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 마스터 키튼에게 배워라

[주장]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기자들이 앞장서라

등록 2009.02.01 14:40수정 2009.02.0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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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만화를 즐겨봤던 둘째 아이는 지금은 좋은 만화를 고르는 데 가히 수준급이다. 만화라고 무조건 막지 않았던 게 그런 시각을 길러주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나 보다. 덕분에 나도 가끔씩 좋은 만화에 푹 빠져서 아들아이와 함께 밤을 꼬박 새우곤 한다. 얼마 전에는 그 애가 추천해준 만화를 보다가 갑자기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아주 드문 체험이었다.

 

잃어버린 꿈의 세계를 찾아다니는 상상력이 풍부한 탐정, 마스터 키튼! 그는 과학, 종교, 신화, 역사 등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명철한 해결사로 인간을 불평등과 억압, 절망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모든 음모에 맞서 당당히 싸우는 주인공이다. 그는 우리의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주면서 독자를 진한 감동으로, 인간성 회복의 길로 안내한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특히 나를 사로잡았던 내용은 북 아일랜드의 IRA 한 여성투사가 노상에서 사살되는 사진 한 장을 선정하는 데서 드러나는 한 신문사 편집국장의 투철한 기자윤리다. 극히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이 에피소드가 그토록 나를 전율하게 헸던 것은 요즘 떠들썩한 한국 언론의 추악함에 식상한 터라서 더욱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같은 사진이라도 총구멍 투성이인 시체 사진이 훨씬 더 리얼하고 적나라했을 것이다. 기자들이 현장에서 짝은 사진을 구했다고 좋아할 때 편집국장은 "이렇게 잔인한 사진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자네들에게는 기자윤리라는 게 도대체......"하고 나무라며 "기사에는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사진을 실어"하고 지시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북 아일랜드의 현실을 생각하면 IRA가 단순한 테러리스트라고 보기는 어렵다. 17세기 북 아일랜드에는 계속 이주민이 몰려들었고 영국 왕은 아일랜드를 착취했었다. 그들에게 구원은 IRA밖에 없었다. 경쟁사의 신문들은 그 여자의 잔혹한 시체사진을 실어 하루 10배 이상의 매상을 올렸다.

 

그러나 그 국장은 키튼 탐정과 함께 사건 현장을 찾아가서 평화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였던 그녀가 출감 후 휴가를 보내러 왔다가 사살되었다는 그녀의 결백을 입증해냄으로서 경쟁사의 추격을 물리친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인터뷰하지 못했던 굉장한 손님,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던 그녀의 유일한 가족 어머니가 편집부를 찾아와 IRA와 정부가 한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하며 덧없는 복수가 모두 끝나기를 바라는 중대한 발표를 이 신문에게만 독점하게 한다.

 

이 신문사를 선택한 어머니가 국장에게 남긴 한 마디. "다른 신문들이 모두 딸의 시체를, 그 가운데서도 가장 처참한 모습을 실었지만 당신 신문만은 그 애 생전의 모습, 제일 예쁘게 나온 사진을 실어주었어요." 진실한 사람의 행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빗장을 열게 만든다.

 

좁은 땅에 우후죽순처럼 수도 없이 늘어서 있는 언론사들. 그 언론사에 몸담고 있는 언론인들이 기자윤리에 입각해서 모든 사건을 바라보고 보도한다면 세상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사회의 목탁이라고 하는 언론이 가장 부패한 것은 아닌가 싶어 절망하고 또 절망한다.

2009.02.01 14:40 ⓒ 2009 OhmyNews
#언론 #기자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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