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문화 키워드는 '반성'이다

'반성' 키워드로 본 2009년 벽두의 책과 영화

등록 2009.02.12 17:46수정 2009.02.1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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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하지 못한 반성을 '문화'가 요구하다

 

고대 중국에는 병에 걸리면 신께 엎드려 용서해 달라고 싹싹 빌었던 풍습이 있었다. 병이 찾아오는 이유는 안 아픈 동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거나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동안 곰곰히 지난 날을 반성하고 잘못을 빌어야 할 사람을 찾아가 진정으로 사과하고 나면 병이 낫는다는 오래된 풍습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년째 독감을 앓고 있는지라 이런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고심이 깊어진다. 죄 많은 인생을 살아서인지 앓아야 할 것도 반성할 것도 많다.

 

세계 금융 위기가 실생활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lay-off(일시적 해고)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다. 환경파괴는 극단으로 치달으며 해마다 수백만 명의 재난자를 양산해 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교토의정서를 휴지조각처럼 여겨 왔던 미국이 정권교체 이후에 이를 진지하게 검토한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반노동자 정책이나 신자유주의 노선, 월스트리트 시스템에 대한 광범위한 반성의 물결이 전 미국을 뒤덮고 있는 현실상황이다. 걔중에는 교묘한 선전효과를 노리는 정치적 제스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돌아보지 않고서는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절박한 공감대가 생긴 것만은 확실하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선거 때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747공약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서 반성하는 이도 없고 문제제기를 하는 이도 없다. 7% 성장을 달성하겠다고 했는데 도리어 -3~-4%까지 경제성장률이 떨어졌는데도 경제정책에 별 문제가 없다는 오만함은 변함없다. 심지어 사람이 죽었는데도 유감 표명 하나 없고 죽은 사람의 동료와 유족들을 잡아가두고 시체를 몰래 부검해버리는 안하무인의 세태가 사회 지도층에 만연해 있다. 사람 몸으로 따지면 나라가 큰 감기도 아니고 폐렴에 합병증까지 도졌는데도 돌아보기는커녕 앉아서 쉴 줄도 모른다.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반성할 줄 모르는 가운데 문화계에서 '반성'을 벽두의 화두로 꺼냈다. 사회가 하지 못한 반성을 '문화'가 요구한 것이다.

 

반성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워낭소리> 롱런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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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이 가장 아끼는 장면. 소설가 펄 벅이 한국에 와서 사람이 소의 짐을 나눠 지고 오는 장면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고 감독은 덧붙였다. (시사IN 인터뷰 중에서) ⓒ 스튜디오느림보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이 가장 아끼는 장면. 소설가 펄 벅이 한국에 와서 사람이 소의 짐을 나눠 지고 오는 장면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고 감독은 덧붙였다. (시사IN 인터뷰 중에서) ⓒ 스튜디오느림보

 

늙고 병든 농부와 그보다 더 고물이 돼 버린 소의 정직한 삶을 그린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개봉 28일 만에 4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난리가 났다. 왜 사람들이 <워낭소리>에 끌리는 것일까. 뻔한 대답이지만 영화를 잘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독립 다큐는 감독의 작가주의가 너무 강조되다 보니 대중과 시선을 마주칠 새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공중파에서도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과 노하우가 깊어졌고 극장판 다큐멘터리까지 따로 제작하는 상황(EBS 다큐프라임 <한반도의 공룡>)에서 대중이 다큐를 돈 내고 볼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짐은 물론 관객의 입장에 충실한 다큐멘터리가 흥행작으로 탄생할 환경은 이미 갖춰진 셈이다.

 

영화 <워낭소리>는 아주 고집스럽고 미련하고 정직한 주인공과 그의 가축인지 친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30년지기 늙은 소가 나오는 구식 영화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 30년 만에 극장에 처음 와본다는 중년의 부부 관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참 신기했던 것은 구식의 정직한 생활을 보면서 몸이 들썩거리는 듯한 공감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다.

