짓기 위해 문화재를 헐어버렸다니 기가찬다. ⓒ 이장연

팔자지붕이 멋드러지다. 하지만 학교를 짓기 위해 문화재를 헐어버렸다니 기가찬다. ⓒ 이장연

 

정조가 활을 쏘고 손을 씻었다는 어사대(御射臺)와 욕은지(浴恩池)

 

부평도호부청사 앞 연못은 욕은지(문화재자료 제1호, 계양구)라 하는데, 원래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조선 고종 24년에 새로이 고쳐 지으면서 현재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합니다. 돌을 쌓아 가로 18m, 세로 18m의 크기의 연못의 가운데에는 둘레 7m의 돌산을 만들어 풀과 나무를 심어놓았고, 돌다리를 만들어 남쪽과 연결해 놓았습니다. 연못 동쪽 하단의 돌에는 고종 24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새긴 돌이 선명히 보입니다.

 

a

욕은지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 이장연

욕은지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 이장연

 

욕은지는 정조가 김포의 장릉을 참배하고 부평을 경유해 생부를 모신 수원 현륭원에 가다, 부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이곳(어사대, 문화재자료 제3호)에서 활을 쏘고 손을 씻었다 합니다. 장릉은 지난해 늦여름 자전거여행 첫째날 잠시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a

정조가 활을 쏘았다는 어사대 ⓒ 이장연

정조가 활을 쏘았다는 어사대 ⓒ 이장연

 

겨울잠에 빠진 600살 먹은 은행나무 두 그루

 

부평도호부청사 옆과 부평초등학교 신관 건물 앞에는 수령이 600살은 족히 넘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중 부평도호부청사 옆의 은행나무는 시도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높이는 약 25m, 둘레는 10m 정도인데 본래 부평도호부 관청건물의 주변 환경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풍치목으로 심었던 것이 오랜 세월 동안 살아왔다 합니다. 신관 건물 앞의 은행나무는 두 갈래 큰 줄기가 마치 새총다리처럼 뻗어 있었는데, 학교 건물보다 키가 더 커 보였습니다. 이 은행나무는 학교에서 보호수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a

600살 은행나무, 오랜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켜왔다. ⓒ 이장연

600살 은행나무, 오랜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켜왔다. ⓒ 이장연

 

a

신관 건물 옆 은행나무 ⓒ 이장연

신관 건물 옆 은행나무 ⓒ 이장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1.20 08:50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부평도호부청사 #욕은지 #어사대 #은행나무 #문화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3. 3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4. 4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