 

애초부터 인간은 땅에서 나고 땅에서 자라 구식의 유전자가 몸에 배어 있었는데 도시로 떠나고 높은 건물에 살면서 점점 공허해져 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월스트리트의 첨단 금융 공법은 땅에서 나는 산물과 이를 일구는 노동의 가치를  모니터로 완전히 차단해 버렸기 때문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끝간 데까지 가고 나서야 땀 흘리며 한푼 두푼 저금하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까. 한국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찾는 것은 물론 입소문 때문이지만, 영화평을 남기면서까지 입소문을 퍼뜨리는 적극성은 바로 <워낭소리>가 던져주는 정직과 반성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가해자'가 본 팔 난민촌 학살 <바시르와 왈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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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라-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살사건을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관점에서 돌아본 <바시르와 왈츠를>(다른)은 '반성'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 다른출판사

사브라-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살사건을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관점에서 돌아본 <바시르와 왈츠를>(다른)은 '반성'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 다른출판사

제61회 칸 영화제 공식경쟁부문 선정작, 2009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2009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이스라엘 사태로 인해 더욱 부각이 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 영화와 책이 거의 동시에 출시됐다.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은 몽환적이면서도 해학성이 잔뜩 묻어 있는 OST와 딸려 나오는 영상이 매력이며, 책은 그야말로 압축미가 돋보인다.

 

책을 중심으로 이 작품을 이야기해본다면, 단순히 이스라엘 사태를 스케치하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자들이 이식시켜 놓은 폐해와 학살이 왜 재현될 수밖에 없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으며, 지속적인 전쟁상태에 대한 준엄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만화책으로 120여쪽 남짓한 페이지라서 10분이면 일독이 가능하지만, 읽고 난 후에 파장은 자못 길다. 20년 만에 찾아온 친구의 악몽 이야기를 아무런 준비 없이 맞고 나서 숨어버린 기억들을 하나씩 더듬어가는 과정이 <바시르와 왈츠를>의 주된 흐름이지만, 기억의 중심으로 가면서 학살사건이라는 기억의 핵으로부터 면면이 그리고 일상적으로 인간을 왜곡시키고 인간성을 파괴하는 허위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이 작품은 사브라-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살사건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관점에서 은폐된 과거를 은폐된 기억으로 환치시켜 불편한 진실을 추적했다는 점에서 '반성'이라는 키워드에 어울린다.

 

피해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의 난민들에게는 너무나 완곡해 '면피'라는 비판을 받고,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는 제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아리 폴먼은 박쥐 신세가 되었지만,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세계 유수의 영화상이 손을 들어준 것은 세계가 아직 '반성'이라는 가치를 인정해주었다는 뜻이 아닐까?

 

'적하효과'가 사기라는 것은 <워낭소리>의 노인도 아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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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편안함을 계속 누리고 적당히 침묵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행동인지 김종철 선생의 <땅의 옹호>(녹색평론사)는 차분히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 녹색평론사

문명의 편안함을 계속 누리고 적당히 침묵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행동인지 김종철 선생의 <땅의 옹호>(녹색평론사)는 차분히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 녹색평론사

김종철 선생의 <땅의 옹호>(녹색평론사)는 지난해에 출간된 책이지만 올해 초에 2쇄를 찍어냈다. 작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김종철 선생이 꺼내는 화두는 바로 생태적 상상력이다. 이문재 시인이 생태적 상상력에 대해서 쓸 만한 주석을 달아놓았는데, 그는 "생태적 상상력이란 문명과 곁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문명을 완연히 거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강력한 상상력입니다" (박원순·김종철의 2009년 화두 "농촌으로 가라" - <오마이뉴스>)라고 해석했다.

 

김종철 선생을 읽음으로 인해 나는 침묵과 무관심과 냉소주의의 벽이 이명박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생에 따르면 "적극적인 악행이 있기보다는 변화시키기 힘든 관성의 힘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58쪽) 미국발 금융위기와 <워낭소리>의 경고처럼 땅에서 멀어질수록 감수성이 둔화되고 우리의 삶의 토대가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하게 된다. 그런 인간은 당연히 취직을 위해서 "영혼을 팔게" 되고, 국민 대다수의 이익보다 권력자의 이익에 봉사하게 된다.

 

<땅의 옹호>에는 김종철 선생이 <녹색평론>이라는 격월간지에서 17년 동안이나 강조했던 농적 가치와 소농공동체, 이반 일리치의 우정의 재발견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간디의 제자 네루가 임종의 순간에 써 놓은 반성문이다.

 

"요즈음 나는 갈수록 간디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 이상하게 생각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근대적 산업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이고, 최선의 기계와 최고의 효율을 가진 기술을 선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오늘의 형편을 볼 때, 아무리 빠르게 우리가 산업시대를 향해 진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국민은 이러한 진보의 영향을 입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언제나 사실일 것입니다. 매우 오랫동안 근대적 발전은 그들에게 이익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좀 더 다른 생산방식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론 그들의 도구는 근대적 기술에 비해 열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도구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실업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 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계획을 세워서, 그들의 비참한 상황을 개선하도록 분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나는 이 문제로 끊임없이 번민하고 있습니다."

- <땅의 옹호> 101~102쪽

 

간디는 네루에게 산업화를 경계하라는 경고를 지속적으로 했지만 네루는 끝내 이를 무시했다. 인도사회를 서구사회 못지 않게 산업사회로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왔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달은 민중의 고통뿐이었다.

 

이것은 우리의 짧은 미래를 보여주는 예언과도 같은 메시지다. 권력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기업이 잘 되면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부유해진다는 이른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를 노래하고 있지만 기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워낭소리>의 최원균 할아버지도 알고 있다.

 

"농약이나 비료를 치면 땅이 죽고 소도 죽어 농사를 못 지어. 나중에 먹을 것이 없어."

 

반성이 키워드인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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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굳어진 것들을 집요하게 캐물어 우리 사회가 지나치고 있는 편견과 모순과 비합리성을 똑바로 보게 해주는 서경식 선생은 '반성의 시대'에 꼭 필요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 철수와영희

우리들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굳어진 것들을 집요하게 캐물어 우리 사회가 지나치고 있는 편견과 모순과 비합리성을 똑바로 보게 해주는 서경식 선생은 '반성의 시대'에 꼭 필요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 철수와영희

김종철 선생과 함께 '반성'의 깃발을 열심히 흔드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재일교포 서경식 선생이다. 서경식 선생은 이른바 '경계인'으로서 '국가'라는 틀 안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많이 가르쳐준 귀중한 작가다. '국가'와 '국민'이라는 허위성을 집중 비판하면서 사람들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만든 것도 그다.

 

최근 출간한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철수와영희)에서는 이제까지 써 왔던 심미적인 문체를 누그러뜨리고 대중적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이 책은 2007년 봄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에서 진행했던 강좌와 그 해 가을에 성공회대학교 NGO 대학원 학생들과 했던 세미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특히 2부의 제목인 <당연한 것을 다시 묻는다>가 '반성'의 키워드를 대표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우리들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굳어진 것들을 집요하게 캐물어 우리 사회가 지나치고 있는 편견과 모순과 비합리성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일례로 안중근 열사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안중근 열사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나서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라고 만세를 불렀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소개되면서 "대만민국 만세"라고 돌변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없었다. 후세에 '대한민국'이라는 말로 바꾼 것은 안중근 열사가 했던 행동과 당시의 상황을 왜곡한 것에 다름아니다. 서경식 선생은 이런 역사적 상황일수록 시대성과 장소성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안중근 선생이 썼던 언어와 행동, 말을 사실 그대로 옮겨와야 한다고 말했다.

 

서경식 선생 본인이 반성을 하는 부분도 있다. 이제까지는 '같은 동포'라는 일체감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2년간의 체류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서로 간에 존재하는 차이를 인정하고 그 바탕위에서 연대의 길이 가능한지 찾아보려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 전환점이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제목에도 '연대'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제는 반성이 경쟁력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잘못이다."(논어)

 

IT의 새로운 흐름인 오픈소스, 웹2.0은 날이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위키피디아, 리눅스 등은 많은 사람들의 공유에 의해서 탄생한 산물이다. 이러한 새로운 온라인 패러다임이 경쟁력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반성'에 있다. 오류가 나타나면 짧은 시간 안에 개선이 가능한 것은 실패에 대한 유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실패를 먹고 자라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허심탄회하게 인정하면 그것은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면 자꾸 거짓을 하게 되고 피하고 숨고 누르려고 하는 마음이 생긴다. 물론 이것은 얼마 못 가 바닥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답보상태인 까닭은 '반성'이 부재돼 있기 때문이다. 정권을 잃은 쪽에서 부단한 자기반성을 통해서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아니라 편법과 술수로 그 자리를 보존하려고 하는 바람에 국민의 마음이 떠나 버린 것이다. 반성은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면 반성만큼 유익한 행위가 또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반성을 하지 않는 이유는 반성하는 행동이 무섭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쓸만한 화두가 문화계에서 불어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반성 바이러스'가 사회 전체에 널리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2009.02.12 17:46 ⓒ 2009 OhmyNews
#반성 #워낭소리 #김종철 #서경식 #바시르와 왈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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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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